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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현장 찾아 시민과 함께한 황제 티투스 '배회경영' 리더십

영화 `폼페이 최후의 날`의 한 장면.

‘폼페이 최후의 날’이라는 영화는 많은 사람에게 익숙하다.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묻혀버린 고대도시 폼페이가 거의 2000년 후에 발굴되면서 여러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같은 제목으로 6편의 영화가 만들어졌고,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인간 상상력의 지평을 더없이 확대했다. 번영하는 이탈리아 남부도시 폼페이를 뒤덮은 베수비오 화산은 로마제국 역사상 최대의 자연재해로 기록됐다.

 이 글은 영화평이 아니다. 도시가 화산재에 묻히고 약 5000명의 시민이 희생된 이 엄청난 재해가 일어났을 때 국가 최고 리더가 어떻게 행동했는가를 알아보는 글이다. 당시 황제는 평민 출신 ‘티투스’였다. 79년 6월 24일 선황의 사망으로 황제 자리에 오른 티투스는 조국 로마가 아버지 때보다 더욱 발전되고 시민의 안녕이 증진되기를 원했으며 누구보다도 좋은 황제가 되고자 했다.

 황제 즉위 두 달이 지난 8월 24일 오후 1시 무렵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했다. 이 소식은 로마가 구축한 훌륭한 도로망을 타고 이틀도 채 안 돼 로마에 도착했다. 황제업무를 파악하고 있던 티투스는 모든 것을 제쳐두고 한걸음에 폼페이로 달려갔다. 하지만 티투스는 재해 현장에 ‘이재민 대책본부’를 설치하고 진두지휘를 하며 재해 복구를 위해 온 힘을 쏟았다. 평민 출신이어서일까? 황제는 복구작업에 나선 일꾼들과 똑같이 먹고 자며 그야말로 아픔을 함께 나눴다. 티투스는 이재민을 돌보며 일부 세금을 감면해 주고 파괴된 사회간접자본을 다시 지었다. 이런 황제를 시민들은 진정으로 사랑했다.

 티투스는 이듬해인 80년까지 폼페이에 머물렀다. 봄이 되자 급보가 날아왔다. 로마에 큰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황제는 급히 수도로 가서 ‘재해대책본부’를 차리고 재해 복구와 이재민 대책에 최선을 다했다. 안정돼 가던 81년 봄이 되자 이번에는 전례 없는 전염병이 로마에 발생했다. 티투스는 ‘전염병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국가적 재해 수습에 앞장섰다. 황제 집무실 책상에서가 아닌 현장을 방문해 ‘배회경영(Managing by Wandering Around·MBWA)’으로 그곳에서 시민들과 함께했다.

 아뿔싸! 연이은 재난으로 인해 심신이 쇠진한 탓일까. 티투스는 만 41세가 되기 전인 81년 9월 13일 세상을 떠났다. 비록 2년3개월 정도의 짧은 치세였지만 로마 시민들은 티투스를 위대한 리더로 마음속에 담았다. 시민들과 함께 아픔을 나눈 진정한 공복(公僕)이었던 게 이유다.

 미국 대통령 링컨 연구로 유명한 도널드 필립스는 링컨 리더십의 핵심을 이야기하면서 “링컨은 타고난 현장주의자”라고 역설했다. ‘집무실에서 나와 직원들을 직접 만나면서 인간적인 교감을 나누는 것’이 바로 배회경영이다.

링컨은 일리노이에서 변호사로 일할 때도, 대통령 직무를 할 때도 현장주의자였다. 링컨은 한 달에 20일 이상 현장을 찾아가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남북전쟁이 일어나자 직접 전보실을 방문하고 조선소와 무기제작 공장에 들러 사람들과 소통했다. 심지어 링컨은 포탄과 총알이 날아드는 전선을 자주 시찰해 대통령으로서 무엇을 해줘야 하는지를 알아봤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지 1년이 지났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대화합·국민소통·현장경영 등을 공약했다. 너무나 신선하고 대한민국을 위한 바른 길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즈음 이런 공약을 실천할 구체적인 내용을 볼 수 없어 조금 실망스럽고 안타깝다. 더욱이 올 들어 강원도 폭설,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참사, 조류인플루엔자(AI) 창궐 등 잇따른 재해 현장에 대통령이 찾아가 사고 수습을 진두지휘했다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몇몇 정치인은 앞다퉈 방문하고 관심을 보이기는 했다.

 성공적인 대통령이 되는 조건은 ‘청와대에서 나와 국민과 만나면서 인간적인 교감을 나누는 것’이다. 바로 배회경영이 핵심이다. 폭설로 마비된 강원도와 경주에 가서 주민들과 아픔을 나누고, AI로 피해를 본 농민들과 고통을 나누는 것이 대통령의 바람직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나서기에는 너무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티투스도, 링컨도 지금 우리나라 대통령이었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국민에게 위대한 리더로 칭송받고 기억되는 최선의 길은 경제발전 같은 업적이 아니라 국민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무엇이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까를 고민하는 리더십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김형곤 교수
김형곤 교수 khg@konyang.ac.kr

김형곤 건양대 교수는 교양학부에서 미국사, 미국 대통령 리더십을 가르치며 사회봉사센터장을 맡고 있다. 중앙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버지니아의 워싱턴 앤드 리 대학 방문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원칙의 힘(링컨)』『소통의 힘(FDR)』 『정직의 힘(워싱턴)』 『나는 세렌디퍼다』『영화로읽는 서양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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