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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인지 반통일부인지" … 위기의 류길재 장관

류길재 통일부 장관(앞줄 왼쪽)이 지난 6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16차 정기 대의원회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홍사덕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은 북한에 비료 보내기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으나 13일 발대식을 앞두고 돌연 행사가 취소됐다. 류 장관 오른쪽은 이병웅·마의웅 민화협 공동의장. [뉴시스]

취임 1주년(3월 11일)을 맞은 ‘류길재호(號)’의 통일부가 흔들리고 있다. 대북 주무부처로서의 위상 추락은 가속화했고, 직원들의 사기는 바닥을 쳤다는 우려가 안팎에서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시동을 걸었고 ‘통일 대박’을 강조하고 있는 시점이지만 정작 통일부는 추진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우선 대북 협상의 중심에서 밀려난 것이다. 지난달 남북 고위급회담 때 통일부는 회담 테이블을 청와대(국가안보실)에 내줬다. 남북회담본부라는 별도 조직을 두고 전략을 짜고 회담을 이끌던 통일부로서는 충격이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통일부 아닌 청와대랑 대화를 하자는 이유도 권위 있고 실권 있는 쪽과 하겠다는 의미”라며 “예전엔 통일부였는데 요즘은 청와대가 됐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준비위원회라는 조직을 대통령 직속으로 만들겠다고 하자 통일부의 위기감은 커지고 있다. 남북회담과 통일정책 수립, 대북 지원 등 통일부 본연의 임무와 역할에서 배제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일각에선 이명박 정권 출범 때 통일부 폐지론이 일었던 것보다 더 위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간부 직원은 “살아도 산 게 아닌 상태가 되는 게 더 힘들 것이란 말이 나돈다”고 귀띔했다.

 이 같은 위기상황을 통일부가 자초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대북정책을 놓고 청와대와 엇박자를 내며 갈팡질팡하는 등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취임 한 달 만에 류 장관이 청와대와 정반대의 메시지를 낸 게 잘못된 출발점이다. 지난해 4월 11일 류 장관은 내외신 회견을 하면서 “북한 당국은 대화의 장으로 나오라”고 말했다. “북한에 대한 대화 제의냐”는 기자의 질문에 류 장관은 “그건 아니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이날 밤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 의원들을 불러 “북한과는 대화할 것”이라며 대화 제의 의사를 확인했다. 정권 초 청와대와 엇박자를 내며 혼선을 빚은 데 따른 후유증은 오래갔다.

 외교안보 부처들 사이에서 통일부가 주도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외교통일위 소속인 새누리당 김영우 의원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는 정책은 만들어놨지만 신뢰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들어갈지 세부 사안은 보이지 않는다. 또 통일 대박론이 나오고 나서도 통일부가 별 아이디어가 없어보인다”고 말했다. 통일부 정책보좌관 출신인 민주당 홍익표 의원도 “통일부가 대북정책을 주도적으로 하기보다는 나중에 일이 다 된 뒤 밥숟가락을 올려놓는 식으로 일하고 있다”며 “다른 부처와 정치권, 여론의 눈치만 살피는 데 익숙해져 있으니 내부 직원들의 사기까지 저하됐다”고 지적했다. 대북 지원이나 사회·문화 교류를 추진하는 민간 단체들은 사업 추진 과정에서 자주 ‘통일부의 벽’에 부닥친다고 호소한다. 신청을 자진 철회하도록 압박하거나 “되지도 않을 사업이니 불가하다”고 퇴짜를 놓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특히 대북 문제의 경우 통일장관이 얼마나 소신 있게 임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당초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을 남북관계 복원의 첫 단추라고 공언했다. 통일부 역시 직간접적으로 민간 단체들에 2월 하순 상봉행사 직후 대북 접촉과 지원을 준비하라는 신호를 줬다. 통일부는 그러나 개성 등에서의 민간 접촉을 불허하는 등 태도를 바꾸며 신뢰를 잃고 있다. 이달 들어 더 고삐를 죄는 형국이라고 한다. 익명을 원한 대북 지원단체 관계자는 “통일부인지 반(反)통일부인지 모르겠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고 전했다.

 학자 출신인 류 장관의 리더십 문제도 도마에 오른다. 회담 대표를 맡은 통일부 간부들이 석연찮은 이유로 전격 교체되는 상황에서 장관으로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건 부하 직원들로부터 외면받는 상황을 초래했다. 지난해 8월 개성공단 정상화 당국회담 수석대표로 나선 서호 국장이 돌연 낙마했고, 지난달엔 천해성 실장이 청와대 비서관에 내정됐다 철회되는 사태가 벌어졌지만 류 장관은 침묵했다. 국회 ‘통일을 여는 의원모임’ 대표인 원유철 새누리당 의원은 “현재 구도상 통일부 장관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힘이 안 실리는 거 아니냐는 안타까움도 있다”며 “통일부가 좀 더 자신감을 갖고 남북 관계 개선과 통일정책에 대해 청와대에 건의하고 자기 비전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용수·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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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