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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손민호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미안하지만 이제 나는 인연을 말하련다. 인연이라고 적었지만, 우연이 더 가깝겠다. 그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한 공간에서 섞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우연이라 우길 수 있는 건, 시간은 비껴갔어도 그가 한동안 몸담았던 공간과 내가 여태 머무르는 공간이 겹쳐 있어서다.



 나는 지금 한 신문기자를 말한다. 세상은 그를 시인으로 기억하지만, 나는 그를 기자로 이해한다. 중앙일보 기자 기형도. 25년 전 어느 날, 일생 몫의 경험을 다 했다며 불현듯 떠난 선배기자의 이름이다.



 나에게도 기형도가 시인이었던 시절이 있다. 절망이 내 삶의 전부였던 적이다. 지금은 그 절망의 내용조차 잊어버렸지만, 기형도로 도피를 감행했던 파리한 청춘의 문장 몇 줄은 지금도 내 몸에 흐른다. 이를테면 ‘내 얼굴이 한 폭 낯선 풍경화로 보이기/시작한 이후, 나는 주어(主語)를 잃고 헤매이는/가지 잘린 늙은 나무가 되었다(‘병’ 부분)’ 같은 그의 문장을 지금의 나는 종종 내 문장과 혼동한다.



 내가 중앙일보에 들어오고서 시인 기형도는 기자 기형도가 됐다. 문학기자였던 9년 전 어느 밤, 나는 벼르고 별렀던 의례를 치렀다. 내부 기사DB 검색어에 ‘기형도’를 입력하고, 그가 입사한 1984년 10월과 그가 숨진 89년 3월 7일로 검색기간을 조정했다. 그 4년6개월 동안 ‘기형도’로 검색된 기사는 283건이었다. 280건이 기형도 기자가 쓴 기사였고, 3건이 기형도 시인을 소개한 기사였다.



 그 밤 나는 기형도 기자의 기사를 다 출력해 책을 만들었다. 표지는 물론 검은색이었다. 그리고 그의 버릇대로 파란색 볼펜으로 밑줄을 쳤다. 그는 2년 남짓 문화부에 있었는데, 의외로 문학기사보다 방송기사가 더 많았다. 개중에서 드라마 비평기사가 가장 많았고, 드라마 중에서 ‘전원일기’를 5번이나 다뤘다.



 ‘대취한 일용은… 울면서 춤을 춘다. 다음날 아침 술이 깬 일용의 뺨에 누군가 뽀뽀를 한다. 아빠를 찾으러온 딸 복길이다. 일용은 복길을 안고 집으로 향한다. 그래도 여기는 우리의 땅이다. 자식들은 흙의 희망이다. 우리는 고향을 떠날 수 없다.’-1986년 11월 19일자 12면



 기자가 되고서 그가 쓴 기사를 그가 쓴 시보다 더 많이 읽었다. 그가 기자였던 시간보다 내가 기자로 산 시간이 10년이 더 길고, 그가 살았던 시간보다 14년을 더 살았다. 그러나 아직도 나는 ‘자식들은 흙의 희망’이라고 쓰지 못한다. 아니, 쓸 줄을 모른다. 미안하지만, 이미 나는 늙은 것이다.



 이제 기형도를 시인의 자리로 돌려놔야겠다. 열망만으로는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아 버렸다. 치기 어린 열망에 작별을 고한다.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손민호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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