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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전 사고보다 두려운 것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난 지 3년이 지났다. 이 때문에 한동안 원자력 발전소가 여론의 뜨거운 중심에 있었다. 발전소를 신규 건설하는 것에 대한 찬반 논쟁, 나아가 현재 사용하는 발전소를 폐기하자는 여론까지 합세하면서 모든 화제의 주인공이었다. 그 이전에도 원자력 발전소와 연관된 사고는 종종 있었고 대부분 인재(人災)였다.

그런데 후쿠시마의 경우는 지진이라는 자연재해가 도미노식으로 초래한 결과라는 점이 다르다. 자연재해의 특성은 예측하기 쉽지 않고 피하기도 어렵다. 사실 원자력 발전소는 이런 정도의 충격은 충분히 감당하게 설계돼 있다. 문제는 쓰나미의 급습으로 전력이 차단되고, 이게 다시 원자력 발전소의 핵심부인 원자로에서 발생되는 고열을 식히는 냉각 시스템을 멈추게 한 것이다.

그렇다면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인해 사상자가 몇 명이나 될까. 사망자 수는 1만5000명 정도. 대부분이 쓰나미로 인해 생명을 잃었다. 일반인들은 방사능 피폭과 관련해 사상자가 다수 나왔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이로 인한 사상자는 제로에 가깝다. 쓰나미로 인한 경우 이 외의 사상자는 방사능 피폭이 아닌 다른 이유로 인한 것이었다. 복구 작업에 참여한 종사자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방사능 피폭을 피할 수는 없었는데, 아직까지는 사망을 포함해 심각한 급성 질병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쓰나미는 이 지역 병원의 약 80%를 치명적으로 강타했다. 나머지 병원은 지진이 난 후 처음 3일간 발생한 2000여 명의 부상자의 치료에 전력을 다해야 할 상황이었다. 일본은 일찌감치 재난의료구조팀을 효과적으로 운영해 오고 있는데 의사 1인, 간호사 2인, 차량과 헬기 등을 통한 이동안내자 1인 등을 포함해 4인이 한 팀으로 활동한다. 중앙정부의 재난구조팀이 현지로 급파됐으나 중앙정부와 현지 간에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아 정작 절실히 의료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다고 한다.

가장 큰 논란은 입원 환자를 대피시키는 과정이다. 약 2200명의 환자를 20㎞ 밖으로 대피하는 과정에 일부 환자는 헬기로 이송됐지만 대부분의 환자는 의료진이 동반하지 못한 상태로 전세버스에 실려 이송됐다. 대부분 고령인 이들은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아무런 의학적인 도움도 없이 24시간이나 전세버스에 실려 다녔다. 이 가운데 60여 명의 환자가 대피 도중 사망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3월의 쌀쌀한 날씨에 온종일 버스 안에 있던 환자들은 저체온증·탈수와 앓고 있던 질병으로 사망에 이른 것이다.

이는 일본의 의료계에 심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대피하던 환자들이 입원해 있던 병원들은 원전에서 근거리에 있었고, 따라서 대피가 시작된 것은 사고가 난 지 3일 후였기에 높은 양의 방사능을 예견했지만 이동용 방사능 측정기로 검사한 결과 이들 환자에게서는 잔류 방사능이 거의 검출되지 않았다. 3일간 방치됐지만 창을 닫고 외부 공기의 유입을 막은 것이 유효했던 것을 증명한 셈이다.

전세버스가 병원들을 찾아다니며 이들을 입원시키려 했으나 대부분 거절당했다. 이들이 입원하게 되면 의료진이나 기존 환자가 방사능에 오염될 것을 염려해서 그랬다고 한다. 방사능은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처럼 주변을 감염시키는 것이 아니다. 이미 방사능 오염이 없음이 확인됐고, 정 미심쩍으면 입던 옷을 폐기하고 전신 샤워를 한 후 새 옷을 입으면 그만인 것이다. 이 사태로 인해 일본의 의학교육 중 방사선에 대한 교육 일정을 재편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국제원자력기구에서도 의과대학의 교육 일정에 방사선 관련 부분을 강화하는 권고안을 준비하는 중이다.

일본에서 원자력 발전소와 관련해 방사능 피폭사고가 발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9년 9월 도카이에서 3명의 작업 종사자가 과량의 방사능에 피폭됐고 그중 2명이 사망한 예가 있다.

이 사건이 기화가 돼 원자력 재난 대처에 관한 특별법까지 제정됐고, 2003년에는 방사선 (피폭) 응급 의학의 권장안까지 구체적으로 제정됐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태에 대한 초기 대응 상황을 보면 그처럼 만반의 준비를 잘 갖추어 놓고 매뉴얼대로 움직일 것 같았던 그들도 당황함과 소통의 무질서로 인해 혼란의 연속이었음을 여실히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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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