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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의 외출 … "삐까번쩍해 보여도 의원은 3D업종"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12일 새누리당 소속 국회 안전행정위·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 소속 초선 의원 9명과 점심을 했다. 김 실장은 전날도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환경노동위 소속 초선 의원 10여 명과 오찬을 했다. 지난 7일엔 안종범·류성걸 의원 등 초선 의원 11명과 만났다.

 김 실장은 취임 이후 좀처럼 대외활동을 하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비서실장 공관에서 새누리당 최고위원단과 비공개 만찬을 한 이후 여당 의원들과 공식 접촉이 없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새누리당 의원들과 스킨십을 부쩍 늘리고 있는 양상이다.

 최근 사퇴설이 불거지기도 했던 김 실장이지만 여당 의원과의 만남을 통해 건재함을 밖으로 보여 주고 있다. 김 실장은 전날 오찬 자리에선 사퇴설에 관한 얘기를 먼저 꺼냈다. “요즘 나에 대한 소문들이 나도는데, 출처가 어디냐”고 물었다고 한다. 참석 의원들이 “청와대발(發) 아니냐”고 하자 그는 “여의도발로 들었다”며 농담을 섞어 응수했다.

 김 실장의 사퇴설은 최근까지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하지만 근거 없는 소문이었다는 게 청와대 참모들의 공통적인 설명이다.

 한 참모는 “도대체 어디서 누가 그런 말을 퍼뜨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김 실장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며 “취임 1주년 때 대통령께 전하기 위한 참모들의 ‘롤링 페이퍼’에도 김 실장이 멸사봉공(滅私奉公·사를 버리고 공을 위해 힘써 일함)이라고 쓰지 않았느냐”고 했다.

 청와대 내에서의 업무 장악력도 여전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일치된 말이다. 다른 참모는 “김 실장이 경험과 경륜을 바탕으로 중심을 잡아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짧은 보고’를 강조하는 김 실장 덕에 청와대 보고서의 양이 많이 줄어 방대한 보고서를 읽는 박근혜 대통령의 부담도 줄었다고 한다.

 김 실장은 연이은 의원들과의 식사에 대해 “실장이 의원들과 밥도 못 먹나요.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할 수 있다”며 “소통하고 친교하고 건의사항을 들으려는 것이지 다른 것은 없다”고 말했다고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2년차 핵심 과제인 규제 완화에 드라이브를 걸고 기초연금법안 등 민생법안을 처리하는 데 의원들이 적극 나서 달라고 독려하려는 것이 속뜻이라고 한다.

 김 실장은 이날 오찬에서 막걸리로 “위하여”란 건배사를 했다. 그러면서 “민생 법안 통과를 위해 많이 협조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행보와 보조를 맞추려는 것”이라며 “박 대통령과의 교감 속에서 김 실장이 행보를 넓힌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김 실장은 의원들의 건의사항을 주로 듣고 간간이 경험담을 얘기했다고 한다. 김 실장은 의원들을 격려하며 “정치하는 게 남들이 보면 ‘삐까번쩍’해 보여도 국회의원은 3D 업종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산림녹화사업을 언급하며 “얼마나 열심히 나무를 관리하고 심었는지 그 덕에 우리가 좋아졌다”고 회상했다.

 자신이 비서실장이 된 이유에 대해선 “자리가 욕심이 나서가 아니라 국가의 부름을 받았으니 안 할 수도 없고 해서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의 간첩 증거조작 의혹 사건과 관련한 얘기가 나올 땐 “이미 대통령께서 말씀을 했기 때문에 수사 결과를 지켜보자”고 다독였다. 이날 오찬에는 박성효·박덕흠·경대수·하태경 의원 등이 참석했고 청와대에선 박준우 정무수석과 주광덕 정무비서관이 배석했다.

김 실장은 나머지 상임위원회의 초선 의원들도 계속 만날 예정이다. 14일에는 외교통일위·보건복지위 초선 의원들과, 17일엔 국토교통위·국방위 소속 초선 의원들과 오찬을 한다.

신용호·김경희 기자

◆김기춘 실장은=검사로 시작해 승승장구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 가문과 두터운 인연을 맺었다. 공안검사 시절이던 1974년 8월 문세광의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을 수사한 이가 김 실장이다. 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직전에는 청와대 법률비서관으로 근무하면서 유신헌법을 완화하는 작업을 했다. 88년 12월 검찰총장이 된 뒤에는 5공 비리수사를 지휘하면서 장세동 전 안기부장 등 49명을 구속했다. 91년 법무부 장관에 올랐다. 당시 ‘미스터 법질서’란 별명을 얻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인 96년 국회의원이 돼 3선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과는 ‘정치적 멘토’로 인연을 맺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때부터 박 대통령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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