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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미싱공장서 쇼핑·문화 허브로 … 동대문 ‘제5의 물결’

# 14일 오후 서울 을지로 6가의 쇼핑몰 두산타워 앞. 중국인 관광객 차이구이전(蔡貴珍·44)은 한 손에 쇼핑백을 잔뜩 든 채 맞은편 동대문디지털플라자(DDP)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는 “옷 사기 좋은 곳이라 해서 왔는데, 이렇게 독특한 빌딩이 있는 줄은 몰랐다. 개관하면 또 와서 내부도 구경하고 싶다”고 말했다. 쇼핑몰 두산타워 안은 중국인 관광객으로 북적댔다. 절반이 넘는 가게가 중국인 유학생이나 조선족 동포를 직원으로 채용할 정도다. 1층 가죽옷 상점의 직원 이예림(36)씨는 “매출의 80%는 중국인에게서 나온다. 한 번에 500만원 넘게 옷을 사가는 관광객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 같은 날 두타 옆 또 다른 쇼핑몰 밀리오레. 두타와 비슷한 소매 상가인데 1층부터 곳곳에 빈 사무실이 눈에 띄었다. 2층에 올라가니 엘리베이터 바로 앞 목 좋은 상가도 비어 있었다. “장사는 안 되는데 월세는 안 깎아주니까 나가는 거지.” 한 상인은 “바로 옆 상가는 7년이나 장사를 했다. 매출이 떨어지는 데도 월세를 350만원에서 한 푼도 안 깎아준다고 해 짐을 쌌다”고 말했다. 그는 “3층부터는 20% 이상 비어 있다. 중간중간 공실이니 분위기도 썰렁해 장사할 맛이 안 난다”고 한숨을 쉬었다.

100년 역사의 동대문시장이 다섯 번째 변신을 앞두고 있다. 국내 최초의 근대시장으로 출발한 동대문시장은 열악한 환경의 봉제 공장으로, 국내 최대 도매시장으로, 그리고 소매 쇼핑몰을 내세운 패스트패션 메카로 성장해왔다. 다섯 번째 변화를 이끌 주역은 21일 동대문종합운동장 자리에 개관하는 DDP다. 건축에만 4840억원이 투입된 이 건물이 동대문을 ‘옷만 사고 나오는 번잡한 시장’에서 ‘머물고 싶은 문화 중심지’로 변모시킬 수 있을까.

청계천 판자촌이 평화시장으로
광복 이전 동대문시장은 종로4가 일대 배오개 시장을 가리켰다. 시장이 번듯한 모양을 갖추게 된 건 1905년. 두산그룹 설립자인 배오개 거상 박승직이 종로·동대문 일대 상인들을 모아 국내 최초의 주식회사인 ‘광장주식회사’를 설립하면서다. 1930년대 들어 일대 포목상은 큰 호황을 누린다. 면직물 소비가 늘며 일본산 면직물 거래의 중심지로 꼽혔다. 1933년 동아일보엔 “4월부터 배오개에서 야시장이 열린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밤에 시장을 열 정도로 동대문 상권이 활성화된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청계천변을 따라 다닥다닥 판잣집이 들어섰고, 시장이 형성됐다. 상인 대부분이 실향민이어서 평화시장으로 불렸다. 판잣집 지하에서 옷을 만들고 지상 매점에서 팔았다. 1959년 평화시장에 점포 130여 개를 태운 큰 불이 났다. 그 자리에 62년 새로 들어선 상가가 지금의 평화시장이다. 건물 연면적이 247만여㎡에 이르는 대형 상가다. 평화시장 2, 3층엔 봉제 공장이 빽빽하게 들어섰다. 전국의 옷 상인이 동대문에 몰리고, 수요를 대기 위해 정신없이 재봉틀이 돌아갔다. 62년 평화시장 개장 직후 한 신문은 “판잣집 시절에는 월 평균 오십환의 세금을 냈다는 한 메리야스 상인은 지금 월 이천환을 물고 있다”고 전했으니, 호황을 짐작할 만하다.

70년 12월 문을 연 원단·부자재 상가 동대문종합시장은 동대문의 생산·판매 시스템을 갖추는 계기가 됐다. 원단부터 봉제·판매가 반경 5㎞ 안에서 해결되는 동대문식 생산 시스템이 완성된 것이다.

전국 최대 도매시장, 소매까지 장악
90년 들어선 4층짜리 건물 아트프라자는 동대문시장 최초의 현대식 상가였다. 아트프라자는 지방 상인들을 버스로 실어 나르고 종전 새벽 3시였던 도매시장 개장 시간을 자정으로 앞당기는 등 파격적인 전략으로 승승장구했다. 아트프라자의 성공으로 일대엔 디자이너클럽(94년), 우노꼬레·팀 204·거평프레야(이상 96년) 같은 현대식 상가가 무섭게 들어선다. 이들은 모두 도매 상권을 표방했지만 밀리오레의 충격 이후 일부는 소매로 성격을 바꾼다.

98년 8월, 외환위기 한복판에서 들어선 밀리오레는 동대문 서부에 소매 상권이라는 새 시장을 열었다. 영업시간을 파괴하고 야외 공연 등 색다른 마케팅으로 개장 6개월 만에 인지도가 80%에 이를 정도로 명성을 얻었다. 이듬해 두산타워가 바로 옆에 문을 열면서 동대문은 최대 도매시장에서 10~20대 소비자들이 즐겨 찾는 소매시장으로 부상했다. 밀리오레의 부상으로 동대문 시장 쇼핑몰은 헬로apM(2002년)과 굿모닝시티·라모도·패션TV(2004년) 등 30여 개로 늘어난다.

사고 가는 동대문서 머무는 동대문으로
쇼핑몰이 과잉 공급됐다는 지적이 본격화된 건 2000년대 초반부터다. 소비자 수요는 물론 상인에 비해서도 지나치게 많은 쇼핑몰이 들어섰다는 것이다. 케레스타(옛 거평프레야)와 라모도 등 다수의 쇼핑몰이 이미 폐업을 선언했다. 명맥을 잇고 있는 쇼핑몰도 대부분 공실로 분위기가 썰렁하다. 공실 없이 유지되는 소매 상가는 대기업이 관리하는 두산타워와 롯데피트인 정도라는 게 동대문관광특구협의회 측 설명이다. 지대식 협의회 사무국장은 “쇼핑몰이 유지되려면 인테리어도 지속적으로 바꾸고 장사 안 되는 점포는 내보내는 등 힘있는 관리가 필요한데, 분양업자들이 지분을 쪼개 팔고 떠나버린 상가는 관리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꾸준한 매출 성장세를 보이는 두타의 경우, 정찰제를 어기거나 현금 결제를 강요하면 영업을 정지시키고, 반복되면 퇴점시키는 등 서비스 관리도 강화하고 있다.

중국산이나 글로벌 패스트패션 브랜드와의 생산성 경쟁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도 숙제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동대문에 유통되는 옷은 창신동·신당동 일대 봉제 공장에서 만들어진 국산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최근엔 동대문 상품 40% 정도가 중국산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추산한다. 신용남 신구대 패션디자인과 교수는 “중국의 봉제 기술이 동대문을 바짝 추격해온 만큼 우리는 상품 기획과 디자인에서 확실한 차별화를 할 필요가 있다”며 “다행히 한류로 한국 패션에 대한 관심이 높아 당분간 중국·동남아 일대로 수출 수요가 있을 걸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DDP 개관을 계기로 동대문 일대가 문화 공간으로 입지를 굳히는 것도 필요하다. 한국인이건 외국인 관광객이건 “동대문엔 쇼핑 외엔 먹을거리, 즐길거리가 없다”고 인식하는 상황이다. 박문호 서울시 DDP정책팀장은 “DDP는 건물 자체만으로도 볼거리가 충분한 데다 전시나 공연 등이 시작되면 관광객 유입이 크게 늘 것”이라며 “여유 있게 쇼핑을 하고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대중교통과 주차장 등 편의시설을 확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DDP설계자 자하 하디드 한국체류기
▶S 매거진 8~13p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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