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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이 사람을 더 노력하게 한다는 건 우스운 얘기

‘민주화(democratization)’는 독재·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이다. 서구 정치학자들은 1980년대 이후 민주화 이론을 개발해왔다. 또한 서구 학계는 ‘경제민주주의(economic democracy)’에 대해서도 다양한 논의를 해왔다. 하지만 ‘경제민주화(economic democratization)’라는 용어가 학계를 넘어 국가적·사회적 담론이 된 곳은 한국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경제민주화 이론 개발의 선봉에 서 있다.

민주화가 필요했던 나라들은 남부 유럽·아프리카·아시아·중남미 국가다. 대조적으로 ‘경제민주화’는 일부 선진국에도 절실하다. 소득 평등을 경제민주주의의 잣대로 들이민다면 미국·영국 등 일부 선진국은 소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haves and have-nots)’ 사이의 간격이 심화되고 확대되는 ‘경제적 권위주의’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의 어젠다였던 경제민주화가 창조경제론에 밀려 점차 잊혀지고 있다. 경제민주화는 경제성장과 상충되며 경제민주주의의 구현보다는 성장을 가능하게 할 창조경제가 더 시급하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경제민주주의와 성장의 관계에 대한 보다 입체적인 조명을 위해 영국 노팅엄대 의대 리처드 윌킨슨(71·사진) 명예교수를 인터뷰했다. 그의 전공 분야는 사회적 변수가 건강·보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사회역학(social epidemiology·社會疫學)’이다.

윌킨슨 교수에 따르면 경제민주주의의 핵심인 소득 평등은 성장을 저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성장의 필수 전제 조건이다.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소득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장기적 경제성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말로 번역된 윌킨슨 교수의 저서 『건강 불평등』(2011·왼쪽)과 『평등이 답이다』(2012).
캐머런 총리도 평등 필요성에 동의
그는 세계 최고 부국(富國) 23개국과 미국 50개 주 데이터를 분석한 『평등이 답이다(The Spirit Level)』(2012)에서 소득이 보다 평등하게 배분되는 사회가 경제성장이 빠르고 폭력, 약물 남용, 비만, 청소년 출산 등 사회병리 현상의 비율이 낮으며 평등은 저소득층뿐만 아니라 고소득층에도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경제가 엉망인 것은 기업가들을 비롯한 부자들 때문이고 사회가 엉망인 것은 빈자들 때문이라는 인식이 암암리에 퍼져 있다. 윌킨슨 교수는 모든 문제의 주범이 사실은 불평등의 심화라고 지목한다. 불평등 문제 해소는 만병통치약이라는 말이다. 그의 주장은 영국 총리 데이비드 캐머론과 노동당 당수 에드 밀리밴드가 인용할 정도로 영국에서 큰 화제가 됐다.

개발독재 시기에 우리의 사고를 알게 모르게 지배한 것은 ‘경제발전을 이뤄야 민주주의도 할 수 있다’는 스탠퍼드대 시모어 마틴 립셋(1922~2006) 교수의 간단하고도 힘있는 주장이었다. ‘성장하고 싶다면 소득 불평등 문제부터 해결하라’는 윌킨슨 교수의 테제는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다음은 인터뷰 요지.

-세계 많은 나라가 겪고 있는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떤 실천이 필요한가.
“정부는 재분배(redistribution) 정책을 펼 수 있지만 두 가지 어려움이 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세금을 올리는 것은 인기가 없다. 세금 제도의 개편에 성공해도 정권이 바뀌면 쉽게 원상 복귀된다. 그래서 회사의 이사회에 직원 대표를 포함시키고 보다 민주적으로 회사가 발전하는 것을 지원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직원이 이사회에 참여하는 회사는 소득 차이가 덜하다.”

-회사가 아니라 사회 차원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직원 대표를 이사회에 보내는 것을 의무적으로 만드는 법제화를 시도할 수 있다.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반 정도는 이를 법제화했다. 이와 관련해 독일은 입법 수준이 매우 높다. 입법 수준이 낮은 영국의 경우 소득 격차와 불평등의 정도가 훨씬 크다. 부유한 개인과 회사는 세금을 내지 않는 방법을 모색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막으려면 대중의 압력이 필요하다.”

-유럽과 미국에서 불평등이 심화된 원인은.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 회사 내의 소득 차이가 급속도로 벌어졌다. 70년대 말, 80년대 초 미국 350대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의 소득은 생산직 근로자의 30~40배였다. 21세기 초에는 200~300배, 심지어 400배가 됐다. 많은 나라에서 소득 격차가 확대된 주요 원인이다. 최상위 소득자에 대한 민주주의적 견제가 결여됐던 것이다.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이는 모든 종류의 경제민주주의를 일터로 확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불평등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은 지속되고 있고 평균수명도 늘어나고 있다.
“많은 나라에서 기대수명이 10년마다 2~3년씩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건강 개선이 왜 일어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역학과 공중보건 분야의 최대 미스터리다. 진료가 질병에 미치는 영향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있다. 약간의 불평등은 기대수명 증가를 둔화시킬 뿐이지 수명이 짧아지게 하지는 않는다. 공산주의 붕괴 후 러시아나 대부분 동부 유럽 국가의 경우처럼 엄청난 소득 불평등이 발생하는 경우에만 기대수명 증가세가 감소세로 역전된다.”

-복지와 평등의 관계에 대해 복지가 평등에는 좋지만 성장에는 나쁘다는 의견이 있다. 성장이 안 되면 모든 사람의 처지가 나빠지기 때문에 복지 정책은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평등과 성장의 관계에 대한 상당수 실증적 연구에 따르면, 보다 평등한 게 성장에도 좋다. 왜냐면 평등은 사회적 응집성(社會的 凝集性·social cohesion)을 향상시켜 경제학자들이 중시하는 회사들의 거래비용(去來費用·transaction cost)이 줄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가 평등할수록 ‘공공정신(public spirit)’이 살아 있다. 공공정신이 살아 있으면 사람들은 보다 기꺼이 다른 사람들을 돕는다. 공공선(公共善·common good)을 추구하는 것이다. 세계은행이 93년에 발간한 연구보고서 『동아시아 기적(The East Asian Miracle)』이 기술하고 있듯이 한국· 대만·홍콩·필리핀 등은 1960년에서 80년 사이에 보다 평등한 나라가 됐다. 공산주의라는 외부 위협이 있었기 때문에 정부들은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한 정책을 폈다. 한국은 북한의 위협에 직면했고 대만과 홍콩은 중국이라는 근심거리가 있었다. 필리핀의 경우는 게릴라 세력을 의식했다. 세계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이들 국가는 소득 격차를 감소시켰고 이는 성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동반성장(shared growth) 정책으로 성장의 혜택은 보다 고르게 공유됐다. 세계은행 보고서 이후에도 많은 연구가 성장에 긍정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불평등이 경쟁력이나 동기부여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측면도 있지 않은가.
“불평등이 창의성·창조성·혁신의 추진력으로 작용한다는 주장은 우리와 같은 입장의 연구자들을 근심하게 만든다. 혁신의 모델은 다양하다. 돈을 벌겠다는 의욕으로 단독으로 연구하는 외로운 발명가를 상상해 볼 수 있다. 혁신은 그러나 사회적인 과정이기도 하다. 적어도 약간은 더 평등한 나라가 1인당 특허 건수도 많다. 이 질문과 경제성장과 관련된 그 전 질문을 연계해 살펴본다면,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보다 불평등한 나라에서는 계층 간 사회 이동이 더디다. 국제적인 수학·국어 시험 평가에서도 점수가 낮다. 불평등은 ‘낭비’를 수반한다. 불평등한 나라는 국민의 재능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국민 재능의 낭비는 경제성장이나 창의력 구현에도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한국은 교육적인 성과가 좋다. 적어도 과거에 평등했던 소득 구조가 오늘 교육 성과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고 본다. 보다 평등한 나라에서는 부잣집 학생이나 가난한 집 학생이나 교육 성취도상으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불평등이 사람들을 더 열심히 노력하게 한다는 주장은 웃기는 얘기다. 불평등은 사회 계층 간 이동의 장벽을 쌓는다. 장벽을 넘기 위해 한층 더 애쓰는 것은 장벽이 없었다면 애초에 불필요한 것이다.”

물질 아닌 사회관계에서 행복 찾는 시대
-유전과 불평등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나.
“아무런 관계가 없다. 유전이 사회 계급 간 차이의 원인이 되기에는 사회 계급 간 결혼이 역사적으로 너무나 활발했다. 사회 계급 간 지능의 차이가 있더라도 차이의 원인은 선천적(innate)인 게 아니다. 그보다는 소득 차이를 바탕으로 한 환경 차이 때문이다. 아동기에 인간의 뇌가 어떻게 발달하는지 우리는 점차 많은 것을 알게 됐다. 그 반대라면 또 모르지만 머리가 나빠 가난하게 되는 게 아니다.”

-평등트러스트(The Equality Trust· www.equalitytrust.org.uk)라는 기관을 설립했다. 한국에 지부를 세울 수도 있는지.
“2009년 설립했다. 목적은 우리 주장의 과학적 근거를 보다 많은 사람에게 전파해 불평등이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을 사람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아무리 많은 연구 결과가 나와도 사람들에게 전파되지 않으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공동 설립자 중 한 사람인 빌 케리가 대외협력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 독자들에게 강조하고자 하는 내용이 있다면.
“역사적으로는 경제성장으로 소비나 물질 스탠더드를 높임으로써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게 가능했다. 부자 나라들은 더 이상 그게 불가능한 한계점에 다다랐다. 부자 나라에서는 일인당 소득과 행복, 기대수명, 각종 웰빙의 지표 사이에 별 관계가 없다.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 환경,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평등이 중요하다. 불평등은 사회를 분열시키고 공동체 속 삶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사회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건강과 행복에 대한 연구가 밝히고 있다. 우정과 건강의 상관관계에 대한 150여 개 연구를 종합한 보고서에 따르면, 친구가 없다는 것은 흡연보다 더 나쁘다. 우정, 공동체 활동 참여, 만족스러운 부부생활 등 사회 관계의 질이 우리의 행복을 결정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물질보다는 사회구조(social fabric)를 생각할 때다. 소득 차이를 축소시킴으로써 사회적 웰빙을 증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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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