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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의 우리 땅 우리 나무 <8> 매화나무

선비매화의 대표 격인 경남 산청군 단속사지 정당매(政堂梅·사진 위). 스님매화의 대표 격인 전남 장성군 백양사의 아름다운 고불매(古佛梅·사진 아래).
남녘의 대지에 생명이 깨어나는 첫 신호는 매화로부터 들린다. 1월 말 제주도에서 피기 시작하는 매화는 남부 지방을 거쳐 4월 중순 서울의 궁궐에 이를 때까지 거의 3개월에 걸쳐 핀다. 이렇게 오랜 기간 피는 것은 일단 기온의 차이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오랜 세월 매화가 사람 곁에 있으면서 수많은 품종이 생기고, 또 꽃피는 시기가 각각 다른 탓도 있다. 우선 색깔로는 백매(白梅)와 홍매(紅梅), 꽃잎 모양에 따라 홑꽃과 겹꽃, 꽃을 주로 감상하는 화매(花梅)와 열매 수확을 주목적으로 하는 실매(實梅)가 있다.



남명매·선암매·고불매 … 선비·스님들 수백년 벗 삼아 온 고목 매화

 오래된 고목 매화(古梅)는 젊은 매화보다 꽃이 늦게 핀다. 대체로 3월 중순에 고매가 피기 시작한다. 옛 선비들이 눈발이 흩날리는 이른 봄날 나귀 등에 얹혀 고매 찾아가기를 했듯, 오늘날의 매화 매니어들은 지금쯤 탐매(探梅) 일정 잡기에 여념이 없다.



 유명한 고매는 대부분 선비들의 옛집과 스님들의 수행 공간인 절에서 수백 년 세월을 살아가고 있다. 선비매화의 대표는 경남 산청 단속사지의 조선 초 문신 강회백(1357~1402)이 심었다는 정당매(政堂梅), 그리고 이곳에서 약 8㎞ 떨어진 남사마을에 고려 말 문신 하즙(1303~1380)이 심었다는 원정매(元正梅)다. 둘 다 원줄기는 죽어버리고 밑둥치에 곁가지가 나와 간신히 생명을 이어가고 있지만 아쉬운 대로 고매의 운치를 느낄 수 있다.



 여기서 멀지 않은 산천재(山天齋)에는 조선 중기의 학자 조식(1501~1572)이 심었다는 남명매(南冥梅)가 비교적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스님들이 아끼고 가꾸어온 매화로는 순천 선암사 선암매(仙巖梅), 장성 백양사 고불매(古佛梅), 구례 화엄사의 흑매(黑梅) 등이 있다. 남쪽의 웬만한 절에는 고매 한두 그루가 꼭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매화는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수수하지도 않은 품격 높은 동양의 꽃이다. 중국의 쓰촨성이 고향인 매화가 처음 사람과 맺은 인연은 꽃이 아니라 열매였다. 청동기 시대 옛 사람들은 소금과 함께 식초를 만드는 원료로서 매실을 이용했다. 중국고전 『시경』의 ‘국풍’ 편에는 ‘매실따기(<647D>有梅)’란 이름으로 꽃이 아니라 열매부터 먼저 등장한다.



 매화가 꽃으로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은 한무제(기원전 141∼87) 때 궁궐에 심으면서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이후 매화는 수많은 시인과 묵객들이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소재로 사랑을 받아왔다.



 매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비교적 이르다. 고구려 대무신왕 24년(41)에 첫 기록을 찾을 수 있고, 『삼국유사』에는 ‘모랑의 집 매화나무가 꽃을 피웠네’라는 시가 있다. 매화는 중국을 떠나 우리 땅으로 건너오면서 몸만 달랑 온 것이 아니다. 꽃과 열매로 사람과 맺어둔 소중한 인연도 고스란히 함께 갖고 왔다.



 하지만 매화가 널리 알려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까지 매화의 흔적은 그리 많지 않다. 고려 후기에 이르러 매화는 서서히 선비들의 글 속에 녹아 들어간다. 그래도 매화가 정말 활짝 핀 시기는 조선왕조에 들어와서다. 난초·국화·대나무와 더불어 사군자의 첫머리에 꼽혔고, 세한삼우(歲寒三友)에는 소나무·대나무와 함께 조선사회를 대표하는 지식인들의 문화이고 멋이었다.



 매화나무는 꽃으로 본 이름이고, 열매로 보면 매실나무라고 하나 둘은 같은 나무다. 살구나무와도 구별이 어려운데 꽃잎에 꽃받침이 꼭 붙어 있으면 매화나무, 서로 떨어져 있으면 살구나무다.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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