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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예 기자의 '위기의 가족'] 두 번 이혼하는 여자

[일러스트=김회룡]
<제26화 두 번 이혼하는 여자>



‘상황이 좋지 않을 때는 절대 부정적인 결정을 내리지 말라. 기분이 너무 안 좋을 때는 절대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말라. 잠시만 기다려라. 그리고 조금만 참아라. 폭풍은 지나가고 봄이 찾아올 것이다.’ -슐러.



내 나이 오십줄이다. 이 나이에 그 남자와 5년 안에 소송을 두 번 하게 된 것은 순전히 돈 때문이다. 처음 남자와 소송을 하게 된 건 다들 그렇듯이 남자의 외도 때문이었다. 유산으로 물려받은 땅이 소위 ‘대박’이 나면서 그 사람은 돈을 물 쓰듯이 했다. 한번은 태국으로 출장을 간다고 떠났는데, 일주일 만에 돌아와 병원을 들락거렸다. 하도 모양새가 이상해 캐 보니 치료받는 곳이 비뇨기과란다. 남자는 내 추궁에도 당당했다. “남자가 사업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는 말에 말문이 막혔다. 부부싸움이 격해지면서 나는 짐을 쌌다.



지난 30년간 한 번도 편안한 적이 없었다. 그 남자와 결혼을 하면서 전처와 낳은 딸 둘을 고스란히 내가 맡았다. 당시 너무 어린 막내딸은 남편이 동생네에 맡겼지만 큰 딸은 순전히 내가 키워야 했다. 낳은 정은 없었지만 기른 정은 있어, 큰 딸을 애지중지 돌봤다. 학교 운동회도 꼬박꼬박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며 따라다녔다. 계모가 키워 그런단 소리가 듣기 싫어 옷가지라도 늘 깨끗하게 빨아 입히려고 애를 썼다. 큰 애가 학교에 들어갈 때쯤엔 작은 미용실을 하나 인수해 돈벌이도 했다. 하루 종일 서서 손님을 받다가 집에 돌아가도 집안 일은 고스란히 내 차지였다. 무려 30년을 이렇게 살았는데, 외도라니. 드잡이 끝에 결국 소송을 냈다. 남편의 병원진단서는 결정적인 사유가 됐다. 비뇨기과에서 “열흘 전에 술집 여자와 잠자리를 했고, 가끔 술집 여자들과 잠을 잔다”는 남편의 말을 바탕으로 한 기록 덕이었다. 1심 소송에선 위자료 2000만원에 재산분할 9억8000만원을 선고했다. 내가 소송에서 이기자 남편은 항소를 했다. 고등법원에서도 지리한 다툼이 이어지자, 판사가 조정안을 내놨다.



이혼을 보류하는 대신 조건을 단 셈이었다. 조정 내용은 이랬다.



1.두 사람은 별거를 한다.

2.남편의 부동산 중 3분의 1을 재산분할 명목으로 아내 이름으로 등기해준다.

3.조정 전에 벌어진 일들을 이유로 이혼 소송을 하지 않는다.



지긋지긋한 결혼생활을 마무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 이름으로 된 재산을 갖고 나면, 남편의 바람기도 사그러들 것만 같았다. 당분간 별거를 할 수도 있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조정안에 합의를 하고 남편이 부동산을 내 이름으로 돌리기로 하면서 한시름을 놓게 됐다.



돈 앞에는 장사 없다



문제는 역시 돈이었다. 돈 앞에선 장사가 없다더니, 이번엔 아주버님이 들고 나섰다. 내 이름으로 돌려주기로 했던 땅의 3분의 2는 아주버님 이름으로 돼 있었다. 아주버님이 반대하고 나서면서 3년만의 이혼 조정이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조정안에 도장을 찍고 처음으로 그를 법원이 아닌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했다.



“당신, 결혼 전에 애를 낳았다면서?”



하마터면 커피 잔을 떨어뜨릴 뻔 했다. 소송을 마무리하나 싶었더니 이제 와서 무슨 소린가. 남편은 “소문 들었다”면서 밑도 끝도 없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내 아이로 지목한 건 여동생네의 아이였다. 결혼 전에 내가 아이가 있었고, 자신과 결혼하기 위해 그 아이를 속였다는 거였다. 남자는 너무나 당당한 표정으로 “이혼하자”고 했다.



재산분할이니, 별거니, 조정이니 하면서 일말의 희망을 가졌던게 잘못이었다. 남편은 “내가 비뇨기과에서 치료를 받게 된 것도 다 네탓”이라고 했다. 평소 내가 ‘품행’이 좋지 않아 여러 남자를 몰래 만나왔고, 그 남자들에게서 얻어온 병을 자신에게 옮겨 비뇨기과를 가게 된 것이란 소리였다. 정작 재산을 떼주려니 배가 아팠다고 하지, 평생 한 남자의 부인으로 살아온 여자의 인생을 이렇게 매도해도 되는 건가. 남편이 이혼 소송을 걸어오자, 나는 첫 소송을 담당했던 변호사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두 번째 진흙탕 싸움



진흙탕으로 기어들어가겠다는데, 말릴 이유는 없었다. 남편이 내가 낳은 딸이라고 주장하는 여동생네 아이의 유전자 검사를 했다. 여동생네에는 백번 미안한 일이었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검사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조카는 여동생네 부부와 유전자가 99.99% 일치했다. 유전자 검사결과가 나왔지만 남편은 굽히지 않았다. “유전자 검사 결과만으론 미혼모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없다”는 해괴망칙한 소리를 했다. 첫 이혼 소송에서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던 병원 서류에 대해선 “아내를 보호하기 위해 술집 여자 운운했을 뿐 사실과 다르다”며 말을 뒤집었다.



재판에선 내가 낱낱이 까발려졌지만 부끄럽지 않았다. 남편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했지만, 사실은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않았다”며 나를 비난했다. 요즘은 고등학교 졸업이 아니라 대학교를 나온 사람들이 수두룩하지만, 예전엔 달랐다. 가난한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 시골서 자란 나는 고등학교를 다녀보는 게 소원이었다. 서울에서 미용실을 차리고 미용실이 잘돼 청담동까지 지점을 내게 되면서 초등학교만 나왔다고 밝히기엔 내 어린 시절이 너무 부끄러웠다. 거짓말한 것은 잘못이었지만 그것 때문에 내 인생이 송두리째 부인되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내 손으로 세운 미용실이 입소문을 타게 된 것은 내 학력이 아니라 솜씨 때문이었다. 미용실은 한동안 강남 일대에서 돈을 쓸어담는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장사가 잘 됐다. 하지만 지점을 여러 개 내면서 경영이 여의치 않았고, 20억원대의 손해를 입으면서 남편은 내 탓을 했다. “경영은 남자나 하는 거지 여자는 못한다”는 거였다. 미용실 사업이 망하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소송이나 미혼모 소리를 들어가며 지내는 모욕은 당하지 않았을 터였다.



김현예 기자
법원 “아내에게 재산 35% 나눠줘야”



기막힌 이 부부의 두 번째 이혼 소송에 대해 법원은 아내의 손을 들어줬다. 아내가 학력을 속였지만 이것이 부부의 주된 파탄의 원인이 아니라고 봤다. 부부가 갈라서게 된 원인은 남편의 억지 주장이었다. 법원은 “부동산 소유권 때문에 변심해 근거 없이 남편이 아내를 모함했다”고 봤다. 법원은 “아내에게 결혼 전 아이가 있었고, 아내가 성병을 옮겼다”는 남편의 주장을 “근거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남편의 억지주장에 따른 정신적 피해 보상으로 2000만원의 위자료를 주라고 판결했다.



재산분할에선 아내에게 전 재산의 35%를 나눠주라고 명시했다. 법원은 “아내가 미용인으로 오랫동안 상당한 수입을 벌어들였다”면서 아내의 재산기여도를 35%로 정해야 한다고 봤다. 남편이 보유하고 있는 재산의 대부분이 ‘결혼 전’에 모은 것이거나, 상속받은 재산이기 때문에 비중은 남편에게 크게 돌아갔다. 아내는 당초 남편의 골프회원권과 주식도 재산분할 대상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주식은 상속 받은 재산에 해당하고, 골프회원권은 이혼 소송 전에 이미 팔아버린 것이어서 제외된다”고 봤다.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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