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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고 있는 게 … 토끼일까, 손일까

손 그림자로 토끼·나비·개·사슴을 만드는 놀이를 모티브로 실제 동물 박제를 꺾고 늘인 한경우(35) 씨의 설치. [사진 송은아트스페이스]
“내 나이 서른에 21세기 세계에 관한 ‘옛 도시인의 실제 이야기’라는 책에서 굉장한 그림을 보았다. 그것은 과거의 사람들이 머리에 썼다는 중절모의 그림이었는데 이것이 그 그림이다.… 나는 내 걸작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면서 이 그림이 무서워 보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런데 그들은 ‘무섭냐구요? 누가 코끼리를 소화시키고 있는 보아뱀을 보고 무서워 하겠어요?’라고 되물었다.”

 어디서 본 듯한 문구인가, 제대로 봤다.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1943) 도입부를 살짝 비틀었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그렸는데 다들 모자로만 본다’며 발상의 전환을 촉구하는 대목이다.

 전시장엔 모자를 확대한 영상이 나오고, 벽에는 위의 글과 함께 색색의 모자 드로잉이 걸렸다. 서울 압구정로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는 ‘한경우: I MIND’전의 한 장면이다. 2011년 송은미술대상 수상작가 한경우(35) 씨의 개인전이다. 전시장서 만난 한씨는 “어릴 적부터 이 이야기가 무리하게 들렸다. 암만 봐도 모자인데 어떻게 보아뱀으로 보란 말이냐 싶었다”고 말했다.

『어린왕자』의 이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해져서 이제 모자만 봐도 보아뱀이라고들 할 지경이 됐다. “21세기 미술가의 역할은 이것을 다시 모자로 보게 해 주는 게 아닐까 싶었다”는 게 작가의 변.

 인식은 얼마나 시각을 지배하는가, 보는 것은 얼마나 아는 것에 예속돼 있는가. 이 젊은 작가가 줄곧 붙잡아 온 주제다. 서울대 조소과 졸업 후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대안공간 루프에서 연 개인전(2011)에서는 별무늬 티셔츠나 빨간 가구처럼 전시장에 무심히 배열된 물건들로 성조기 형상을 만들어 보여줬다.

 한씨는 이번에 전시장 3개층을 전부 신작으로 채웠다. 좌우 대칭의 형상으로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스위스 정신과 의사 허먼 로샤의 심리 검사에 착안한 사진(Plastic Rorschach), 손 그림자로 동물 모양을 만드는 아이들의 놀이를 패러디한 설치(Projected Specimen) 등을 내놓았다. 각각 비닐봉지를 구겨 좌우 대칭의 형상을 만들거나, 동물 박제를 꺾고 늘여 억지로 손 그림자 형상에 맞춘 설치다.

  다음 달 12일까지. 무료. 02-3448-0100.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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