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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는 중국, 가슴은 한국 … 귀화 전지희 내일은 탁구왕

전지희가 지난해 12월 30일 부산에서 열린 종합탁구선수권 여자부 개인전 단식 결승에서 석하정(대한항공)을 향해 공격을 시도하고 있다. 전지희는 세트스코어 0-4로 져 준우승했다. [사진 월간탁구]
최근 한국 스포츠에 귀화 선수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여자 탁구 단체전에 출전한 중국 출신 당예서(33·대한항공)가 귀화 선수 첫 올림픽 메달(동메달)을 따냈고, 2014 소치 겨울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계주에서는 대만 화교 3세인 공상정(18·유봉여고)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오는 9월 열릴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탁구 여자대표팀의 전지희(22·포스코에너지)를 주목해야 한다. 중국 허베이성 출신으로 2011년 한국 국적을 취득한 그는 귀화 선수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종합 대회 개인전 금메달에 도전한다. 지난 9일 서울 광화문 근처에서 만난 전지희는 어느새 한국 사람이 다 돼 있었다. 2008년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한국말이 서툴러 애를 먹었다. 그러나 이제는 어느 누구와도 자유자재로 말이 통한다. 전지희는 “한국에 맛있는 게 너무 많다. 피자·스파게티도 맛있고, 요즘 동태찌개에도 맛을 들였다”며 활짝 웃었다.

 전지희는 초등학교 탁구코치로 일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7세 때 탁구를 시작했다. 15세까지만 해도 그는 중국 차세대 기대주였다. 10세 때인 2002년 칭다오로 탁구 유학을 떠난 그는 2005년 류궈량·궁링후이 등 중국 국가대표 선수들이 거쳐간 루넝클럽에 입단했다. 2007년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 아시아청소년선수권 여자 단식에서 2위에 올랐다.

 그러나 등록 선수만 3000만 명에 달하는 중국 탁구계에서 성인 대표팀까지 오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경쟁에서 밀린 전지희로서는 변화가 필요했다. 그때 김형석(52) 현 여자대표팀 감독이 손을 내밀었다. 당시 포스코에너지 창단을 앞두고 중국에서 새로운 자원을 찾던 김 감독은 “지희는 더 나은 탁구를 하고 싶어하는 의지가 남달랐다. 그 마음만 갖는다면 좋은 선수로 키워볼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전지희는 “그냥 탁구를 더 잘하고 싶었다. 깊이 고민하지도 않았다. 다른 환경에서라도 내 실력을 당당히 뽐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운동만 하던 그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다른 언어를 배우는 건 쉽지 않았다.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 소속팀 언니들을 따라다니고,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어를 익혔다. 2011년 아버지 친구인 조선족의 양녀로 입적된 그는 일반 귀화 시험을 통과해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탁구 선수로서도 전지희는 꾸준하게 성장했다. 자신의 강점인 백핸드 공격에다 전진 속공이라는 한국형 탁구가 가미돼 실력이 부쩍 늘었다. 2011, 2013년 전국체육대회 단식 금메달, 2012년 종별선수권 단식 정상에 올랐다. 2011년 모로코오픈 여자단식 정상에 이어 지난달 16일 열린 쿠웨이트오픈에서 석하정(29·대한항공)과 짝을 이뤄 여자 복식 2위를 차지했다. 어느새 세계 랭킹 18위까지 올라 서효원(27·한국마사회·세계 9위)에 이어 국내 2위다. 전지희는 “중국과 달리 한국에선 코치와 동료들이 ‘넌 잘할 수 있어’ ‘파이팅’ 등의 말을 자꾸 해줘 힘이 난다. ‘내 곁에 누군가가 늘 함께한다’는 생각이 들어 든든하다”고 말했다.

 전지희는 국제탁구연맹(ITTF)의 귀화 규정에 따라 7년 동안 나서지 못하는 세계선수권에는 불참하지만 인천 아시안게임에는 출전할 수 있다. 전지희는 “태극마크를 볼 때마다 가슴 설렌다”며 “세계 랭킹 4, 5위인 천멍·주율링이 나와 함께 중국 청소년 대표를 했던 친구들이다. 나는 한국 대표고, 한국인이다. 꼭 그 선수들을 넘겠다”고 당차게 말했다.

김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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