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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올해 중국 외교는 항일이다

[일러스트=강일구]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서울에 있는 대만대표부는 부지런하다. 수시로 홍보 메일을 보낸다. 딱히 전할 게 없다 싶으면 중화요리를 소개한다. 그 가짓수가 무궁무진하니 알릴 내용이 떨어질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반면 주한 중국대사관의 전하는 말씀은 뜸하다. 그러나 일단 왔다 하면 의미가 크다. 얼마 전의 경우가 그렇다. 메일 하나가 도착했다.



 내용은 우리 국회에 해당하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 상무위원회가 매년 9월 3일을 ‘중국인민 항일전쟁 승리 기념일’로, 또 12월 13일을 ‘난징(南京)대학살 사망자 국가 추도일’로 정하는 초안을 심의했다는 것이었다. 중국어 자료 외에 한글 설명문까지 친절하게 덧붙였다. 이는 올해 중국 외교의 방점이 어디에 찍힐까를 시사한다. ‘항일(抗日)’이다. 사실 새해 벽두부터 본지는 중국대사관으로부터 기고 요청을 받았다. 제목부터 눈길을 끌었다. ‘불의를 일삼는 자는 반드시 역사 속 치욕의 기둥에 못 박힌다’. ‘불의를 일삼는 자(多行不義者)’는 일본을 가리킨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가을 ‘주변국 외교공작 좌담회’를 열었다. 회의 결과는 ‘친(親), 성(誠), 혜(惠), 용(容)’의 네 글자로 요약된다. 이웃 나라와 더 친하게 지내고 성의를 다해 대하며 중국 발전의 혜택을 나누는 한편 더 포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중국 외교를 보면 이 이웃 나라 중에 일본은 포함되지 않는 모양새다. 과거사를 부정하며 극우로 치닫고 있는 아베 신조 정권의 우경화 행보가 그 원인을 제공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중국의 일본 때리기는 연초 세계 32개국에 주재하는 중국 대사들이 일제히 일본을 비난하는 것을 시작으로 포문을 열었다. 현재는 사회 각 방면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중국 윈난(雲南)성 쑹산(松山)에선 위안부를 다룬 영화 제작이 한창이고, 지린(吉林)성 기록보관소는 일본군 731부대의 생체실험 만행을 입증하는 문서를 공개했다. 중국 외교부는 외신기자들을 초청해 난징대학살 현장을 둘러보게 하는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지난달 말엔 강제징용 중국인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손해배상과 사죄를 요구하는 집단소송을 냈다. 현재 열리고 있는 전인대에선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일본 지도자가 중·일 관계의 기초를 파괴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과거 중국 정부는 일본 비난에 신중했다. 그러나 시진핑 시대를 맞은 현재 ‘항일’은 ‘입법’의 수준으로까지 올라서고 있다. 일본의 우경화 행태를 철저하게 응징하겠다는 중국의 단호한 의지가 읽힌다. 우선 12월 13일을 ‘난징대학살 사망자 국가 추도일’로 정하는 점이다. 이는 지금까지 난징 시정부 수준에서 하던 걸 국가적 차원의 행사로 격상시킨다는 의미다. 여기엔 또 ‘추도일(Memorial Day)’이라는 서방에 익숙한 말로 일본의 만행을 세계에 고발하겠다는 의도가 내포돼 있다. 국제 사회는 매년 1월 27일을 ‘국제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추모의 날’로 부르며 600만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 독일의 만행을 상기한다. 마찬가지로 30만 중국인을 살육한 난징대학살 추모 행사를 해마다 개최해 천인공노할 일본의 죄상을 세계에 각인시키겠다는 것이다.



 더 주목해야 할 건 중국이 9월 3일을 ‘항일전쟁 승리 기념일’로 입법화하는 점이다. 전인대는 입법 취지 설명에서 이날을 기념일로 지정하는 이유가 중국 인민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꿈(中國夢)을 실현하기 위해 분투하는 걸 격려하기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중국꿈이 뭔가. 이는 시진핑 시대를 규정하는 키워드다. 시진핑이 중국의 1인자가 된 후 줄곧 외치는 구호다. 세계 최강이던 중국의 옛 영광을 되찾자는 것이다.



 한데 이번에 ‘항일’이 이 중국꿈 실현의 하나로 천명됐다. 중국꿈을 이루기 위해선 반드시 일본을 넘어서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중국이 새해 들어 왜 그렇게 일본 공격에 열심인가를 알 수 있다. 중국은 세계의 추세가 덩샤오핑(鄧小平)이 말했던 것과 같이 여전히 ‘평화’와 ‘발전’에 놓여 있다고 본다. 따라서 일본과의 물리적 충돌은 상정하지 않는다. 대신 선택한 것이 일본과의 ‘여론 전쟁’이다. 특히 국제 여론에 신경을 쓴다. 일본이 미국이나 유럽 등 서방 여론의 눈치를 보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시진핑 주석이 올해 처음 방문한 국가는 러시아였다. 소치 겨울올림픽에 아베가 참석하는 데 대해 맞불을 놓기 위해서였다. 이달 말 독일을 찾을 땐 베를린 홀로코스트 추모관 방문을 희망하고 있다. 독일은 중·일 싸움에 끼고 싶지 않다는 뜻에서 다른 시설 방문을 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결과가 어찌 되든 시진핑의 외교 행보 초점이 항일에 맞춰져 있음은 분명하다.



 시진핑은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에 대한 답방으로 올해 한국을 찾는다. 6~7월 이야기가 나온다. 그 발걸음 역시 항일에 무게를 둘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박 대통령 요청에 부응해 연초 하얼빈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세웠다. 또 충칭(重慶)엔 광복군 총사령부를 복원하고 있다. 한국은 일본의 우경화를 비난하면서도 중국과의 항일 공조엔 조심스럽다. 시진핑 방한을 어떻게 맞을지 신중한 고민이 필요하다. 시진핑의 중국이 현재 항일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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