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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unday] 대통과 소통, 그리고 불통

영어로 대통령은 ‘president’다. 회의를 주재한다는 뜻의 ‘preside’에서 파생된 명사다. 다같이 중지를 모으는 자리에서 사회자 역할을 한다는 의미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개념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게 동양으로 넘어오면서 ‘군주’의 개념으로 바뀌었다. 1854년 맺어진 미·일 화친조약에는 ‘미국 대통령(大統領)’이란 표현이 나온다. 한문의 어원을 보면 클 대(大) 자와 통치할 통(統) 자를 써서 ‘큰 통치자’라는 뜻이다. 여기에 거느릴 령(領) 자까지 붙었다. 민주주의적 리더십의 대명사여야 할 대통령이 왕처럼 군림하는 통치자로 둔갑해 버린 셈이다.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어쩌면 대통령이란 단어가 우리 제헌헌법에 ‘고유명사’로 자리 잡으면서 무소불위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는 이미 그 싹을 틔웠는지도 모르겠다. 최근 여야를 불문하고 정치권에서 강하게 일고 있는 분권형 개헌 논의는 이런 측면에서 정치사적 의미가 있다.

박근혜 정부의 지난 1년 공과 중 가장 아쉬운 부분으로 많은 이가 불통을 꼽는다. 기실 2012년 대선 이후 국민 사이에선 대통합에 대한 기대가 컸다. 박 대통령도 국민대통합위원회를 만들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오랜 측근인 한광옥 전 민주당 고문을 위원장에 임명하며 통합의 기치를 높이 내걸었다. 야당에선 “박 대통령이 6개월만 대통합을 외쳐도 야권은 지리멸렬해질 것”이란 우려마저 나왔다. 하지만 대통령의 불통 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여의도 정치권도 다르지 않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당내에서도, 당끼리도 물과 기름처럼 따로 놀고 있다. 새정치연합도 불통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당내 소통도 안 되는데 어떻게 유권자와 소통할 수 있겠는가. 오로지 대통령에 대한 열망만 간직한 채 끝도 없는 갈등을 반복하는 정치 현실에 국민은 고개를 돌릴 뿐이다.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는 억울해할지 모르지만 많은 국민이 아니라고 하면 다시 한번 되돌아볼 줄 아는 정치인이 진정한 지도자일 게다.

소통을 하려면 자기 자신부터 낮아져야 한다. 나는 대통령인데, 나는 국회의원인데 하는 마음속 허식을 벗어던지고 국민과 눈높이를 맞춰 가야 한다. 국민과 진정으로 소통(疏通)하기 위해서는 소통(小統), 즉 낮은(小) 자세로 하나가 되려는(統)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누가 먼저 대통에서 소통으로 나아갈지, 그 간극을 누가 먼저 메워 갈지 국민은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이는 다가올 지방선거와 차기 총선·대선에서 민심을 얻는 지름길이기도 할 거다. 이런 노력들이 쌓일 때 정치인들은 ‘소통’에 주력하고 국민은 운수가 ‘대통(大通)’하는 세상이 오지 않겠는가. 어찌 보면 너무나 간단한 것을, 상식을 가진 국민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만한 문제의식을 정작 정치인들만 모르쇠로 일관한다는 데 한국 정치의 비극이 있다.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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