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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사가 쓰는 性칼럼] ‘짝’의 비극과 관음증

“실연은 지옥에서 우리가 겪을 모든 고통과 같다.”

미국의 시인 에밀리 디킨슨은 버림받은 사랑의 고통을 그렇게 비유했다. 이 세상 대다수는 낭만적인 구애감정이 거부당하면 엄청난 고통을 겪는다. 사랑은 참 어렵기도 하지만, 우리는 본능적으로 친밀관계의 짝을 찾는 데 몰두한다.

정신분석가 에릭슨 박사는 사회성 발달이론을 통해 “20∼40대의 초기 성인기(期)에 가장 중요한 이슈가 인간관계의 친밀감을 이루는 것”이라고 했다. 친밀감을 형성할 수 없거나 거부당하면 당사자는 고립감과 좌절에 빠진다.

최근 한 여성 출연자의 자살로 논란이 된 ‘짝’이란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나름 매니어층을 두고 있었다. 짝짓기를 엿보는 대중의 심리를 이용한 프로였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을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위험성 자체에만 초점을 맞춰 분석해선 안 된다. 남녀 간 짝짓기의 갈등을 다뤄온 필자의 눈엔 인간 본연의 구애와 짝짓기 과정에 동반되는 좌절감을 너무 경솔히 파고든다는 것이 더 큰 문제로 비쳤다.

일러스트 강일구
짝짓기와 그 좌절에서 느끼는 감정은 당사자의 존재감과 직결된다. 매우 섬세한 면이 있다. 특히 좌절의 당사자에겐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차분한 감정적 치유 과정이 필요하다. 누구도 자신의 실연(失戀)을 공개재판에 올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래서 좌절을 맛본 사람은 고독을 씹기도 한다. 위로받고 싶을 때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조용히 도움을 받는 것이 낫다.

그런데 구애 과정이 만인에게 공개되고 선택받지 못하면 카메라 앞에서 눈물겨운 밥을 혼자 모래알 씹듯 삼켜야 한다. 이 과정을 클로즈업하는 것은 해당 프로의 잔혹한 관음증을 의미한다. 또 다른 잔혹함은 연애의 좌절에 대한 치유나 위로의 과정이어야 할 가족과의 대화마저 녹음돼 위로의 기회가 박탈된 점이다.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정서인 친밀감을 찾는 구애와 사랑이 잔인한 생존게임이 됐고, 좌절의 고통은 관음욕구 탓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방송 나가면 더 이상 한국에서 못 살아.”

자살한 출연자는 이렇게 표현했다. 물론 좌절의 공개에 대해 느끼는 수치심은 개인차가 있다. 숨진 여성은 주위의 관심이 줄면서 과거 연인과의 결별 아픔이 다시 생각났을 수도 있다. 방송 제작진에겐 짝짓기 생존자의 희열은 크게 다루더라도 패배자의 절망은 덮어두는 배려가 필요했다. 특히 짝짓기 실패의 고통은 더욱 그래야 했다. 하지만 실패자의 고통을 너무 크게 다뤄왔고 그 내막엔 제작진이 대중의 관음증 충족을 맹목적으로 좇았던 측면이 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 출연자들은 연예인 지망생처럼 무대와 관객의 평가에 준비된 사람들이 아니다. 리얼리티 프로를 통해 시청자들이 승자의 성취에 함께 기뻐하고 감동을 느낄 수 있지만, 좌절한 사람의 슬픔에 대해 집단적으로 관음하는 것은 몹시 위험하다. 그동안 ‘짝’ 외엔 실패한 사람들의 고통을 지나치게 클로즈업하는 경우가 적었던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인간은 짝짓기를 놓고 경쟁한다. 구애의 좌절은 인간 본연의 감정을 건드리기에 그 무엇보다 고통스러울 수 있다. 이번 사건은 인간에게 가장 근원적인 경쟁인 짝짓기의 고통과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지나친 관음증이 증폭돼 초래된 비극이다. 운이 없어 벌어진 사고가 아니라 구애 좌절의 가슴앓이를 까발리던 악습이 만든 불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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