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권석천의 시시각각] 봉숙이는 집에 가야 한다

권석천
논설위원
“못 드간다. 못 간단 말이다/이 술 우짜고 집에 간단 말이고….”



 밴드 ‘장미여관’은 봉숙이를 향해 한사코 집에 들어가선 안 된다고 노래한다. 이유는 “아까는 집에 안 간다고/데낄라 시키돌라 케서 시키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뒤에 나온다. “저기서 술만 깨고 가자/딱 30분만 셔따 가자”는 것이다.



 웬 봉숙이냐고? 국가정보원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증거조작 얘기를 하기 위해서다. 이 사건의 당사자인 유우성(34)씨는 지난해 8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는다. 5차례 밀입북해 북한 보위부로부터 간첩교육을 받고 공작원으로 활동하면서 탈북자들의 신원정보를 북한에 보고한 혐의였다.



 당시 재판부가 지난달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다. 판결문은 핵심 증거였던 수사과정에서의 유씨 여동생 진술에 대해 이렇게 판단한다. 유씨 여동생은 재판에 들어가자 진술을 번복한 상태였다.



 “그 진술이 사실이고 따라서 피고인이 공소사실과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기는 한다. 그러나 진술 내용이 매우 구체적임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인 증거에 명백히 모순되는 부분이 존재하고….”



 한마디로 ‘의심은 가지만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무죄 판결 후 항소심 재판에 들어간 국정원과 검찰로선 ‘추가 증거’ 확보의 필요성이 얼마나 절실했을지 눈앞에 선하게 그려진다. 그 추가 증거가 유씨의 중국·북한 출입경(출입국)과 관련된 중국 공문서 세 건이었다. 이 중 한 건(싼허 세관 명의 답변서)은 지난 5일 자살을 기도한 국정원 협조자 김모(61)씨가 위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나머지 두 건도 위조 가능성을 의심받고 있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온 원인은 무엇일까. 국정원은 왜 문서 위조를 지시 혹은 묵인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검찰은 국정원이 보낸 문서들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채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한 것일까. 한 검사 출신 변호사의 말이다.



 “강골 군인 출신인 남재준 원장 취임 후 국정원 내부 분위기가 경직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유씨 사건에 대해서도 어떻게든 유죄를 받아내야 한다는 절박성이 커졌고…검사들이야 대공 사건에 관한 한 국정원에 기댈 수밖에 없는 구조 아닙니까.”



 문서 확보 지시→문서 위조→재판부 제출. 어느 단계에서도 브레이크는 걸리지 않았다. ‘장미여관’의 노래처럼 ‘데낄라까지 시켜놓았는데’ ‘30분만 쉬었다 가고 싶은데’ 봉숙이를 그냥 집에 보낼 수 없었던 것이다. 국정원이 “우리도 속았다”고 하지만 협조자 김씨에게 속았는지, 스스로에게 속았는지, 아니면 속였는지는 검찰 수사에서 확인돼야 할 문제다.



 검찰 책임도 작지 않다.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검찰청법 4조)’로서 피고인 인권을 보호하고 실체적 진실을 밝힐 의무가 있다.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도미니크 스트로스칸에 대한 미국 검찰의 수사를 보자. 뉴욕 검찰은 2011년 5월 호텔 종업원을 성폭행하려 한 혐의로 스트로스칸을 구속했으나 두 달 후 무혐의 취지로 석방했다. 수사 과정에서 종업원 거짓말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당시 비판 여론이 일자 뉴욕타임스(7월 4일자)에 ‘검찰은 제대로 했다(The D.A. did the right thing)’라는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 “성폭행 신고를 받고 법 절차에 따라 구속하고 기소했다. 검사들은 자신들이 밝혀낸 것들을 있는 그대로 판사에게 알렸다. 검찰은 사실을 속이거나 숨긴 적이 없다.”(칼럼니스트 조 노세라·Joe Nocera)



 우리 검찰은 왜 그럴 수 없는 것일까. 아무리 의심이 가도 증거가 부족하다면,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가 나온다면 멈춰야 한다. 더 이상 잡아둘 방법이 없다면 봉숙이는 집으로 보내야 한다. 그것이 이번 사태에서 검찰과 국정원이 뼛속 깊이 새겨야 할 교훈이다.



권석천 논설위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