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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통일 대박은 이익인 동시에 숭고한 의무다

장달중
서울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
10여 년 전의 일이다. ‘그래도 통일열차는 달려야 한다’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6·15 공동선언 이후 벌어진 심각한 남남갈등의 와중이었다. 우리도 통일 장정을 향한 열차를 독일처럼 달리게 할 수 없을까 하는 바람에서였다.



 당시 정치학 교과서의 한 문장이 눈길을 끌었다. ‘독일에서 기차를 타면 기관사와 승무원뿐만 아니라 승객도 같이 근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정말 교과서의 기술대로 독일에서는 정부와 국민이 함께 힘을 합쳐 종착역인 통일에 열차를 무사히 도착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의 통일열차는 출발하자마자 탈선한 상태다. 열차내부의 혼란 때문이었다. 6·15 공동선언 이후에도 적화통일의 망령이 국민들 머리 위를 배회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북한의 우라늄 농축 의혹이 불거졌다. 위기관리의 문제가 국가적 과제로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 통일 논의는 시들해지고 젊은 세대의 통일관에는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1972년 7·4 남북공동 성명을 접한 장준하 선생이 말했다. ‘통일 이상의 지상 명령은 없다’고. ‘갈라진 민족, 둘로 나누어진 자기를 하나로 통일하는 이상의 명제는 없다’고 설파했던 것이다. 통일을 위한 희생은 숭고한 도덕적 의무요 명예였다. 하지만 지금 이런 명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의 조사에 의하면 민족 동질성 회복의 관점에서 통일을 지상명령으로 보는 견해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대신 경제 선진화나 전쟁 방지와 같은 수단적 관점에서 통일을 바라보는 여론이 대세다. 이익이 되지 않는 한 통일은 더 이상 희생을 요구할 수 있는 지상명령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은 이런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경제적 이익을 강하게 자극하고 있다. 잭팟이란 초기의 영어 번역의 영향 때문인지도 모른다. 잭팟이란 도박장에서 급작스럽게 발생하는 행운이다. 이 때문에 ‘북한 붕괴 임박’을 예상한 통일 판타지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 통일 대박론은 그동안 시들해졌던 통일담론에 재생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이익 차원의 통일담론을 도덕적 사명의 차원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전기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사회철학자 마이켈 이그나체프가 말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자기 자신을 제일 먼저 인간으로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고.’ 자식으로서, 부족의 일원으로,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한다는 것이다. 그의 지적대로 우리는 민족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인생에 부여된 의미를 느끼며 살아 온 민족이다. 하지만 지금 이런 의식은 약화되고 있다. 목전의 이익에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5년간 우리는 국민적 동의(consent) 없이는 평화도 통일도 어렵다는 값진 교훈을 얻었다. 지금 박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에 대해서는 국민적 합의(consensus)가 있는 듯하다. 하지만 합의가 있다 해서 구체적인 정책 추진을 위한 국민적 동의의 과정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지난 정권들은 한결같이 이 양자를 혼동해 동의의 과정을 무시했다. 결과는 남남 갈등의 심화요 통일논의의 퇴색이었다.



 지금 북한을 보는 여론이 매우 복잡하다. 악마에게 동정을 보내자는 여론도 무시할 수 없지만 북한을 ‘악의 국가’로 보는 여론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 유엔 인권보고서의 지적처럼 북한을 선과 악의 잣대에서 ‘악’으로 보는 국내외적 여론은 지속될 전망이다.



 문제는 어떻게 이런 여론 속에 합리적인 통일 대박 정책을 펼쳐나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통일 대박론의 근간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남북이 서로의 정통성에 시비를 걸지 않는 ‘게임의 룰’을 전제로 하고 있다. 지금 북한이 가장 신경 쓰고 있는 것도 바로 자기들 ‘최고 존엄’에 대한 비방·중상이다.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몰아붙이면서도 실용적 접근으로 탈냉전의 창을 연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지혜를 빌려와야 할지도 모른다.



 분단은 우리 사회의 모든 갈등과 분열의 근원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통일 대박론은 국토 통일이 가져다 줄 이익적 관점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갈라진 민족의 통합을 위한 심리적 프로젝트가 돼야 한다. 자연 국민의 희생이 요구된다. 경제적 희생뿐만 아니다. 이데올로기적 고정관념의 희생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희생은 종국적으로 우리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장달중 서울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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