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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천송이'에게 배우는 창조경제

이정재
논설위원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드라마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몇 년에 한 번씩 푹 빠질 때가 있다. 이번엔 『별에서 온 그대』다. 드라마가 방영되는 수·목요일 저녁이면 약속이 길어질 때마다 시계를 들여다보곤 했다. 그러니 요즘 떠들썩한 ‘천송이(전지현 분) 신드롬’이 너무 잘 와닿을밖에. “눈 오는 날엔 치맥인데…” 대사 한마디로 중국에 ‘치맥’을 유행시키고, 남산 N타워를 연인들의 명소로 만들었으며 걸치고 입고 타고 쓰고 먹고 마시는 것 모두 유행으로 만들어낸 힘. 신드롬의 실체다. 흔히 스타마케팅이라 불리는 힘이다. 전지현은 브랜드 가치만 3000억원이요, 경제 효과로는 몇 조원이라더니 급기야 ‘천송이노믹스’란 용어까지 등장시켰다.



 천송이노믹스는 내게 창조경제를 떠올리게 했다. 직업은 못 속인다더니 경제기자로 밥 먹은 세월이 꽤 돼서였을 것이다. 사실 성공비결을 분석하고 어딘가에 꿰맞추는 건 쉽다. 결과가 나온 뒤 훈수, 품평이야 누군들 못하랴. 그러니 영화·소설·게임·드라마, 뭐가 됐든 빅 히트작에는 성공 비결 배우기 열풍이 불게 마련인 거다. 군색하지만 천송이에 창조경제를 빗대는 이유다.



 첫째 비결은 ‘15년 발연기’다. “15년 발연기가 어디가냐”며 극중 절친이 ‘천송이’에게 비아냥댈 때, 바로 알았다. 그래, 저 능청맞고 천연덕스러운 표정 뒤에 15년 발연기가 있었구나. 전지현은 1999년 광고모델 데뷔 후 15년을 ‘발연기’ 꼬리표를 달고 살았다. 그 꼬리표를 떼려고 그는 영화 ‘도둑들’에서 대역 없이 5층에서 뛰어내리고, 와이어에 매달린 채 건물을 탔다. 그러곤 마침내 주사와 욕설, 무식과 내숭까지 신드롬으로 바꿔냈다.



 15년 발연기는 ‘1만 시간의 법칙’과 통한다. 말콤 글래드웰이 끄집어내 유명해진 성공비결, 뭔가 잘하고 성공하려면 1만 시간 한 우물을 파야 한다는 법칙 말이다. 타고난 연기 천재는 없다. 어느 연기자인들 한 번에 되랴. 절정은 1만 시간 뒤, 15년 뒤에 온다. 거의 대사 없는 연기로 사실상 데뷔작에서 히트했던 ‘모래시계’의 이정재 빼고는 예외 없는 법칙이다. 창조경제의 성공도 그렇다. 대통령 임기 중에 가시적 성과를 내려고 조급해 해선 안 된다. 길게 봐야 한다. 1만 시간, 15년 뒤 대한민국 경제 대박의 틀을 닦는 마음으로.



 둘째, 이젠 중국이다. 배용준의 한류는 일본판이었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이번엔 중국에서 먼저 분 치맥 바람이 한반도를 달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배용준 한류의 경제효과를 약 3조원으로 추산했는데, 전지현 효과는 그보다 훨씬 커질 수 있다. 중국과의 인연설도 나쁘지 않다. 본인은 줄곧 부인하지만 본명이 왕지현인 전지현은 끊임없이 화교설에 시달렸다. 중국 차이나닷컴은 아예 ‘전지현은 중국 혈통’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창조경제의 돌파구도 중국에 있다.



 셋째, 자기 것으로 승부한다. 망가지는 여배우역, 전지현은 딱 맞는 배역을 맡았다. 연예기획사 IHQ 관계자는 “지금까지 전지현은 남의 옷을 입었다. 이제야 제 옷을 입고 제 실력을 발휘했다”고 말했다. 한국경제는 이제껏 남의 것 따라하기로 커왔다. 이른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2등 전략이다. 이젠 내 것이 아니면 안 된다. 퍼스트 무버(first mover), 먼저 움직이는 자가 돼야 한다. 내 옷, 내 것이야말로 세계에 통하는 힘이다.



 넷째, 혼성모방이 창조다. 혼성모방은 잘된 것을 추려 섞어 새 작품을 만드는 행위다. 무턱대고 베끼는 표절과는 다르다. ‘별그대’는 요즘 잘나가는 드라마코드를 다 담았다. 초능력·환상·판타지·꽃미남·병맛 연기…. 심지어 인디언 주술에 걸려 400년을 산 사나이를 그린 폭스TV 드라마의 표절 시비까지. 이탈리아의 명품 디자인이 어디서 나오겠나. 선조가 남긴 로마와 그리스의 걸작들을 어려서부터 보고 배운 힘 아니겠나.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창조경제도 마찬가지다. 이명박의 녹색성장도 담고 DJ의 벤처 활성화도 담는 거다. 창조가 별건가. 성공하면 창조요, 못 하면 망조인 거다.



이정재 논설위원·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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