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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명문장<9>최재천 국립생태원장

최재천 원장이 『설국』을 읽은 건 중3 때였다. 막 성에 눈뜨던 사춘기 소년이었다. 주인공이 긴 터널을 빠져나와 설국에 닿았듯 그는 다른 세계로 통하는 터널을 책 속에서 발견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설국』의 첫 두 문장은 세계 문학사에서 소설의 도입부 중 가장 아름답다고 칭송받는다. 소설이지만 마치 한 편의 하이쿠를 읽고 있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 하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문장들이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일본어가 아니라 번역본으로 읽는 사람들 중에는 이 두 문장 어디에 그렇게까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해야 할 아름다움이 있는지 의아해하는 이들이 있다. 이 두 문장에는 일본 특유의 리듬이 있는데 사실상 그걸 번역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설국』은 60년대 초반부터 번역되기 시작했는데 아직 저작권 문제가 까다롭지 않던 시절이라 참으로 다양한 출판사에서 다양한 번역자들에 의해 수십 종의 책이 출간되었다. 여기 인용한 문장들은 지금 내 책을 일역(日譯)하고 있는 일본인 동료에게 멋 부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 직역해달라 부탁해 얻어낸 것이다.



국경의 긴 터널 빠져나가자 설국, 밤의 바닥이 하얘졌다

 나는 이 도입부의 아름다움은 겉으로 드러나는 감각적인 표현의 미가 아니라 달랑 두 문장으로 독자를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으로 보내버리는 ‘무서운’ 깔끔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나른한 오후 언니와 함께 강둑에 앉아 있던 앨리스가 회중시계를 들고 다니며 사람처럼 말하는 흰 토끼를 따라 굴로 들어가 환상적인 모험을 하게 된다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도입부는 영문으로 거의 한 쪽에 달한다. 그러나 여기서 ‘국경’이라는 표현은 사실 옳지 않다. 막부시대라면 모를까 가와바타가 이 글을 쓰던 1935~1947년의 니가타(新潟)는 행정구역상 ‘현(縣)’에 지나지 않으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현경(縣境)’이라 썼어야 한다. 독자를 단번에 ‘눈의 나라’ 즉 ‘설국(雪國)’으로 인도하기 위해 조금 무리하게 ‘국경’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리라. 하지만 긴 터널을 빠져나가자마자 맞닥뜨리는, 모든 게 흰 눈으로 덮여 있는 그곳은 차라리 다른 나라일레라.



 이번 겨우내 고향 강릉이 눈폭탄을 맞았다. 눈 때문에 때아닌 고생을 한 동네 어른들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어릴 적 추억에 겨워 몇 번이고 달려가고 싶었다. 무려 109.7㎝의 눈이 내렸던 69년 2월 내 키만큼 쌓인 눈 속에 굴을 뚫으며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몰라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는 마침 내가 한창 문학청년의 꿈을 꾸던 시절이었다. 중학교 2학년 어느 날 운동장에서 뛰놀다 엉겁결에 따라간 백일장에서 뜻밖에 시 부문 장원을 거머쥔 나는 이 세상에 시인이 되기 위해 태어난 줄로 착각하며 살았다. 이듬해 겨울 가와바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자 나는 곧바로 그의 『설국』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하얀 눈을 배경으로 관능적인 게이샤 고마코와 청순한 소녀 요코를 두고 알 듯 모를 듯, 때론 뜨겁게 때론 초연한 듯 애정행각을 벌이는 시마무라에 스스로를 투영해 보며 이제 막 성에 눈을 뜨는 사춘기 소년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사실 내게 강릉은 언제나 ‘저세상’이었다. 고향이긴 했지만 학교에 다니기 위해 서울이라는 지옥에 살아야 했고 겨우 서너 달 방학 동안만 머물 수 있었던 그곳. 벌써 열 몇 시간을 달려온 기차가 지금은 동해시가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묵호라 부르던 역에 멈춰 선다. 기차가 서서히 기운을 되찾아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면 나는 창문에 뺨을 붙인 채 숨을 고르기 시작한다. 잠시 후 터널로 들어선 기차 역시 가쁜 숨을 몰아 쉰다. 이윽고 기차가 터널을 빠져나가자 망상해수욕장의 동해바다가 창문 가득 쏟아져 들어온다. 억지로 꿰어 맞추자면 “낮의 바닥이 파래졌다.”



 터널 또는 좁은 동굴은 통과의례의 상징성을 지닌다. 도연명(陶淵明)의 유명한 산문 『도화원기(桃花源記)』에는 진(晉)나라 무릉(武陵)의 한 어부가 복숭아 꽃잎이 나부끼는 숲 속의 물길을 따라가다 사람 하나가 간신히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동굴을 빠져나가자 홀연 환하게 탁 트인 낙원이 펼쳐진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흔히 세상과 동떨어진 별천지를 비유적으로 일컫는 ‘무릉도원(武陵桃源)’이 바로 이 이야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당(唐)나라 때 순우분이라는 사람이 꿈속에서 괴안국(槐安國) 사신의 초청을 받고 자기 집 마당에 있는 홰나무 밑 개미굴로 들어가 그곳의 왕녀와 결혼해 호강하다 현실로 되돌아온다는 『남가태수전(南柯太守傳)』과 당 현종 때 도사 여옹(呂翁)이 한단(邯鄲)으로 가던 중 주막에서 만난 노생(盧生)이라는 젊은이가 신세한탄을 늘어놓고는 졸기 시작하자 보따리 속에서 양쪽으로 구멍이 뚫린 도자기 베개를 꺼내 괴어주었더니 노생이 그걸 베고 잠이 들어 꿈속에서 명문가 규수와 결혼해 80세가 되도록 행복하게 살다 깨어났다는 『침중기(枕中記)』도 모두 터널과 같은 좁은 공간을 통과해 다른 세상에 이르는 이야기다. 서양의 이상향인 유토피아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뜻을 지니지만, 중국 후난성의 무릉, 일본 니가타의 설국, 그리고 내 고향 강릉은 실제로 우리 삶에 존재한다.



 나는 문과와 이과를 나눠 가르치는 교육후진국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과학자의 길로 등 떠밀려 살아왔다. 물론 능력이 고작이라 그랬지만 미국에 유학해 박사학위를 하기까지 무려 11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데는 작지만 또렷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허구한 날 연구실로 향하던 발걸음을 속절없는 게시판이 불러 세운다. 옥스퍼드대의 유명한 철학 교수가 데이비드 흄에 관해 강의를 한단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같은 시간에 미술사학과에서는 모딜리아니의 작품 세계에 관한 강의가 벌어지는 걸까. 뜻밖의 갈림길에 선 내게 연구실은 더 이상 정당한 선택지 중에 끼지도 못한다. 얼마 후 나는 낯선 사람들 숲에 끼어 앉아 아프리카 부족 유물에서 발견되는 야릇한 얼굴 표정이 어떻게 모딜리아니의 그림에 나타나는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나는 평생 과학자의 길을 걸으면서도 늘 하릴없이 인문학으로 통하는 좁은 터널을 넘나들었다. 다행히 내가 전공한 생태학이라는 학문은 이 세상 모든 것들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보니 이런 나를 늘 너그럽게 용서한다. 어쩌다 보니 국립생태원 초대 원장이라는, 팔자에 없는 행정직을 맡았다. 긴 행정의 터널을 빠져나가면 멋진 통섭적 기관이 기다리고 있기를 기대해 본다.



최재천은 1954년 강릉생. 서울대·펜실베이니아주립대·하버드대 졸업. 하버드대·미시간대·서울대 교수를 거쳐 현재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와 국립생태원 초대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한국생태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기후변화센터’와 ‘생명다양성재단’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 『열대예찬』 『대담』 『과학자의 서재』 『다윈 지능』 『통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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