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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구나 왔어∼" 배뱅잇굿 이은관 명창 떠나다

서도소리 배뱅잇굿으로 한국전쟁 직후 한국인들을 웃기고 울렸던 이은관 선생. 그는 최근까지 자신이 설립한 민요교실에서 후진을 양성했다. [중앙포토]
‘배뱅잇굿’으로 유명한 판소리 서도(西道)소리 보유자(무형문화재 제29호) 이은관 선생이 12일 오전 9시 별세했다. 97세.

 고인은 1950, 60년대 크게 인기를 누린 당대의 가객이자 예능인이었다. 끊어질 듯 가는 목소리로 “왔구나 왔어∼”라고 불러 젖히는 그의 배뱅잇굿은 특유의 해학과 슬픔으로 한국전쟁 직후 절망에 빠져 있던 한국인의 심성을 어루만졌다.

 그는 신불출·장소팔·고춘자 등 전설적인 만담가들이 진행하는 전국 유랑 극장 쇼로 대중에 이름을 알렸다. 소리는 물론 능청스러운 연기와 유머로 인기를 얻자 57년 영화 ‘배뱅잇굿’이 만들어졌고, 영화의 성공에 힘입어 음반을 제작하고 방송에도 출연했다.

 음반 ‘배뱅잇굿’은 킹스타·신세계·오아시스·유니버설 등 당시 4대 메이저 음반사에서 모두 출시해 6만 장이 팔렸다. 50년대 서울중앙방송(KBS의 전신), 60년대 TBC 등에 출연하며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고인은 1917년 휴전선 이북지역인 강원도 이천에서 태어났다. 유성기 레코드판을 들으며 홀로 소리를 익혔다. 열여덟 살 때 당시 경성방송국의 ‘전국신인남녀콩쿨’에서 경기민요 ‘양산도’로 1등을 한 뒤 소리꾼이 되기로 결심한다. 황해도 황주 권번에서 소리 선생으로 있던 이인수를 찾아가 ‘배뱅잇굿’ ‘공명가’ ‘배따라기’ 등 서도소리를 익혔다.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지만 정작 판소리계에서는 뒤늦게 인정을 받았다. 요즘으로 치면 ‘개그 콘서트’라고 할 수 있는 장소팔·고춘자 등의 만담 쇼에 나가 재능을 팔아 먹는 속칭 ‘딴따라’로 비판받았던 탓이다. 82년 국악대상을 받은 데 이어 84년에야 서도소리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 90년 보관문화훈장을 받았고, 2002년 방일영국악상을 수상했다. 특히 ‘배뱅잇굿 보존회’를 설립해 소리 비결을 전수하려 했다. 최근까지 서울 신당동 자택에서 서대문구 영천시장에 있는 ‘이은관 민요교실’로 출퇴근하며 후진 양성에 힘썼다.

 국악평론가 김문성씨는 “고인은 소리에만 능한 게 아니라 색소폰 등 악기 연주와 작곡·무대구성 등에서도 타고난 끼와 재능을 발휘한 만능 엔터테이너였다”고 평했다. 제자 전옥희씨는 “새 음반 취입을 위해 2주 전에 음반회사를 방문하셨는데 갑자기 돌아가셨다”며 울먹였다.

 유족은 장남 승주씨 등 1남 3녀, 빈소는 서울 한양대병원 장례식장 2층 10호실. 발인은 14일 오전 9시, 장지는 경기도 파주 용미리 시립공원묘지다. 02-2290-9442~3.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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