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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칼럼] 손을 들어!

박주원
홍콩대 신문방송학과 2학년
최근 모 방송사에서 우리나라 대학을 심층 취재한 다큐멘터리가 방영됐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질문이 없는 강의실이었다. 제작진이 한 대학생에게 수업시간에 다섯 번 질문을 하라는 미션을 줬다. 평소 익숙했던 강의실의 고요함을 깬 학생의 거듭된 질문에 쏟아지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은 시청자인 나까지 민망하게 했다.



 미국 고등학교에서 수업을 받을 때 내게 문화적 충격을 준 수업이 있었다. ‘World View(세계 시각)’라는 수업이었는데 신의 존재부터 미국-이라크 전쟁의 타당성까지 사람들이 의문점을 품어봄 직한 주제에 대해 매일 토론을 벌였다. 미국에서도 특히 보수적인 오클라호마주 친구들은 이라크 전쟁 발단의 원인이 석유이지 않느냐는 내 자극적인 질문에 차분한 태도로 미국의 입장을 설명하며 반박했다. 불과 얼음이 공존하는 토론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대학 수업은 더 거침이 없다. 동서양이 공존하는 홍콩의 대학 생활에서도 질문과 토론은 수업의 주가 됐다. 전공인 정치학 수업에서는 동서양의 이념 대립이 첨예하다. ‘왜 민주주의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으로 수업이 시작되면 중국 학생들은 민주주의의 타당성에 대해 질문한다. 영미 계통의 학생들은 처칠을 인용하며 정치제도 중에서 “가장 덜 나쁜 제도는 민주주의”라고 반박한다. 끝이 보이지 않고 정해진 답도 없지만 끊임없이 질문하고 토론한다. 교수는 한쪽에서 흡족한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한다.



 우리의 침묵에 대해 사람들은 주입식 교육을 탓한다. 군대로부터 비롯된 위계질서와 딱딱한 조직문화가 사회에 침투했다고도 한다. 혹자는 사회적 순서와 질서를 따지는 장유유서를 탓해보기도 한다. 과연 공자님의 오륜이 문제인 걸까? 아니면 틀리기를 두려워하는 우리의 문제일까?



 침묵의 원인을 묻기 전에 학문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다큐멘터리에서 어떤 대학생들은 전공이 아닌 강의에서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거나 딴짓에 몰두했다. 이렇게 필요한 학문과 불필요한 학문을 나누는 행동을 보며 나는 우리가 취업과 스펙을 위한 공부를 하고 있다고 감히 말해본다. 많은 대학생은 대학이 취업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한다. 하지만 상아탑의 주인은 우리다. 수업에서 어떻게 배울지, 그리고 무엇을 얻을지는 우리가 결정한다. 2012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마치고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기자들에게 마지막 질문을 할 기회를 주었다. 머뭇거리고 고민하던 한국기자들의 침묵을 틈타 중국기자가 손을 들고 자신 있게 발언권을 요구했다. 개최국인 한국에서 마지막 질문을 장식한 기자는 중국기자였다.



 “멍청한 질문은 절대 없단다.” 고등학교 선생님이 매일 하시던 말씀이다. “안녕들 하십니까?” 지난겨울, 질문은 그렇게 시작됐다. 지금이라도 얼른 물음표를 남발해보자. 밑져야 본전이다.



박주원 홍콩대 신문방송학과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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