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권력에 취한 자들의 굿판

과거에도 그랬지만 요즘 들어 부쩍 절실하게 느끼는 것이 있다. 우리 사회가 고도의 스트레스 사회라는 사실이다. 주변에서 정상적인 생각을 가지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수도 없이 벌어진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속이 부글부글 끓고, 스트레스가 쌓인다. 물론 스트레스를 피하는 간단한 방법이 있기는 하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눈 감고 귀 막고 살면 된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정치 얘기는 될 수 있으면 안 하려고 했다. 나 말고도 할 사람이 많은데 평범한 시민인 나까지 나서서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돌아가는 상황은 나같은 평범한 시민마저 화나게 만든다. 물론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해 정치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지지하는 정당에 당원으로 가입했고, 당비가 매달 통장에서 정기적으로 빠져나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의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하는 유일한 정치 참여는 정기적으로 당비를 내는 것과, 몇 년에 한 번씩 치르는 선거에서 지지하는 정당의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치가 우리의 삶을 바꾼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래서 평소에 정치와 관련된 뉴스를 관심 있게 보는 편이다. 그런데 요즘 정치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고 있으면, 이건 도저히 정상적인 나라라고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시간이 20, 30년 전으로 돌아간 것일까. 진보니 보수니를 떠나 보통사람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민주주의와 법질서의 근간을 흔드는 국기문란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주요 언론은 침묵하거나 아주 작은 소리만 내고 있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치는 윗분도 이에 대해서는 별 말씀이 없으시다. 아마 이런 상황을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참을 수 없는 것은 권력에 도취해, 해야 할 말과 하지 않아야 할 말을 구분하지 못하고 마구잡이로 막말을 쏟아내는 일부 정치인의 행태다. 이들이 종횡무진으로 구사하는 막말 퍼레이드를 듣고 있으면 정치에 대한 혐오가 밀려온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저런 함량미달의 막말을 듣고 있어야 하다니. 정말이지 국민 노릇 못 해먹겠다.

얼마 전, 한 여당 의원이 이런 화려한 막말 퍼레이드의 정점을 찍었다. 지난해 내내 실종되었다고 호들갑을 떨었던 바로 그 ‘사초’를 어디선가 구해 와 선거 유세에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읽었던 바로 그분이다.

평소에 독재, 쿠데타, 친일 행위를 미화하는 데에 앞장서 온 그분이 이번에 화끈하게 양심선언을 했다. 선거에서 대통령 후보는 참모들이 써준 것을 그대로 읽었을 뿐인데, 그것을 믿고 노인들 표가 많이 나와 당선되었으나 사실은 공약을 지킬 돈이 없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말의 요지는 국민들이 속았다는 것인데, 아무리 권력에 도취했기로서니 어떻게 이렇게 발가벗고 춤을 출 수 있단 말인가.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설사 그것이 사실이라도 이런 말을 대놓고 하지는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국민을 우습게 보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이런 일쯤이야 죄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진 확신범 둘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민주, 정의, 진실을 지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이 시대는 자괴감과 절망을 안겨 준다. 정의를 위해 흘렸던 수많은 사람의 피와 땀은 무위로 돌아가고, 권력에 취한 거짓과 굴종의 무리들이 신나는 굿판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역사는 진보한다고. 지금은 얼핏 후퇴하는 듯 보이지만 긴 안목으로 보면 역사는 반드시 진보한다고. 그때가 되면 불의와 거짓을 추종하던 세력들은 설 땅을 잃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찬란한 봄을 맞기 위해서는 길고 추운 겨울을 견뎌야 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소망한다. 부디 내가 살아있는 동안 그 봄이 오기를. 그리하여 혹독한 겨울을 보낸 사람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기를.



진회숙 서울시향 월간지 SPO의 편집장을 지냈다.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공부하기 등에서 클래식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클래식 오딧세이』 등이 있다.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