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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 누가 간첩을 풀어주는가

김진국
대기자
아직도 문서 위조를 인정 못한다고? 11일 민주당 의원들의 방문을 받은 자리에서다. 국정원 간부들은 자살을 기도한 김모씨 외에 다른 협조자의 말을 믿는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니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정원이 내놓은 유감 보도자료도 문서 조작을 인정한 게 아니라 물의를 빚은 부분을 죄송하게 생각한다는 말이라고 한다.

 어이없는 말장난에 조고(趙高)를 생각했다. 진(秦)의 환관 말이다. 그는 제위를 빼앗으려고 황제에게 터무니없는 장난을 쳤다. 사슴을 바치고 ‘말’이라고 주장했다[지록위마(指鹿爲馬)]. 황제는 “농담을 한다”고 웃었지만 신하들은 모두 조고의 눈치를 봤다. ‘말’이라고 했다. ‘사슴’이라고 말한 신하는 죽였다. 황제 눈에는 헛것이 보이는 것으로 몰아세웠다.

 조고의 비극은 문서 조작에서 시작했다. 진시황의 유조(遺詔)를 고친 것이다. 문고리를 잡은 그는 그렇게 해서 후계자를 바꿨다. 재상 이사(李斯)도 꼬드겼다. 이사는 대를 이은 권력에 눈이 멀어 이름에 먹칠을 했다. 결국 초나라 항우와 내통했다는 죄를 뒤집어쓰고 죽었다. 조고도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사마천은 이사를 “마지막만 잘 판단하고 마무리했더라면 주공이나 태공에 비견될 수 있었을 인물”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조고의 꾐에 빠져 유조를 조작한 걸 말한다.

 박근혜 정부의 1년은 국정원만 보였다. 이명박 정부는 쇠고기로 타격을 입었지만 이전 정부가 시작한 일이다. 국정원 댓글사건도 지난 정부가 한 일로 끝낼 수 있었다. 그런데 사슴을 말이라고 우기는 통에 1년이 넘도록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채동욱 검찰총장 불법사찰 의혹,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 등은 모두 이 정부 들어 벌어진 일들이다. 정보기관은 보이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1년이 넘도록 톱뉴스를 장식하며 정권의 안위까지 흔들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더욱 답답한 건 대응방식이다. 몇 번이나 사고를 쳤는데 학습효과도 없다. 항상 버티기다. 곪아터질 때까지 버틴다. 외교 경로로 받은 공식 문서라고 했다가 들통나자 내용은 맞는다고 했다. 중국대사관이 진위를 확인하자 ‘친북 대사관 직원과 내통한다’고 몰아갔다. 도장이 다르다고 하자 ‘고무도장은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달라 보인다’고 우겼다. 눈감고 아웅 하는 유치한 억지에 신뢰는 바닥이 났다.

 나라의 안전과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최고의 정보기관이 이런 수준이었나. 애처롭고, 부끄럽고…. 인식 수준도 유치하거니와 그것을 자체 검열할 능력과 감찰 기능조차 없다는 말인가. 사전예방이나 일처리가 수준미달이면 사후수습이라도 잘해야 할 것 아닌가.

 아직도 버틴다. 출입경기록이 조작이라도 간첩 혐의가 벗겨진 건 아니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면 다른 증거는 챙겨놓았나. 겨우 증언이란 것도 법정에서 모두 뒤집어졌다. 유씨는 그제 검찰 진상조사에 협조를 거부했다. 오히려 기자들을 만나 왜 문서 조작과 관련없는 일을 묻느냐며 검찰을 비난했다. 이제 어쩔 건가. 그를 풀어줘야 한다. 아무 증거도 없다. 질질 끌어봐야 욕먹고, 보상해줄 일밖에 없다. 국정원 주장대로 그가 정말 간첩이라면 누가 풀어준 것인가. 바로 엉터리 같은 수사기관 아닌가. 간첩 수사야말로 인내와 끈기로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

 국정원 개혁이 1년을 끌고 있다. 여야가 합의한 것조차 흐지부지다. ‘셀프 개혁’을 기대하기엔 바닥을 보였는데도 말이다. 문제는 국내 파트였다. 정치 개입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해외 파트, 대공수사 파트마저 무너졌다. 사명감도, 도덕성도 의심받게 됐다. 대공수사의 수준이 이 정도라면 정말 큰일이다. 문제는 정치다. 정치권이 관심을 갖고, 이용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없애든지, 최소한 따로 떼어내야 한다. 그래야 정보기관이 바로 선다.

 국정원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소용돌이를 겪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대규모 물갈이가 벌어졌다. 이명박 정부에서 또 크게 뒤집혔다. 이 와중에 정보 능력이 파괴되고, 전문가가 쫓겨난다는 불만들이 터져 나왔다. 너도나도 정치권에 줄을 댔다. 그런 조직이 제대로 굴러가겠나. 잘못된 인사는 바로잡아야 한다. 하지만 그걸 핑계로 자기 사람을 심었다는 소리가 더 많이 들린다.

 이제 사람만 바꿔서 해결될 수준이 아니다. 백지 위에 다시 그려야 한다. 나라를 위해, 국정원을 위해 바꿔야 한다. 최소한 대북 정보, 해외 정보 파트만이라도 정치 바람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우리는 분단국가다. 그만큼 정권교체를 해봤으면 이제 정신을 차릴 때가 되지 않았나.

김진국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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