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경제 view &] 실용 연구보다 논문, 앞뒤 바뀐 이공계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세계 톱 랭킹의 이공계 대학이 기업가 정신의 요람이 되고 있다. 최고의 기술과 기업들이 모여 있는 미국 실리콘밸리 신화는 스탠퍼드대 공과대학에서 출발했다. 스탠퍼드대 출신이 세운 기업들의 총매출 규모는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2배가 넘고, 1930년대 이후 창출한 일자리만 540만 개에 이른다고 한다. 창조경제의 모델로 언급되는 이스라엘도 이공계가 창업의 중심이 되고 있다. 이스라엘 테크니온대학은 한 해 로열티만 1조원 이상 벌어들인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 같은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국내 이공계 대학은 우리 삶과 동떨어진 ‘연구를 위한 연구’를 많이 하고 있으며, 이공계 위기론마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이공계 대학의 연구가 현실과 괴리된 주된 이유는 임용·승진·연구비 등 교수 평가가 인용지수(Impact Factor) 중심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인용지수는 논문의 평균 인용 빈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대학 도서관에서 우선적으로 구독할 학술지를 선별하기 위해 개발된 지표다. 문제는 우리에게 필요한 실용공학은 다른 기초과학에 비해 인용지수가 낮다는 것이다. 산업 현장에 쓰이는 실용공학은 기술 변화가 워낙 빠르다 보니 다른 논문에서 인용될 기회가 적기 때문이다. 2012년 최대 인용지수는 세포생물학 37, 신경학 31, 천문학 23인 데 반해 실용공학 분야는 소프트웨어 3.4, 통신 4.1, 건설 4.5에 불과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이공계 대학들은 경제적 가치가 있는 실용 연구보다는 논문을 위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이처럼 현실과 괴리된 이공계 대학의 연구가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교육 커리큘럼이 논문용 연구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수업 내용이 어렵다.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도 떨어진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공계열 전공자 중 현재 전공에 만족하는 학생은 5명 중 1명도 안 됐다고 한다. 인문·사회계열 만족도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흥미가 떨어지니 자신의 전공을 살리기도 어렵다. 이공계 졸업생 중 본인의 전공을 살리는 사람은 30%에 불과하고, 상당수는 자신의 전공과 상관없는 영업·금융 등으로 전향한다고 한다. 이공계 학생들이 사회에서 써먹지도 못하는 지식을 돈과 시간을 들여 배우는 안타까운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현실성 없는 교육 커리큘럼은 산업계의 인력난도 초래하고 있다. 몇 년 전 기업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반도체·휴대전화 학과 홈페이지에는 설립 취지가 업계의 극심한 인력난 때문이었다고 나와 있을 정도다. 인력난은 국내 투자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된다. 2년 전 국내 반도체 회사가 중국에 대규모 공장을 설립하기로 했다. 원가 절감, 내수 공략 등의 이유도 있지만 공장에 필요한 수많은 반도체 전문인력을 국내에서 구하기 어렵다는 것도 주된 이유였다고 한다. 연구와 교육이 현장과 괴리돼 있다 보니 한쪽에서는 청년 실업이 문제인데, 산업계에서는 인력난을 하소연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이공계 대학의 평가체계를 개선해야 한다. 이를 위해 논문 인용지수 중심의 평가 체계에서 벗어나 기업과 사회의 니즈가 반영된 평가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이공계 수업이 재미있어지고,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와 창의성도 높아진다. 우리가 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자동차·휴대전화·기계·의류 등을 대상으로 공부한다면 이해도 쏙쏙 되고 나중에 사회에서 활용할 수 있으니 학생들이 얼마나 열심히 하겠는가. 학생들이 필요한 기술을 제대로 익혔으니 산업계도 인재를 충분히 영입할 수 있고, 사회적으로 기술창업도 활발해질 수 있다.



 다행히 최근 이공계가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강성모 KAIST 총장은 최근 “공학자는 논문뿐 아니라 기술 사업화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실사구시형 공학 교육 혁신안’ 마련에 나섰다. 정부도 올 1월 공과대학혁신위원회를 출범시키면서 이론교육 중심의 공과대학을 기업·현장 중심으로 바꾸기 위한 ‘공과대학 혁신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이런 변화가 이공계 위기를 극복하고 기회의 이공계로 거듭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