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비주얼 경제사] 중세 동서 교역 튼 팍스 몽골리카의 역설

화가 미상, 『죽음의 승리』, 1446년께.
이 그림은 이교도의 공격이나 하층민의 반란과는 거리가 멀다. 해답의 단서는 다음 그림에 있다. 흰 천에 싸인 시신들이 묘지로 옮겨지고 장례의식이 거행되고 있다. 역병의 희생자들이다. 시신을 운반하던 인부가 갑자기 바닥에 쓰러진다. 희생자가 한 명 더 늘어나는 현장이다. 흥미로운 것은 하늘에서 펼쳐지는 종교적 이야기다. 온 몸에 화살이 꽂힌 사내가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고 사망자들을 위해 탄원을 올리고 있다. 이 사내는 누구일까?

세계화는 어떻게 진화했나 ② 유라시아 초토화한 흑사병

화살을 온 몸에 꽂고 있는 이는 성 세바스티아누스다. 그는 로마시대의 장교였는데, 몰래 기독교로 개종하고 기독교인을 도왔다는 이유로 화살을 맞는 형벌에 처해졌다. 그런데 그는 많은 화살에 맞고도 죽지 않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고 전해진다. 성 세바스티아누스가 이 그림에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에 대한 개념이 없던 시절 사람들은 역병을 오늘날과는 전혀 다르게 이해했다. 행성들이 특별한 구도로 배열되었다거나, 지진으로 인해 지하의 사악한 기운이 지상으로 펴졌다거나, 신앙심을 잃은 인간에 대해 신이 노여움을 보인 탓이라는 설명이 주를 이루었다.

1 조스 리페랭스(Josse Lieferinxe), 『역병 희생자를 위해 탄원하는 성 세바스티아누스』, 1497~1499년. 2 화가 미상, 『플랑드르의 채찍질 고행 행렬』, 1500년께.
흑사병 원인 놓고 미신 무성
기독교인들은 역병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성인을 필요로 했다. 그런데 역병은 마치 쏟아지는 화살과 같아서 어떤 이는 치명상을 입고, 어떤 이는 운 좋게 피하기도 하며, 또 어떤 이는 화살에 맞고도 죽지 않고 회복하기도 한다. 이런 유사성에 착안해 여러 발의 화살을 맞고도 살아남았다는 성 세바스티아누스가 역병의 수호성인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죽음의 승리』에 묘사된 희생자들은 화살이 아니라 역병으로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역병은 오랜 기간 인류를 따라다니며 괴롭힌 재난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역병이 1340년대에 유럽을 휩쓴 흑사병이었다. 이 무자비한 전염병으로 인해 유럽 인구의 약 3분의 1이 병마에 희생되었다. 흑사병은 1347년 흑해의 무역항 카파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당시 카파는 지중해 무역으로 번영을 누리던 이탈리아의 상업도시 제노바의 무역기지였다. 제노바는 동양에서 수입하는 향신료와 직물 등을 유럽 전역에 판매해 큰 이익을 거두고 있었다. 베네치아와 더불어 제노바는 이탈리아 전성시대를 이끄는 양대 축이었다.

1347년 킵차크한국의 자니베크 칸이 이끄는 몽골군은 제노바인들이 방어하던 카파를 포위하고 공격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몽골군 진영에서 역병이 발생하였다. 그러자 자니베크 칸은 시신을 투석기에 얹어 성내로 던져 넣고는 철군하였다. 투석기로 날아온 시신으로부터 감염된 제노바인들이 감염 사실을 모른 채 배를 타고 시칠리아 및 지중해 연안으로 상륙하면서 흑사병의 대유행이 시작되었다. 역병은 매우 빠르게 확산되었다. 불과 5년 만에 유럽 대부분의 지역에서 병마가 맹위를 떨쳤다.

흑사병은 19세기 말 예르시니아 페스티스(yersinia pestis)라는 박테리아에 의해 감염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검은 쥐와 같은 설치류에 서식하는 벼룩으로부터 인간에게 감염된다. 이런 ‘선페스트’와 달리 사람의 호흡을 통해 전염되는 변종인 ‘폐페스트’가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흑사병의 전파 속도가 무척 빠르고 쥐가 거의 서식하지 않는 지역에서도 발병이 있었다는 점이 이런 주장의 근거를 이룬다.

흑사병은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가족과 이웃이 순식간에 질병에 희생되는 참혹한 광경 앞에서 사람들의 반응은 천태만상이었다. 어떤 이는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환자를 돌본 반면 어떤 이는 겁에 질려 부모 자식까지 버리고 도망갔다. 어떤 이는 신 앞에서 간절한 기도를 올렸으며, 어떤 이는 순간적 쾌락에 탐닉하였다. 흑사병이 신이 분노한 결과라고 여기고는 예수를 못 박았다는 이유로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사태도 발생하였다. 대문과 창문을 꽁꽁 틀어막고 들어앉아 있으면 나쁜 기운이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고, 향내가 강한 허브를 태우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믿은 사람도 있었다.

전례 없는 대재앙 속에서 종교도 극단화된 모습을 띠었다. 특히 ‘채찍질 고행(Flagellation)’이 크게 유행하였다. 원래 채찍은 오래전부터 일부 금욕적 교단에서 참회의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다. 채찍질 고행은 이를 여러 지역을 순회하며 행하는 공공집회의 형태로 만든 것이었다.

화가 미상, 역병에 대비한 의사의 복장, 1720년.
흑사병 이전에도 채찍질 고행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존재했지만 흑사병을 계기로 다시금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더욱이 이번에는 남유럽뿐 아니라 북유럽과 중부유럽에서도 폭발적인 전파력을 보였다. 채찍질 고행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교황은 금지령을 내렸고, 이어서 채찍질 고행이 이단과 연계되었다고 선언하였다.

당시에 의학은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 오늘날 기대할 수 있는 수준과는 거리가 멀었다. 유럽 최고 권위의 의학기관이었던 파리의과대학에서는 물병자리에서 토성·목성·화성이 교차한 게 흑사병의 근본적 원인이고, 행성 교차 시 오염된 증기가 바람에 실려 퍼진 것이 흑사병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발표하였다. 의사들은 환자로부터의 감염을 막기 위해 독특한 복장을 고안하였다. (아래 그림)

새 모양의 마스크와 긴 가운, 그리고 모자와 장갑으로 온 몸을 감싸는 형태의 의복이었다. 마스크의 부리 부분에는 향료나 식초 묻힌 헝겊을 넣어 사악한 기운이 전파되는 것을 막고자 했고, 눈 부분에는 유리알을 박아 혹시 모를 시각적 접촉에 대비하였다. 훗날 파티복의 형태로 남게 되는 이 괴상한 복장은 바로 흑사병에 대한 당시의 의학 수준을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다.

세계화가 낳은 흑사병이 세계화 제동
현대의 의사학(醫史學) 연구자들은 원래 흑사병이 중앙아시아의 토착 질병이었다고 파악한다. 그런데 중세에 유라시아 동서교역이 활성화되면서 사람·가축·물자의 이동이 빈번해짐에 따라 설치류의 서식 범위도 확산되었다. 이것이 흑사병이 범유행성 질병으로 재탄생한 배경이었다. 달리 말하면 흑사병은 세계화가 낳은 예기치 못한 부산물이었다.

당시 세계화가 진전된 데에는 칭기즈칸이 세운 몽골제국의 기여가 컸다. 한반도에서 흑해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한 몽골은 개방적 대외정책을 실시하였고, 역참제도 등 무역진흥에 유리한 인프라를 구축하였다. 베네치아 출신의 상인 마르코 폴로와 모로코 출신의 무슬림 여행자 이븐 바투타가 공통적으로 증언하였듯이 몽골제국은 사람과 상품이 이동하기에 최적의 제도를 갖추고 있었다. 몽골제국이 정한 질서와 관행이 광범위한 영향을 끼친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 시대의 진면목은 바로 이런 세계화의 진전에 있었다.

동서교역의 확대가 토착 질병을 세계적 질병으로 변모시켰다면 흑사병이 유럽에서만 창궐했다고 보기 어렵지 않을까? 최근의 연구는 흑사병이 유라시아 전역에 걸쳐 발생했음을 보여준다. 1330년대에서 1350년대 사이에 중국에서 흑사병이 대규모로 창궐했으며, 인도의 무역항들과 이슬람 성지인 메카에서도 흑사병으로 많은 인구가 목숨을 잃었다.

흑사병 이후 세계는 중대한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서유럽에서는 봉건 영주와 교회의 지배력에 큰 균열이 발생했다. 아시아에서는 세계화의 중심축이었던 원 제국이 쇠퇴를 맞게 되었다. 세계화가 초래한 흑사병이 세계화를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송병건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학·석사 학위를 마친 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경제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제사학회 이사를 맡고 있으며 『세계경제사 들어서기』(2013), 『경제사:세계화와 세계경제의 역사』(2012), 『영국 근대화의 재구성』(2008) 등 경제사 관련 다수 저서가 있다.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