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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높은 자리 오르면 일 못 한다” 끝까지 현장서 열정 불태워

중앙포토
“나한테 잘해 준 사람들은 다 성공해, 그런 사람들은 대개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거든.”

홍국선(사진) 서울대 기술지주회사 대표이자 서울대 재료공학과 교수. 그가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다. 이 회사의 실장을 맡고 있는 조서용 박사는 ‘일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선배’로 그를 표현했다.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가까이 하라”던 선배의 따뜻한 조언을, 조 박사는 이제 더 이상 육성으로 들을 수 없게 됐다.

“상아탑에 기업 끌어들인다” 비판 극복학자이자 경영인이었던 홍 교수가 14일 세상을 떠났다. 57세. 3년의 암 투병에도 꿋꿋했던 그였기에 조 박사도, 연구원들도 그의 출근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터였다. 고인에게 꽃피워야 할 업적은 아직 많이 남았지만, 죽음은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고인은 산학협력의 대부로 불린다. 1980년 서울대 요업공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과 미국 앨프리드대에서 석·박사를 마쳤다. 93년부터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로 재직하다 96년 동료 교수들과 대학산업기술지원단을 만들었다. 서울대에 처음으로 산학협력을 도입한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보이지 않는 적들과 싸워야 했다. 당시 대학은 순수 학문의 장이자 상아탑의 이미지가 강했다. 여기에 기업을 끌어들인다는 것은 당시로선 거부감이 큰 일이었다. 노(老)교수들의 호통도 이어졌다. 90년대 말 외환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 ‘기회’가 됐다. 산학협력에 대한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돌아선 계기였기 때문이다. 고인은 입버릇처럼 “외환위기가 터지지 않았으면 나는 서울대에서 쫓겨났을지도 모른다”고 농담했다.

고인의 일에 대한 철학은 후배 연구원들에게 늘 귀감이 됐다. 높은 자리에 오르면 명예는 얻을지 몰라도 현장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긴 힘들다며 고위직을 마다해 오던 그였다. 다른 사람을 빛나게 하고 자신은 일터로 돌아가는 전형적인 ‘킹메이커(Kingmaker)’였다고도 했다. 술 없이도 서너 시간씩 후배들을 붙잡고 “인생을 멀리 봐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힘든 일을 도맡아 해야 내공이 쌓인다”고 조언했다.

대학에서도 그의 노력과 업적을 인정했다. 오연천 서울대 총장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헌신적으로 수행하다 안타깝게 타계했다”며 애도했다. 그러면서 “많은 보수를 줄 수 없는 국립대라 능력 있는 변리사나 변호사를 채용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삼고초려 이상의 공을 들이는 것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백방으로 뛰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고인을 추억했다.

“당장 편한 일 찾지 말라” 후배에 조언대장과 폐에서 암세포가 꿈틀대기 시작한 것은 그가 처음 기술지주회사 대표를 맡았을 때였다. 요양을 하라는 주변의 조언도 마다했다. 사명감은 그를 늘 병상에서 일어나게 했다. “혹시 내가 3~4년 안에 끝나더라도 이 정도는 해놔야 하지 않겠나”는 말을 습관처럼 했다고 한다.

눈을 감기 직전인 지난 주말에도 후배들과 나눈 마지막 전화통화에선 “다음 주부터 다시 나갈 테니 그리 알고 있으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아직도 할 일, 하고 싶은 일이 많은 그였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17일 오전 5시30분. 02-2072-2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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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