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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부실 공기업, 씨가 마를 때까지

이정재
논설위원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내 이름은 철밥통, 공공기관 노조다. 전편에 등장한 낙하산 사장(이하 낙사장)과는 아주 돈독한 관계다. 노조와 경영진, 서로 대척점 아니냐고? 무슨 그런 험한 소리를 하시나. 지난해 공공기관 부채가 493조원이다. 나랏빚(443조원)보다 많다. 이게 그냥 생겼겠나. 이른바 노사 합작의 결과물이다. 어떻게 가능했느냐고? 익히 알려진 바 그대로다.

 우선 초장에 낙사장을 잘 길들여야 한다. 내부 개혁 운운하고 등장하는 낙사장은 출근 저지 맛부터 보게 한다. 며칠 못 가 요구 사항이 뭐냐고 물어온다. 사실 특별히 요구할 것도 없다. 웬만한 복리후생은 이미 과거 낙사장들 때 다 챙긴 바다. 인력 구조조정 금지나 임금 삭감 금지를 얻어낸 곳도 있으니 말해 뭣 하랴. ‘인사나 경영상의 중대한 결정은 노조와 합의한다’ 정도면 충분하다. 버티는 낙사장, 요즘엔 거의 없다. 알아서 긴다. 가끔 옛날처럼 힘겨루기도 해보고 싶은데 통 기회를 안 준다.

 낙사장들 입장도 충분히 이해한다. 낙사장의 임기는 정권보다 길 수 없다. 3년이 고작인데 그 안에 성과를 내려면 나 철밥통이 반발하는 내부 개혁은 금물이다. 정권이 시키는 대로 ‘정책 사업’에 올인하는 게 백배 낫다. 수자원공사·LH의 빚이 몇 년 새 수십조원씩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도 그래서다. 그러니 요즘 박근혜 정부가 공공기관 개혁한다며 나 철밥통을 방만 경영의 주범으로 모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올해 38개 중점 관리 공공기관의 복리후생비 다 줄여봐야 4970억원에서 3397억원으로 약 1600억원 삭감이 고작이다. 큰 도둑은 놔두고 작은 도둑만 잡는 격이다.

 혹자는 금(金)밥통 아니냐고 비꼬는데 속사정 모르는 소리다. 철밥통의 실체가 뭔가. 첫째, 안정된 신분이다. 한번 신분을 획득하면 쉽게 잃지 않는다. 사실상 영원히 밥을 먹을 수 있게 된다. 요즘 같은 고령화 사회에선 철밥통에 합류하는 순간 한 방에 인생 역전, 로또 당첨이다. 괜히 철밥통 합격 소식에 플래카드 붙이는 시대라고 하겠나. 오죽하면 지방공기업 M사는 “직원이 되는 순간 지역 유지로 불린다”고 하겠나.

 둘째, 자동 승진이다. 괜찮다는 공공기관엔 이른바 이면 합의란 게 있다. 낙사장과 철밥통 간 ‘은밀한’ 약속 말이다. 왜 지난해 22일간 사상 최장 파업을 벌인 철도노조 사태 때 보지 않았나. 자동승진과 강제전보 제한 조항. 이걸 두고 치명적 경영권 침해 조항이다 뭐다 말 많았지만 인사권은 나 철밥통이 쥐락펴락하는 게 맞다. 30년 한 직장 지키는 내가 고작 3년 왔다 가는 낙사장에게 인사권을 내주는 게 옳단 말인가.

 셋째, 월급 못지않은 복지 혜택이다. 압권은 역시 ‘은밀한’ 복지다. 역대 낙사장들과 함께 이뤄낸 성과다. 강원랜드는 철밥통을 대물림할 수 있다. 마사회는 자녀 1인당 스키캠프에 30만원, 영어캠프에 63만원을 준다. 그랜드코리아레저는 생일·명절 때 상품권 105만원을 준다. 그러니 연봉이 100이면 복지는 150이란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이런 게 거저 되는 게 아니다. 대가가 있다. 노조 가입이다. 철밥통은 한솥밥에서만 나온다. 노조는 한솥밥 조직원을 쇠처럼 단단히 엮어 해고·파면 따위 각종 불이익을 막아준다. 불법 파업 같은 작은 범법은 수시로 저질러도 평생 밥을 먹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 노조를 통한 만사형통, 이것이 이른바 철밥통의 완성이다.

 그러므로 나 철밥통은 단언한다. 비정상의 정상화? 공공기관 개혁? 내가 있는 한 어림없다. 철밥통은 이 나라 노조운동의 희망이다. 노조조직률 10.3%인 이 나라 노조의 전투력이 세계 최강인 이유가 뭔가. 다 조직률 64%를 자랑하는 공공 노조, 나 철밥통 덕이다. 정치권도 내 눈치를 본 지 오래다. 선거 때면 여야가 나를 영입하려고 경쟁을 벌인다. 그러니 나 없는 공기업이 가능하겠나. 박근혜 정부는 알아야 한다. ‘철밥통 없이는 공공기관도 없다’는 진실을.

이정재 논설위원·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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