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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소크라테스의 죽음, 자살일까 타살일까

자살의 역사

조르주 미누아 지음

이세진 옮김, 그린비

516쪽, 2만9000원




프랑스 역사학자인 지은이는 ‘자살 연구가 쉽지 않다’라는 푸념으로 책을 시작한다. 서양 기독교 사회에서 자살자는 교회 절차에 따라 장례를 치르지 못했고 본당 교구 사망자 명부에서도 누락됐기 때문이다. 명백히 존재하는 자살을 사회적으로는 ‘없는 것’으로 치부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자발적 죽음 앞의 서양사회’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지은이는 이런 식으로 서양에서의 자살의 사회사를 미시적으로 다룬다.



 종교적 금기가 별로 없었던 고대 그리스 시대만 해도 자살은 자기 선택에 의한 죽음의 한 방식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회한을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데미스토클레스는 애국적 행동의 하나로서 자살을 선택했다니 그럴 만도 하다. 클레오메네스는 명예를 위해, 데모크리토스는 늙고 쇠약한 몸으로 살고 싶지 않아, 사포는 사랑 때문에, 히포는 순결을 지키려고 각각 같은 선택을 했다. 유명한 철학자 제논·디오게네스·에피쿠로스는 삶을 멸시하며 철학적인 자살을 택했다. 소크라테스도 삐딱한 재판 태도로 죽음을 자초했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자살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렇듯 많은 그리스인이 울림이 있어 보이는 자살을 택했고 사회는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심지어 자살을 시민 권리의 하나로 여기는 풍조마저 있었다. 로마 시대에는 삶의 권태, 정치적 문제, 노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지금과는 생사관이 달랐다.



 하지만 서양사회가 기독교 세상으로 변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자살은 신에 대한 반항으로 간주됐으며 사회는 적대적으로 대했다. 자살은 악마의 유혹에 빠진 행동으로 비난받았고 종교적 금기가 됐다. 그럼에도 르네상스 이후 자살은 다시 되살아났다.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수많은 대문호는 작품에서 자살을 자기표현의 한 방식으로 그렸다.



 근대에 들어와 자살은 ‘자기 살해’라는 범죄로 간주돼 국가의 제제를 받기도 했으나 잠시뿐이었다. 17세기 프랑스는 자살자의 재산을 몰수하는 법을 시행했다. 하지만, 힘 있는 귀족은 적용을 면제받는 것은 물론 자살을 대체할 수 있는 합법적인 결투를 공공연히 벌였다. 자살은 사회적 평등 문제로 비화했다. 1671년 유명한 요리사인 바텔이 연회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귀족도 아닌 인물이 저토록 명예를 소중히 여기다니’라는 여론이 일면서 자살에 대한 사회적 대응방식에 영향을 준 것이다.



 계몽주의 시대가 되면서 자살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베르테르의 낭만적 자살과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파우스트 박사의 철학적 자살처럼 숭고한 형태로 그려지기도 했다. 모방자살이 줄을 이은 것은 물론이다. 이렇듯 자살은 사회적 인식 및 분위기와 관련이 깊다는 게 지은이의 생각이다. 자살의 사회적 성격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자살은 꺼림칙한 주제다. 입에 올리기도 거북하다. 그렇다고 마냥 피할 수만은 없다. 그만큼 사회적으로 다급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자살률 1위인 한국에서는 말이다. 자살은 단순한 인구동태 통계가 아니라 인간의 내면과 관련한 문제다. 그러니 만큼 의학적·사회과학적인 방법에 보태 이처럼 인문학적인 접근도 필요하지 않을까.



채인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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