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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수유리에 살면서

수유리에 살면서 - 박시교(1945~ )


수유리에 살면서 내 가장 즐거운 날은

밤새 비 내려서 계곡물 넘치는 때

그 소리 종일 들으며 귀를 씻는 일입니다

어떤 때는 귀 혼자서 고향 냇가 다녀도 오고

파도소리 그립다며 동해 나들이도 즐기지만

이날은 두 귀 하나 되어 꼼짝도 않습니다

수유리에 살면서 안빈安貧이란 옛말을

새록새록 곱씹을 때도 바로 이런 날입니다

당신도 들었으면 해요, 귀 씻는 저 물소리


‘십년을 경영하여 초려삼간 지어내어/ 나 한 칸 달 한 칸 청풍 한 칸 맡겨두고/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던 송순의 그것쯤일까요. 새록새록 곱씹는다는 그 안빈이란 옛말 말이에요. 안빈은 청렴과 결백을 안고 있기 때문에 고결의 상징이 되지요. 수유리에 살면, 밤새 비 내리면, 계곡물 넘치는 소리를 듣게 되면, 그러면 두 귀가 하나 되어 꼼짝도 하지 않게 되어 그 고결한 안빈을 생각하게 되는군요. 그 물소리에 귀를 씻는군요. 귀를 씻는다는 말은 마음을 씻는다는 말인데 시인의 마음은 안빈, 그 자체겠군요. 그런데 시인은 ‘당신’의 마음도 씻어주려 합니다. 밤새 비 내리는 날, 계곡물이 넘치는 날, 수유리로 달려가야겠습니다. 저도 ‘당신’이니까요.

<강현덕·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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