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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칼럼] 우크라이나서 읽는 통일한국의 선택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크림 자치공화국 수도 심페로폴은 모스크바에서 비행기로 서남쪽 방향 2시간20분, 1270㎞ 정도의 거리에 있다. 크림반도의 남단은 흑해로 길게 다리를 뻗은 곶(岬)의 모양을 하고 있는데 심페로폴에서 60㎞의 거리를 두고 동남단에 얄타, 서남단에 세바스토폴이 있다. 얄타는 1945년 2월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영국의 윈스턴 처칠,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이 만나 동서 두 진영으로 분단된 전후 세계질서에 합의한 얄타체제의 고향이다. 천혜의 휴양도시 얄타에 가면 안톤 체호프가 ‘벚꽃 동산’을 쓴 하얀 ‘체호프 하우스’가 외지인들의 발길을 끈다.



 얄타에서 곶을 돌아 서쪽으로 96㎞ 거리에 러시아가 흑해함대기지로 빌려 쓰고 있는 군항 세바스토폴이 있다. 세바스토폴은 영국·프랑스·터키와 러시아 사이에 벌어진 크림전쟁(1853~56)과 2차대전의 격전지였다. 레프 톨스토이는 크림전쟁 참전 체험을 토대로 ‘세바스토폴 이야기’라는 소설을 남겼다. 인구 35만 명에 72%가 러시아인인 세바스토폴은 지금 우크라이나의 운명과 유럽 전체의 세력균형을 걸고 미국·유럽연합(EU)과 러시아가 정면대결을 벌이는 전선 없는 전쟁의 최전선이 되어버렸다.



 우크라이나 위기는 미국·EU와 러시아가 빈손으로는 물러설 수 없는 냉전 종식 후 유럽 최대의 위기로 확대되었다. 대결은 3차원적이다. 첫째가 경제.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EU 경제권 편입을 막아야 한다. 푸틴은 관세동맹이라는 대경제권을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 벨라루스·카자흐스탄이 참가하고 있는데 우크라이나의 참여는 필수적이다. EU에도 인구 4500만 명을 가진 우크라이나의 잠재수요는 오늘의 경제침체를 풀어줄 블루오션이다. 둘째가 안보다. 미국과 서유럽은 폴란드 다음으로 우크라이나를 끌어들여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동방확대를 통한 러시아 견제망을 완성하려고 한다. 러시아 입장에서 보면 나토의 동방확대는 러시아의 앞마당을 차지하겠다는 모욕적인 야망이다.



 셋째는 이데올로기다. 컬럼비아대학 박사과정에 있는 마리야 스네고바야가 3월 2일자 워싱턴포스트에 쓴 글에 따르면 푸틴은 요즘 러시아 제국의 영광을 되찾아 전 세계에 러시아 정교회 사상을 전파하는 메시아 역할을 강조하는 블라디미르 솔로뵤프, 미카엘 유리에프, 니콜라이 베르자예프 같은 민족주의적 정치사상가들의 저서에 탐닉하여 주지사들에게도 올 휴가 때 그들의 책을 읽으라는 숙제를 냈다. 그중에서도 푸틴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한 책은 유리에프의 『제3제국, 러시아의 길』이다. 2006년에 나온 이 책은 2054년의 가상세계를 묘사한다. 친러시아적인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 주민들이 서방국가들의 지원을 받는 오렌지 혁명에 반대하여 반란을 일으키는데 ‘제3제국’의 황제 블라디미르2세가 주민투표를 통해 우크라이나 동부를 러시아에 편입시킨다는 내용이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전략과 너무 흡사하여 러시아 독자들은 흥분하고 비러시아 독자들은 전율한다.



 푸틴이 지난 4일 기자들 앞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행동은 최후수단이다, 지금으로서는 우크라이나의 동서분단은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한발 물러서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나 그는 최소한 힘으로 점령한 크림반도를 ‘인질’로 잡아 우크라이나의 서방 편입 차단, 러시아 세력권 잔류를 최후의 양보선으로 삼을 것이다. 물리적 개입을 꺼리는 미국은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심각하게 고려하지만, 경제적으로 러시아 의존도가 과도한 서유럽은 미국이 바라는 경제제재에 냉담하고, 이번 위기로 새로 만들어진 현상(status quo)를 인정하는 것만이 푸틴의 야망을 현재의 선에서 주저앉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크림반도를 미끼로 던져주고 우크라이나 동부의 러시아 편입에 대한 푸틴의 야망을 누르자는 냉엄한 권력정치의 실상이다.



 우리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한국적 문맥에서 볼 필요가 있다. 첫째,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하면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정책에 구멍이 뚫린다. 미국은 군사·경제적으로 균등한 두 개의 전선을 펼 능력이 없다. 둘째, 우크라이나가 두 세력 사이에서 하게 될 선택은 통일한국의 선택을 예시하는 것이다. 통일한국이 지금의 한·미, 한·중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의 한·미·중 3각관계의 틀 안에서 통일이 가능하기나 한가. 통일 논의에서 깊이 고민할 부분이다. 그래서 우크라이나가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는 무겁다. 강대국들 사이에 위치하여 양쪽에 다 전략적 가치가 높은 한국과 우크라이나의 운명의 공통점 때문에 우크라이나 사태를 지켜보는 우리의 시각은 한국적일 수밖에 없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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