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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라이브] "원조 불도저 서울시장 김현옥, 보행 지옥 조성"

■방송 : JTBC 정관용 라이브 (11:40-12:55)
■진행 : 정관용 교수
■출연진 : 전우용 교수

◇정관용-6.4지방선거 앞두고 가장 주목받는 곳이 서울이죠. 그래서 지난주 역사 라이브에서도 서울에 대해서 또 서울시장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조선 시대 서울 한성부 그래서 한성부윤, 일제강점기에는 경성부, 경성부윤. 경성부윤은 다 일본 사람들이었고요. 그다음에 서울특별시가 만들어져서 제1대 김형민 서울시장 얘기까지 들어봤죠? 뒤이어 오늘 서울시장 특집 2탄입니다. 전우용 교수 어서 오십시오.


◆전우용-안녕하세요.

◇정관용-1대 시장이 김형민 시장, 2대 시장이 윤보선 전 대통령이네요? 그래요?

◆전우용-정부수립 이후에 이승만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 이승만 대통령 가까운 사람들로 계속 그 이후에 윤보선 씨라든가 이기붕, 고재봉, 이문수 이런 분들이 서울시장을 계속해서 맡았죠.

◇정관용-그러면 그때까지만 해도 윤보선 전 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였나 보죠?

◆전우용-서울 명문가 출신이고 뒤에 다시 말씀드릴 기회가 있겠습니다마는 그런 관계였죠.

◇정관용-알겠습니다. 그리고 시대별로 구분해서 봅시다. 먼저 4.19 있기 이전. 이건 전후복구, 그리고 전쟁을 치르고 전후복구 원조받던 시기 이때 서울시장들은 어땠습니까?

◆전우용-그건 50년부터 53년까지는 정부수립 직후부터 전쟁 중이라 서울을 아예 비워놨던 시점이고요. 또 그전에는 원조물자로 그럭저럭 버텨내는 상황이고 월남민들 들어오고 피난민 관리하고 이런 일들 때문에 사실 정신이 별로 없었어요. 전쟁 끝난 다음에는 전쟁으로 인해서 서울 시내 주택의 3분의 1 정도가 파괴되고 철도, 도로 다 파괴됐으니까 그거 복구하는 데 4, 5년 더 걸렸고요. 정신없던 시절이고 그러니까 무슨 시정을 계획적으로 추진하기보다는 그냥 변화에 뒤치다꺼리하는데....

◇정관용-전후복구.

◆전우용-그냥 정신없었던 시절이니까 시장에서 특별히 두드러지는 건 없었고요. 판자촌 늘어나고 그걸 이제 양성화하고 선거 때마다 양성화하는 일들이 생겼고요. 그래서 일부 도시계획가들은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전쟁으로 서울이 폐허가 됐을 때 정말 도시계획 잘 해서 서울을 제대로 꾸몄더라면 참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 수 있었는데 현실이....

◇정관용-그냥 정신없이 그냥 급급하게? 그때 제대로 계획을 세웠더라면.

◆전우용-그랬더라면 좋았을 텐데 어느 나라 도시나 그래요.

◇정관용-뭐가 있어야 계획을 세우죠. 아무것도 없는 폐허에서 안 그렇습니까?

◆전우용-계획이라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는데 그것조차 할 만한 여건도 없었고 그럴 만한 정신도 안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정관용-4.19, 5.16 이후의 시장들 가운데 주목할 만한 시장들은 누가 있습니까?

◆전우용-일단 4.19가 나면서 서울시가 민선으로 바뀌죠. 최초의 민선 시장이 탄생을 했던 겁니다. 지방자치제가 시행되고. 1회로 끝났지만, 그때는. 그렇게 당선된 분이 김상돈이라는 분인데 이분은 반민 투기위원이었고 정의감에 불탔던 데다 민선 시장이라고 하는 것 때문에 민심을 반영하겠다. 이런 의지를 갖고 의욕적으로 시장에 취임하셨는데 그러다 보니까 조금 오버를 하셨던 것 같아요.

◇정관용-뭘요?

◆전우용-취임식장에서 서울시는 복마전이다. 서울시 공무원들은 전부 도둑놈들이다,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사실 민심을 정확히 전달하는 거긴 해요. 왜냐하면, 이승만 때 대법 감사원장이었던 정윤복 선생이 그런 얘기를 했어요. 오죽 공무원들의 비리가 만연했으면 탐관오리라고 하는데 이걸 좀 나누자. 축제하기 위해서 부정하는 자는 탐관이라고 해서 처벌을 해야 되지만 먹고 살려고 부정하는 자는 좀 봐주자 이런 정도의 얘기가 나오던 때니까.

◇정관용-저도 이게 기억하는데 몽땅 도둑놈이다, 이걸 일본말로 했잖아요.

◆전우용-민나 도로보데스. 이렇게 이야기를 했죠.

◇정관용-그랬었죠. 그때는 사실 일본말을 썼죠?

◆전우용-많이 쓰던 때니까요. 해방되고 나서 15년 이러니까. 그러니까 서울시 공무원들이 우리가 도둑놈이라면 너는 뭐냐, 도둑놈의 두목 아니냐, 이런 일이 있었고요.

◇정관용-5.16 이후에 서울시장들은 어땠습니까?

◆전우용-5.16 나자마자는 일단 군인이, 현역 계급장 달고 시장이 됐죠. 5.16 직후에 서울시장에 임명받은 분이 윤태일 장군이었는데 이분은 자기 군대 기수는 후배인데 진급이 빨랐던 한신장군이란 분이 있어요. 한신장군에 대해서 굉장히 심한 라이벌의식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시장이 되자마자 첫 번째 한 말이 부관에게 물었답니다. 자기 차 번호가 26번. 그때는 군사혁명 직후라서, 쿠데타 직후라서 자동차 번호가 계급별로 나왔어요, 직급별로. 자기 차번호가 26번인 걸 보고 한신 차는 몇 번이냐 이렇게 물었답니다. 12번입니다. 그러더래요, 자존심이 굉장히 상했던 거죠. 그래서 그때 그분의 노력으로 자동차 번호판 앞에 지역명을 쓰는 걸로 바꿨답니다, 제도가.

◇정관용-그전에는 지역명이 없었는데?

◆전우용-그렇죠. 차가 많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자기 차를 서울 1000 번호로 정했다고 하고요. 또 하나는 얼마 후에 한신 장군이 교통사고로 입원을 했어요. 내무부 장관이었는데 내무부 장관 지휘를 받을 수 없다, 나는 한신 지휘를 받을 수 없다고 당시 박정희 최고 의장을 찾아가서 서울시를 내무부관에서 떼어달라, 그 요구가 들려서 서울시가 그야말로 명실상부하게 내무부관 안에서 벗어나서 지역자치권을 갖는 그런 행정개혁이 이루어졌죠.

◇정관용-두 사람의 라이벌 관계가 큰 것들을 만들어냈네요.

◆전우용-그렇죠. 그것이 행정의 틀을 바꿔버린 거죠.

◇정관용-그다음에 군사정권이 민간정부로, 박정희 정부로 선거를 통해서 넘어간 후에 그다음부터는 고속성장, 개발시대, 이런 시대였지 않습니까?

◆전우용-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윤태일 장군 뒤에 시장이 된 분이 윤치영 씨였는데요. 좀 독특해요. 이분은 윤보선 전 대통령의 친삼촌이에요. 나이가 어린 친삼촌이고요. 윤치호 유명한 개화 운동가이자 나중에 친일 경력이 있었던 윤치호에게는 사촌 동생이 되고요. 초대 내무부장관이었어요. 이승만 대통령의 비서였고요. 이기붕과 이승만 후계자 역할을 할 만큼 거물이었죠. 4.19가 났을 때는 이승만 대통령을 쫓아냈다고 해서 자기도 조카인 윤보선에게 굉장히 실망을 하고 미워했어요. 그런데 그래서 5.16이 나자 박정희를 반군 이래 최고의 지도자라고 칭찬을 했다가 단군 이래 최고의 정권이라고 하는 별명까지 얻었던 분인데 경력으로 보나 자기가 한 공적으로 보나 서울시장보다는 더 높은 자리를 기대를 했어요. 국회의장을 기대를 했었어요.

◇정관용-국회의장?

◆전우용-그런데 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을 지킨 거죠. 초대 내무부 장관을 얼마 전까지 내무부 관할에 있던 서울시장 시켰으니까 직책이 마음에 들 리가 없죠.

◇정관용-조금 내려간 셈이라고 보면 되죠?

◆전우용-많이 내려갔다고 생각을 한 거죠. 게다가 이 가문 자체가 해방 이후부터 한 60년대까지 대한민국 최고의 가문이에요. 보시다시피 윤보선 대통령, 윤일선 서울대 총장, 윤치완 육군 군위가 다 사촌 이내 친척들이거든요. 그런 가문 출신이다 보니까 서울시장직에도 별 흥미가 없고 자기가 귀족이다 보니까 서울시장직을 굉장히 한직으로 생각하고 생색내는 일 정도만 했지 적극적으로 일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심지어는 도시계획을 왜 안 하냐. 사람들이 몰려오는데.

◇정관용-왜 일도 안 하느냐 이거죠.

◆전우용-일도 안 하느냐이랬더니 국회에 나가서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해요. 자기들이 그랬다고 해요. 도시계획 내가 못 해서 안 하는 것 아니다. 서울을 살기 좋은 것들로 만들면 촌것들이 자꾸 밀려오게 된다. 나는 서울에 촌것들 밀려오는 것 싫다. 이게 그분의 지론이었다고 해요. 그래서 그야말로 뭐랄까요? 서울시 역사로 보자면 잘 안 한 그런 시장이었다고 봐야 되겠죠.

◇정관용-말도 안 되네요. 박정희 대통령 눈 밖에 났겠는데요. 이러다가.

◆전우용-눈 밖에 난 것도 눈 밖에 난 거지만 그다음에 67년도 선거를 앞두고는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는 판단이 섰던 것 같아요. 시민들에게 뭔가 보여줘야 되겠다. 그래서 66년 4월에 공병장교 출신이고 육군 수성학교 교장 지냈고 부산에서 굉장히 일 열심히 하기로 소문났던 김현옥 씨를 전격 서울시장으로.

◇정관용-김현옥 시장?

◆전우용-발탁을 하죠.

◇정관용-별명이 불도저 시장 아닙니까?

◆전우용-최초의 불도저 시장이었죠. 이분 시정은 그야말로 정신없이 서울이 바뀌어나가는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시장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그런 분인데요. 그런데 몇 가지 경력과 관련한 특성이 있었어요. 일단 이분이 공병장교 출신이다 보니까 도시를 보는 눈이 완전히 자동차 중심이었어요. 그러니까 서울시장이 되자마자 서둘러서 했던 일이 세종로 지하차도 건설을 비롯한 지하도 파기, 육교 건설, 보행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도시.

◇정관용-지금 다 허물고 있는 육교들. 그런 게 시작이로군요?

◆전우용-그런 게 시작이었죠. 보행자에게는 최악의 도시를 만드는 그런 문제가 생겼던 것이고요. 두 번째는 도시건설을 군사작전 치르듯이 했어요. 그러니까 그 시질 시정 모토는 돌격건설이었어요. 아예 공문에 돌격건설이 쓰여 있었고요.

◇정관용-무조건 빨리빨리?

◆전우용-그러다 보니까 건설이 많이 이루어지기는 했는데 이게 수많은 건설 과정의 희생자, 피해자, 이런 일들을 내는 문제가 있었고요. 세 번째로는 이게 민선 시장이 아니고 임명제 시장이다 보니까 최고 권력자 한 사람의 눈에 잘 보이기 위한 그런 전시행정에 능했다는 평가를 나중에 받죠. 대표적인 사례가 이분이 시장으로 있으면서 역점을 얻었던 사업 중의 하나가 서민 아파트 건립이에요. 산비탈에 아파트 철거하고 산기슭에 아파트들을 짓는 일들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우리가 아파트 지을 줄 아는 건설회사가 거의 없었어요. 그러니까 고위공무원이 시장에게 독립문 아파트 지을 때의 일이었다고 해요. 그분 때 지은 게 지금 대부분 헐고 있는 낙산, 회현, 오긴, 독립문, 와우 이런 것들이에요.

◇정관용-와우아파트는 붕괴됐잖아요.

◆전우용-그렇죠. 그때 이렇게 충고를 했다고 해요. 시장님, 여기 우리가 아파트 지을 기술도 부족한데 이렇게 높은 산지대에 아파트를 지었다가 무너지면 어떻게 합니까?

◇정관용-평지도 아니고 일부러 산비탈로 갔다. 이거죠?

◆전우용-그때 시장 말씀이 서울시 공무원들에게 전설적인 얘기예요. 이때 지어야 각하께서 보실 것 아니냐.

◇정관용-산비탈에 지어야 청와대에서?

◆전우용-청와대에서 보이게 해야 내 업적, 내가 일하는 게 보인다. 이런 생각을 했다는 거죠. 그런 특징을 가지고 있었는데.

◇정관용-알겠습니다.

◆전우용-한 가지만 더 굉장히 중요한 건 이분의 이런 급격한 토건 중심의 도심행정이 그 이후 서울시장의 모델이 되어 버렸습니다. 시민들이 그걸 일하는 시장이라고 생각하게 됐던 거죠.

◇정관용-맞아요, 맞아요. 70년대, 80년대 계속 그런 방식으로 뭐라고 그럴까요. 보행자, 시민의 편의, 자연과의 어우러짐. 이런 거 생각 없는 그런 개발만 되지 않았나요?

◆전우용-지금 사실은 아직도 많은 시민이 그 시대를 추억하는 거잖아요. 그런 식의 시장이라야 발전을 한다고 생각을 하는데.

◇정관용-이제는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전우용-사실을 놓고 보면 요즘 한강에 가서 보면 그런 게 보여요. 서울이 아름답다고 하면 산수가 아름답다고 보통 얘기를 하잖아요. 가장 아름다운 게 산수거든요. 그런데 한강에서 그림 그리는 사람 볼 수 없어요. 이제는 그 시절에 김현옥 시장이 강변도로 건설하고 강변 아파트 건설하고 한 게 김현옥 시장 때 시작된 건데 그 바람에 오늘날 한강 경관이 그렇게 돼버렸거든요. 그런 문제들에 대해서 당대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더라도 좀 지나고 나면 이게 우리가 잘못했구나 싶은 것이 있는데....

◇정관용-그 좋은 강을 남북으로 도로가 다 가로막고 도로 옆에는 아파트가 가득히 서 있고 전혀 시민들이 접근할 수 없게 만들어버린 것 아닙니까?

◆전우용-그렇죠. 그게 오늘날 그 시대 불가피했던 상황이 오늘날의 문제로 나온 거고요. 우리가 미래세대를 생각하는 행정이라면 사실은 미래세대가 아쉬워하지 않게 좀 유보하는 그런 게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관용-이제부터라도 바꿔야 할 텐데 워낙 많이 지어놔서 바꾸기가 너무 어려워요. 전우용 교수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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