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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14좌 베이스캠프를 가다 <23> 에베레스트·로체(3)

고락셉 로지 위 칼라파타르 언덕에서 본 쿰부 빙하. 가운데 우뚝 솟은 봉우리가 눕체, 그 뒤에 에베레스트가 숨어 있다.


네팔 쿰부 히말라야의 종착지는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 남면이다. 병풍처럼 솟은 설산 너머는 중국 땅이고, 산을 넘기 전 빙하 끝에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5300m·이하 EBC)가 있다. 여기까지 온 사람들은 황량한 빙하보다는 세계 최고봉을 조망할 수 있는 칼라파타르(Kala patthar·5550m) 언덕에 오르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나는 빙하를 택했다. 지난 1월18일 EBC는 영하 20도까지 떨어졌다.


5300m 베이스캠프, 에베레스트 정상 안 보이고 황량한 빙하만 …



죽은 자들을 기리는 돌탑만 덩그러니



페리체(Periche·4200m) 로지(lodge)에서 두글라(Dughla·4620m) 로지로 가는 길은 힘들었다. 거리는 4㎞가 되지 않지만 2시간가량 걸어야 했다. 이전에 비해 속도가 현저히 떨어진 셈이다.



 두글라 로지에서 밀크티 한 잔을 마시고 다시 길을 나섰다. 로지를 나서자마자 두글라 언덕이 나타났다. 힘이 달리는 상황이어서 눈앞에 보이는 언덕은 태산처럼 높았다. EBC로 가는 여정 중 가장 힘든 구간이었다. 해발고도가 4500m에 육박하면 누구나 고소 증세를 겪는다. 그 와중에 오르막을 1시간 가까이 올라야 하기 때문이었다.



 두글라 언덕엔 어림잡아 수십 기의 케른(라마교의 돌탑)이 있었다. 쿰부 히말라야에서 사망한 산악인을 기리기 위한 추모 탑이었다. 케른은 로부체(Lobuche·6145m)· 촐라체(Cholatse·6440m) 봉우리를 배경으로 병정처럼 서 있었다. 케른 행렬은 자연스레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그들은 패기만만하게 산에 올랐지만 지금은 산의 일부가 돼 있다. 죽은 자의 영혼만 남아 있는 길은 스산했다. 때마침 산 안개가 몰려와 사위는 더 음산해졌다. 곧 진눈깨비를 뿌렸다.



 두글라 언덕을 지난 뒤로는 거의 평지였다. 빙하가 흐르면서 돌과 자갈을 잔뜩 쌓아놓은 빙퇴석 지대 모레인(Moraine)이 펼쳐졌다. 길 왼편으로 푸모리(Pumori·7161m)가 솟아 있고, 오른편으로 눕체(Nuptse·7861m)의 칼날 능선이 보였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푸모리와 눕체 사이로 에베레스트가 보이겠지’라는 생각이 든 순간, 왼편으로 로지가 나타났다. 로부체 동벽 아래 자리 잡은 로부체 로지(4940m)다.



 고립무원 빙하에서 만난 로지는 오아시스처럼 반가웠다. 그러나 마을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남쪽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이 마을을 휩쓸고 북으로 올라갔다. 로지의 사우지(남자 주인)는 친절했다. 밀크티 한 잔을 얻어 마시고 다시 길을 나섰다. 정오를 넘어선 시간, 걸음을 재촉해야만 해가 떨어지기 전에 고락셉(Gorak shep·5140m)에 도착할 수 있다. 고락셉은 이 쿰부 히말라야에 있는 마지막 로지다. 사우지 아준 다망은 “3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겨울 쿰부 빙하는 꽁꽁 얼어 있다. 이 모레인 지대를 건너야 EBC에 닿는다.


고소증으로 침상에 그냥 쓰러지다



길은 꽁꽁 얼어붙은 빙하를 따라 이어졌다. 이제는 진눈깨비 대신 눈발이 흩날렸다. 날이 추워지니 뒷목이 뻐근하고, 두통이 엄습했다. 분명한 고소 증세였다. 게다가 내린 눈이 발자국을 덮어 제대로 가고 있는지조차 분간하기 힘들었다. 20분쯤 나아가니 이정표가 하나 보였다. ‘eve-K2’라는 NGO 단체에서 세운 이정표였다. 아준 다망은 이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가라”고 일러 줬었다.



 다시 오르막이 나타나자 움직이는 물체가 보였다. 한 무리의 트레커였는데 한국인도 있었다. 반갑다는 인사보다 더 급한 것이 있었다.



 “혹시 두통약 있습니까?” “아니오. 나도 간밤에 두통으로 고생하다 내려가는 길입니다.”



 그들은 고락셉에서 칼라파타르에 가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지만 날이 좋지 않아 포기하고 철수하는 중이었다. 이들은 도망치듯 황급히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한 달 전쯤, 폭설로 로지가 무너져 현지인 몇 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발걸음을 더 바쁘게 재촉했을 것이다.



EBC에 걸린 수많은 룽다 .
 두통을 참으며 10분쯤 더 갔을까. 콧수염까지 꽁꽁 얼어붙은 서양인 남자 한 명이 내려오고 있었다. 나처럼 혼자 걷는 ‘솔로 트레커’였다. 그는 눈을 맞아가면서도 노래를 부르며 내려갔다. ‘미친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은 먹구름이 가득했다. 지금 산을 오르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하지만 염려할 정도는 아니다. 네팔 고산의 터줏대감, 셰르파(Sherpa)는 손님이 있는 한 로지 문을 닫지 않는다. 오후 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내려오는 사람마다 붙잡고 “얼마나 더 가야 하냐”고 물으니 모두가 “1시간 남았다”고 답했다. 지쳐 쓰러질 때쯤 오른편으로 투명한 청빙(靑氷) 능선이 보였다. 쿰부 계곡의 끝, 고락셉이었다.



 고락셉의 로지 4곳 중 3곳이 문을 열었다. 두통을 동반한 피로가 몰려와 곧바로 나무 침상에 쓰러졌다. 오후 5시쯤 됐을까. 난로에 장작불이 지펴질 때쯤 거실로 나왔다. 트레커가 꽤 모여 있었다. 모두 혼자 또는 커플로 온 FIT(Free Individual Trekker)였다. 키가 190㎝를 넘는 독일 청년 지먼(21)은 “대학을 마치고 혼자서 1년 정도 아시아를 여행하는 중”이라고 소개했다. 네팔을 거쳐 티베트·몽고·시베리아를 차례로 찾을 예정이었다.



 모두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특히 히말라야가 처음인 카자흐스탄 여대생 둘은 난롯가에 병든 닭처럼 앉아 있었다. 그들은 고소로 인해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하루 20㎞씩 꼬박 사흘을 걸어 올라온 나도 마찬가지였다. 입맛이 없어 이날 하루 먹은 음식은 파인애플 캔 하나가 다였다.



2 마른 빙하에서 풀을 찾고 있는 야크. 3 EBC에 당도한 사진작가 이창수씨.


아! 에베레스트 …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난롯가에 비스듬히 앉아 있는데 로지 매니저 쇼쿨라 라이(20)가 “머리 아플 때 먹는 약”이라며 알약을 한 움큼 쥐어줬다. 나중에 알고 보니 두통약이 아니라 이뇨제였다.



 고소 증세가 왔을 때 이뇨제를 먹는 건 몸이 붓는 부종(浮腫)과 관련이 있다. 고소 증세의 원인에 관해서는 아직 연구가 진행 중이지만 산소가 부족해서라기보다는 과다한 호흡 때문이라는 쪽이 정설에 가깝다. 숨을 헉헉거리면 이산화탄소가 발생하는데 이를 제때 배출하지 못해 체내에 쌓이면 장기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얼굴을 비롯해 손발이 붓는데 이뇨제를 먹어 강제로 가스와 불순물을 배출하는 것이다.



 두통약이 아니라 이뇨제라는 것은 밤중에 알게 됐다. 2시간에 한 번 꼴로 오줌을 누러 밖으로 나가야 했다. 이뇨제를 먹고 난 뒤에는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 수분 공급이 부족한 상태에서 약을 복용하면 탈수 증세로 쓰러지게 된다.



 그래도 이뇨제 덕분에 두세 시간은 잘 수 있었다. 하지만 피로는 여전했다. 이제 EBC로 가는 일만 남았다. 전날 고락셉에 도착한 이들 중 EBC로 향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칼라파타르로 가거나 로지에서 쉬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밤새 휘몰아치던 눈보라는 그쳤지만, 몹시 추웠다. 로지 온도계의 수은주는 영하 20도까지 내려가 있었다.



 난관은 또 있었다. 눈 때문에 EBC 가는 길이 하얗게 변해 버렸다. 혼자서는 너무 위험했다. 다행히 쇼쿨라가 그의 사촌 동생 슈쿨라를 가이드로 붙여줬다. 한나절 비용으로 “1500루피(약 1만5000원)를 달라”고 말했다. 그 정도면 착한 가격이었다.



 EBC 가는 길은 전형적인 빙퇴석 지대였다. 거대한 밭두렁처럼 솟은 빙하 둔덕 위로 크고 작은 돌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그 위로 간밤에 내린 눈이 약 10㎝ 쌓여 있었다. 슈쿨라가 내 배낭을 메고 앞장섰다. 그가 아니었으면 지쳐서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푸모리와 눕체 사이로 난 계곡은 오전 9시까지 볕이 들지 않았다. 손가락과 발가락 끝이 찌릿찌릿할 정도로 추웠다. 그런데도 슈쿨라는 장갑도 끼지 않은 채 걸었다. 3시간이면 족하다는 길은 꼬박 4시간을 걸어야 했다.



 빙하 끝 지점에서 슈쿨라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 일대가 모두 베이스캠프”라고 알려줬다. 너무 지쳐 둔덕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빙하를 내려다봤다. 한겨울 쿰부 빙하는 ‘무(無)의 지대’였다. 빙하, 돌무더기, 그리고 검은 벽…. 그뿐이었다. 빙하에서는 에베레스트 정상이 보이지 않았다. 눕체에 가려 해발 7000m 정도까지만 드러난 푸른 빛의 얼음 산만 있었다.



 왜 여기까지 기를 쓰고 오려고 했을까. 아무것도 없는 데 말이다. ‘25㎏ 배낭을 메고 하루 20㎞씩 걷자’는 나름의 목표도 부질없는 짓이었다. 고락셉 로지로 돌아오자마자 곯아 떨어졌다.



쿰부(네팔)=김영주 기자

사진=이창수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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