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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개국 18억 명의 건강 파수꾼 … 연간 200일 해외출장

신영수 서태평양 지역사무소(WPRO) 사무처장은 폴리네시아 사모아인이 세계 최고의 비만율을 가진 데 대해 우려하면서 그 대처방안을 제시했다. [사진 WPRO]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김용 세계은행 총재, 고(故)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6대 사무총장(2003~2006년). 지금까지 한국인으로서 국제기구의 수장을 맡은 대표 인사들이다. 일반에겐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WHO 서태평양 지역사무소(WPRO) 사무처장도 영향력이 막강한 자리다. WPRO는 한국·중국·일본을 포함한 37개국 18억 명의 건강 문제를 다룬다. 직원 수 700명이 넘고 지난 2년 예산이 2억7000만 달러에 달한다. 수장인 사무처장은 회원국의 투표로 결정된다. 1표 차의 신승을 거두며 취임한 첫 5년 임기를 마친 뒤 최근 만장일치로 연임에 성공한 이가 신영수(71·의료관리학) 박사다. 그를 지난달 필리핀 마닐라 중심가의 WPRO 본부에서 만났다.

-WHO엔 어떻게 발을 들여놓게 됐나.
“1981년 당시 WPRO 중견 간부이던 한상태 박사를 만나면서다. 83년엔 WHO 공채로 들어와 갓 근무를 시작한 이종욱 박사와 만났다. 98년 WHO가 새 사무총장을 선출할 때는 이 박사와 힘을 합쳐 브룬틀란(전 노르웨이 총리) 후보의 당선을 도왔다. 브룬틀란 총장은 이 박사를 총장 특별자문관으로 발탁했고, 이는 5년 후 이 박사가 WHO 사무총장이 되는 데 발판이 됐다. 이 박사가 WHO 사무총장 선거에 나섰을 때 선거사무장을 맡았다. 이 경험은 내가 직접 나선 WPRO 사무처장 선거전에서 큰 도움이 됐다.”

-이종욱 전 WHO 사무총장과의 인연은.
“2003년 이 박사가 사무총장에 당선되면서 WHO에서 내 역할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제네바(WHO 본부) 가는 것도 삼갔다. 거리를 두는 것이 이 박사를 돕는 최선의 길이라고 여겨서다. 2006년 5월 이 박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제네바에 달려가 화장하고 가족들과 유골단지를 안고 와 국립묘지에 안장했다. 만약 이 박사가 살아 있었다면 난 WPRO 사무처장 선거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김용 세계은행 총재와의 만남은.
“87년 하버드대 의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의료인류학 박사 과정에 있던 그가 내 연구실에 찾아왔다. ‘5살 때 이민 간 뒤 한국을 알고 싶어서 왔다’는 말이 기억난다. 의료인류학을 전공한 김 총재는 우리 교실에서 한국인·중국인의 약 먹는 습관이 서양인과는 어떻게 다른지 연구하면서 1년 반가량 함께 생활했다.”

-보건당국자로서 기억에 남는 사건은.
“중국의 H7N9 조류 인플루엔자(AI) 발생과 필리핀의 하이옌 태풍 피해다. H7N9 바이러스에 대해 유전자 검사를 해 보니 이전의 다른 AI 바이러스보다 사람 사이에 대(大)유행을 일으킬 수 있는 구조에 훨씬 근접해 있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사실은 중국이 2003년 사스(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 때와는 달리 AI에 잘 대처하고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H7N9 AI가 아직 사람과 사람 간에 전파됐다는 것은 확인되지 않았다.
태풍 하이옌이 상륙한 날엔 중국에서 회의 중이었다. 바로 마닐라로 돌아왔다. 하이옌으로 400만 명의 이재민이 생겼다. WPRO는 세계에서 몰려온 구호팀의 업무조정 역할을 수행했다. 30여 개국에서 100여 구조팀이 왔다. 한국도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KOFIH)·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군 의무대 등이 6개월 이상 상주하며 구호활동을 하고 있다.”

-WHO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감염병 예방과 대처다. AI와 인플루엔자 외에 어떤 감염병에 주목하고 있나.
“말라리아·소아마비·결핵 등이다. 말라리아는 노동력 손실이 가장 큰 질병 중 하나다. 걸리면 꼼짝도 하기 힘들다. WPRO 지역은 말라리아 발생률이 괄목할 만큼 줄었지만 아직까지 퇴치 단계엔 이르지 못했다. 전 세계 소아마비 박멸은 가시권에 있다. WHO는 유관기관들과 힘을 합해 소아마비 박멸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파키스탄에선 최근 소아마비 예방접종 사업 도중 WHO 직원들이 미국 CIA 첩자로 의심받아 무장단체의 공격 표적이 돼 사망한 경우도 있다. 항생제에 대한 내성 결핵의 출현도 큰 문제다.”

-한국에선 최근 건보공단이 담배소송을 준비 중이다.
“공단이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것은 WHO 입장에선 반가운 소식이다. 담배는 전체 암 원인의 4분의 1, 전 세계 사망원인의 12%를 차지한다. 전 세계에서 흡연으로 연간 600만 명, 간접흡연으로 그 10%인 60만 명이 숨진다. 소송도 필요하지만 담뱃값 인상도 절실하다. 싱가포르·홍콩·호주의 흡연율은 10% 이내다. 이들 국가는 담뱃값이 한 갑에 10달러 이상이며 호주는 15달러가 넘는다. 반면 한국·일본·중국 등 흡연율이 높은 나라의 담뱃값은 싸다. 흡연 시작 연령을 늦추기 위해선 담뱃값이 한 갑에 10달러는 넘어야 한다. 젊은 연령층의 흡연을 줄이는 데엔 담뱃값 인상이 큰 효과가 있다. 흡연으로 인한 건강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30세 전에 담배를 끊는 것이 중요하다.”

-두 번째 임기의 역점 사업은.
“건강도시(health city) 만들기에 힘을 쏟고 싶다. 한국의 60여 곳을 포함해 서태평양 지역에, 내년까지 1000곳의 건강도시가 조성되도록 해당 정부와 같이 노력하고 있다. 건강도시는 모든 의사결정에서 시민의 건강이 우선시되는 도시다. 홍역 완전 퇴치, 5세 미만 소아에게서 B형 간염 유병률 1% 이하로 낮추기 등의 목표도 세워놓았다. 재난과 기후변화에 대한 대처도 중요한 사업이다. 지역 내 회원국들의 국민의료보장 확대도 핵심 과제다.”

그는 폴리네시아 사모아인이 세계 최고의 비만율을 가진 데 대해서도 우려했다.

“20∼30년간 주민들이 기름(지방)과 콜레스테롤이 많은 정크푸드를 다량 섭취하면서 지금은 비만율이 거의 90%에 달한다. 2∼3년 전 사모아를 직접 방문해 그곳 통상장관·농수산장관과 수퍼마켓 주인들을 불러 식생활 개선 회의를 열었다. 과거엔 주민들이 타로(열대 농작물)나 생선을 직접 구워 먹었는데 불 피우기가 귀찮아 패스트푸드를 먹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농사를 포기하는 사람도 많다. 식생활 개선을 위한 교육을 초등학생 때 시작할 것을 주문했다.”

-WPRO의 한국인 직원은 얼마나 되나.
“첫 번째 임기를 시작할 때 WPRO의 직원 600여 명 중 한국인은 3명에 불과했다. 지금은 10명으로 늘었다. 인턴 제도를 활성화해 WPRO엔 100명의 인턴이 일하고 있으며 이 중엔 한국인도 여럿 포함돼 있다.”

-WPRO 운영 자금은.
“회원국 정부가 의무적으로 납부하는 분담금 25%와 각 회원 국가나 단체가 추가로 제공하는 자발적 기여금 75%로 운영된다. 한국 정부의 자발적 기여금은 연간 500만 달러 정도로 계속 늘고 있으며 호주·미국·일본에 이어 네 번째다. 일본의 분담금은 감소 추세다.”

신 박사는 마닐라에서 산다. 연간 해외 출장일수가 평균 200일이 넘는다. 1등석을 탈 수 있지만 비즈니스석을 이용한다. 태평양 오지 도서국을 방문할 때는 비행기를 세 번 이상 갈아타며 24시간 이상 걸리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여행을 좋아하기에 힘든 줄 모르고 다닌다고 했다. 라오스·파푸아뉴기니의 오지도 자주 찾아가는 곳이라 한다. 하이옌 태풍 피해가 났을 때엔 필리핀 보건장관과 함께 전 지역을 순회했다. 공항에 내린 뒤 곧장 자동차로 12시간씩 이동하기도 해 그를 수행하던 젊은 직원들이 힘들어하기도 했다. 신 박사는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데다 나를 수행하는 방문국의 보건 책임자들에게 실상을 바로 알리고 대책을 논의하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신영수 경기고·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1977년 미국 예일대학에서 보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 의대 교수·서울대병원 기획관리실장·국민 건강보험 심사평가원장을 역임했다. 서울대 교수 정년퇴직과 거의 동시에 WHO 서태평양 지역사무소(WPRO) 사무처장에 선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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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