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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칼럼] 박근혜 통일준비, '1노 3김'에 답이 있다

이하경
논설주간
대한민국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다. 강제된 분단체제의 폭력성은 눈부신 경제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의식의 깊은 곳에 체념과 냉소, 자학을 새겨놓았다. 창조와 상상의 욕망이 거세된 지점에는 분단과 냉전의 일란성 쌍생아인 적대적 이데올로기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다원적 가치를 출산(出産)하려는 사소한 일탈도 불온과 금기의 이름으로 포박된다. 끝도 없는 진영논리, 극단주의가 이성과 합리를 압도한다. 정치·군사적 차원을 넘어선 문화·심리적 분단의 일상화·내면화가 남긴 상흔(傷痕)이다. 비정상이 내년이면 벌써 70년째다. 이런 터질 듯한 긴장을 감당하고도 진정한 성년(成年)의 문턱을 넘을 수 있는 공동체는 세상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 직속의 통일준비위원회를 만들겠다고 했다. 이제 통일은 경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가적 어젠다로 격상됐다. 선택과 집중의 방향을 힘있게 보여주는 거시적 포석이다. 이 기구는 새로운 시대와 국제관계의 흐름에 맞는 통일방안을 마련하게 된다. 과연 가혹한 역사와 운명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려 ‘통일 대박’의 초석을 놓을 수 있을까. 박 대통령은 25년 전 1노3김의 모델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89년 9월 11일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발표했다. 한반도에 두 국가체제가 공존한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하나의 민족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해 남북이 평화적으로 노력하자고 했다. 통일의 원칙으로 자주·평화·민주를 제시하고 통일국가의 미래상으로는 자유·인권·행복이 보장되는 민주국가를 제시했다. 3년 전 국시(國是) 발언 파동을 떠올리면 꿈같은 일이다.



 신민당 유성환 의원은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6년 10월 14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우리나라 국시는 반공이 아닌 통일이 돼야 한다”고 했다. 이틀 뒤 체포동의안이 통과됐고, 유 의원은 구속됐다. 현역의원이 회기 중 원내 발언으로 구속된 최초의 사건을 취재하면서 느꼈던 야만의 광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이렇게 대결만이 선(善)이었던 세상에서 남북공존을 정부의 입장으로 정리했다면 천지개벽 수준의 대반전이 아닌가.



 13대 국회는 1988년 야당인 민주당의 박관용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통일정책특위를 설치해 진보와 보수를 망라한 범국민적 의견수렴 과정을 거쳤다. 결과는 노태우 정부에 전달됐다. 정부는 집권당인 민정당 윤길중 대표는 물론 평민당 김대중, 민주당 김영삼, 공화당 김종필 총재 등 세 야당 총재의 의견을 충실하게 반영했다. 이홍구 국토통일원 장관이 탈냉전의 흐름을 담은 통일방안의 산파였다. 훗날 김영삼 정부에서 총리를 지냈던 그는 전화 한 통화면 즉시 만날 정도로 세 총재들로부터 신뢰 받았다. 특히 김대중 총재는 매번 꼼꼼하게 메모한 내용을 이 장관에게 설명했고, 이는 충실하게 반영됐다. 대통령이 “세 총재의 얘기를 듣고 만들어 달라”고 이 장관에게 전권을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리더십을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그는 여소야대의 불리한 상황을 역으로 활용해 야당의 의견을 수용하는 적극적 합의 방식으로 극복했다. 결과물인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토대로 남북관계를 개선했고, 북방정책을 통해 소련·중국과 수교하면서 한국 외교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 방안은 25년간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대한민국 통일방안의 기둥으로 유지됐다. 이후 남북한 사이에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성명, 6·15 공동성명, 10·4 공동선언 등 네 개의 공식 합의서가 나왔고,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이 이뤄진 것도 1노3김의 합의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보적인 사민당 빌리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을 보수적 기민당 헬무트 콜 총리가 이어받아 독일 통일을 이룬 역사적 타협의 장면이 떠오른다. 독일에 브란트-콜 모델이 있다면 한국엔 1노3김의 모델이 있다.



 군 출신과는 달리 정통성 시비에서 자유로웠던 역대 문민 정부는 오히려 자기 세력을 중심으로 한 배제의 정치로 후퇴했다. 민주화의 역설인데, 박근혜 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25년 전의 초당적 합의 정신은 부활할 것인가.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정권이 교체돼도 바뀌지 않을 한반도 평화통일 정책의 마련이 필요하다”며 여·야·정 및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범국가적 ‘통일시대준비위’ 구성을 제안했다. 대통령은 화답하지 않고 있다. 야당이 배제된 통일방안은 국민적 합의에 이를 수 없다.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북한과의 민족적 합의, 국제적 협력까지를 끌어내는 통일의 3차방정식이 풀린다. 불통(不通)의 준비는 통일을 잉태할 수 없는 불임의 신부이며, 유한한 정권의 임기와 함께 순장(殉葬)될 것임을 1노3김 모델은 웅변하고 있다.



이하경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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