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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연의 시시각각] '손가락 법' 15년, '세 모녀 법' 나올까

이규연
논설위원
“피고인은 변태적인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성도착증과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보인 점을 고려할 때 치료명령은 정당하다.”



 며칠 전, 대법원이 나주 성폭행범 고○○(25)에게 무기징역과 함께 화학적 거세 5년의 형을 확정하면서 내린 판결 내용이다. 잠자던 초등학생을 이불에 싼 채 납치해 성폭행한 고는 ‘화학적 거세(성충동 약물치료) 1호’가 됐다.



 때로는 참혹한 들판에서 꽃이 피어난다. 3년 전, 아동 성범죄자에 대한 형량과 공소시효가 크게 엄격해졌다. 2009년 발생한 ‘조두순 사건’이 그 계기가 됐다. 조는 글로 표현하기 힘든 끔찍한 방식으로 만취한 상태에서 어린 나영이(가명)를 유린했다. 짐승만도 못한 그에게 가해진 형벌은 너무나 가벼웠다. 국민들은 격분했다. 검경·법원을 공격했다. 분노의 쓰나미는 화학적 거세라는 새로운 형벌제도를 만들어냈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탄생사(史)에도 잔혹한 동화(童話)가 나온다. 사건은 1998년 가을 마산에서 일어난다.



 “3인조 복면강도가 가정집에 침입해 10살 난 어린이의 손가락을 자르고 20만원을 훔쳐 달아났다.”



 이런 신고가 접수되자 경찰은 수사에 착수한다. 끔찍하고 황당한 사건에 여론은 들끓는다. 수사 끝에 뜻밖의 사실이 드러난다. 범인이 아버지였다. 직장을 잃고 끼니 걱정을 해오던 아버지가 보험금 1000만원을 노리고 아들의 손가락을 잘랐다. 당연히 아버지의 무모함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에게 최소한의 생계는 국가가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여론이 그보다 더 강했다. 김대중 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손가락 법’을 만든다. 이것이 지금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다.



 그전에는 생활보호법이 있었다. 1961년 박정희 정부가 만든 제도다. 38년간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데 나름대로 역할을 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의 구조가 요동쳤고 생활보호법은 한계를 드러냈다. 미성년자·노인만 보호대상이었다. 청장년이 거리로 내몰리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



 ‘정책의 창’ 이론이 있다. 사회문제 흐름과 정치 흐름이 결정적 이벤트의 출현으로 합쳐질 때 정책의 창이 열린다는 모형이다. 이에 따르면 빈부격차 심화라는 사회문제 흐름과 김대중 정부의 출현이라는 정치 흐름이 ‘손가락 자작극’이라는 이벤트를 계기로 결합하면서 기초생활보장제가 탄생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모든 정책에 통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혁신적 제도의 출현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



 최근 기초생활보장제도를 확 바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온다. 15년 전처럼 새로운 사회혁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혜택대상자를 정하는 재산·소득·부양가족 기준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정작 필요할 때 외면하는 느림보 제도라는 문제 제기도 있다. 그러다 보니 사각지대에 놓인 빈곤층이 100만 명이 넘는다. 일부 지방정부는 자체적으로 보완 제도를 마련 중이다. 서울시는 재산기준 500만원을 1000만원으로 높여 사각지대를 줄이려 한다. 충남도·수원시·성남시 등에서도 새로운 맞춤형 서비스를 구상 중이다.



 최근 발생한 ‘송파 세 모녀’ 사건은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뜯어고쳐야 할 이유를 우리에게 던진다. 명명백백, 기초생활 보장이 필요했던 가정이 보이지 않는 지대에 놓여 있었다. 모녀가 사고와 질병으로 생계가 막막해졌는데도 제도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번 비극을 계기로 그동안 쌓였던 문제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다.



 사회문제 흐름은 강하다. 결정적 이벤트도 생겼다. 정치 흐름만 생기면 정책의 창이 열릴 수 있다. 박근혜·안철수·황우여·김한길·박원순·정몽준 등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어떤 선택을 할까. 누가 정책기획가가 될까. 15년 전 ‘손가락 법’같이 ‘송파 세 모녀 법’은 탄생할까. 참혹한 들판에서 꽃은 피어날까.



이규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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