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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삶, 좋은 책] ④ 존 페리『 미루기의 기술』

부부싸움, 학습능력 저하, 직장 내 생산성 부진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미루는 버릇이다. 미루기가 좋다는 사람은 없다. 미국 작가 나폴리언 힐(1883~1970)은 “미루기는 그저께 했어야 할 일을 모레로 미루는 나쁜 버릇”이라고 했고, 영국 극작가·시인 에드워드 영(1683~1765)은 “미루기는 시간 도둑이다”라고 말했다.

북미에선 ‘미루기’을 상당히 중요한 개인·사회 현상으로 다룬다. ‘미루기쟁이(Procrastinator)’는 스트레스나 죄책감에 시달리기 때문에 그 고통을 덜어줘야 한다고 본다. ‘미루는 버릇’이 심한 경우에는 상담치료를 받기도 한다. 최고경영자(CEO)나 사원들의 ‘미루는 버릇’은 사업 실패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심리학이나 뇌의학에서도 연구 주제로 다룬다.

‘미루는 버릇’의 원인은 무엇일까. ‘게을러서 그런 거지 뭐 별다른 이유가 있겠어’라는 반응도 예상된다. 그러나 학문의 발전으로 ‘미루는 버릇’이 있는 사람들도 훨씬 따뜻한 사회적 대접을 받게 됐다. 심리학자들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 완벽주의, 자신감 결여 등을 ‘미루는 버릇’의 심리적 요인으로 파악한다. 전두엽 이상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캐나다 캘거리대 피어스 스틸(심리학) 교수가 2만4000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자신이 가끔씩 미루기 문제가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95%였다. 만성(chronic) 미루기로 고생하는 사람은 25%였다. ‘미루는 버릇’이 특히 문제가 되는 경우는 대학에서다. 연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북미 대학생의 50~75%가량은 자신에게 ‘미루는 버릇’이 있다고 응답한다. 그들은 ‘미루는 버릇’ 때문에 시험 준비, 과제물 제출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스탠퍼드대 석좌교수인 존 페리(71)는 100편이 넘는 논문과 단행본을 펴낸 철학자다. 하지만 그 또한 평생 ‘미루는 버릇’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그는 1995년 ‘구조화된 미루기(Structured Procrastination)’라는 에세이를 온라인에 올려놨다. 반응이 좋았다. “삶이 바뀌었다”는 감사의 편지도 받았지만 에세이를 단행본 『미루기의 기술(The Art of Procrastination)』로 출간한 것은 한참 뒤인 2012년이다. 영문판 92쪽, 국문판 178쪽인 짧은 책이지만 17년이 걸린 것이다. 이 책 자체가 페리 교수의 ‘미루기 버릇’의 증거다.

『 미루기의 기술』의 영문판(왼쪽)과 한글판.
『미루기의 기술』이라는 이 책의 제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루기의 극복’이나 ‘미루기 탈출’이 아니다. 페리 교수는 미루기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고 약속하는 게 아니다. 바뀔 가능성도 있지만 대부분의 미루기쟁이들은 평생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페리 교수는 예상한다. 대신 그는 미루기를 긍정적으로 볼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루기쟁이는 결코 게으름쟁이가 아니다. 아무것도 안 하는 미루기쟁이는 없다. 그들도 뭔가 항상 하고 있다. 페리 교수는 ‘미루는 버릇’이 있는 사람들도 충분히 많은 성과를 내고 존경받는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예컨대 여러 분야에서 천재성을 발휘한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소문난 미루기쟁이였다.

페리 교수가 제안하는 것은 ‘구조화된 미루기, 체계적인 미루기’다. 할 일을 하지 않고 미룰 때도 시간을 조직적·계획적으로 관리하며 활동을 의식적으로 통제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뭔가를 미룰 때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라 뭔가 ‘딴짓’을 한다는 점에 착안했다. 딴짓의 질을 높이자는 구상이다. 페리 교수는 “시간을 허비하지는 말자”고 제안한다. 미루고자 하는 일 대신 화장실 청소, 빨래, 잔디 깎기 등 무엇이든지 유용한 일을 하자는 것이다.

미루는 버릇을 없애려면 할 일을 줄이라는 게 상식이다. 페리는 반대로 할 일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데드라인이 다가오는 시급한 일이 있다고 하자. 내일이 시험이거나 내일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야 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딴짓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경우에는 마음에 트릭을 써야 한다. 이런 식의 ‘자기기만(Self-deception)’이 필요하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시급하다. 당장 우크라이나 역사에 대한 책을 한 권 읽기 시작하고 우크라이나 말을 공부해야 한다.” 믿거나 말거나 이렇게 마음을 속이면 당장 시험공부, 원고 쓰기에 착수할 수 있다는 게 페리 교수의 주장이다.

『미루기의 기술』은 페리 교수 자신의 체험에서 나왔다. 젊은 시절 그는 강의 준비는 뒤로 미루고 학생회관에서 학생들과 탁구치고 대화하는 것을 즐겼다. 덕분에 그는 학생들을 이해하고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교수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페리 교수는 미루기쟁이와 비(非)미루기쟁이는 정리정돈법도 달라야 한다고 말한다. 미루기쟁이는 서류함·파일 정돈보다는 큰 책상에 할 일과 관련된 자료를 펼쳐놓는 게 더 낫다.

페리 교수는 자신의 주장을 널리 전파하기 위해 손녀의 도움을 받아 웹사이트(www.structuredprocrastination.com)를 개설했다.

토머스 제퍼슨은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절대로 내일로 미루지 말라”고 했다. 페리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내일이면 사라질 일, 안 해도 될 일을 절대 오늘 하지 마라.”

김환영 기자
김환영 기자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중남미학 석사학위와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중앙일보 논설위원 겸 심의실 위원, 단국대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세상이 주목한 책과 저자』『하루 10분, 세계사의 오리진을 만나다』『아포리즘 행복 수업』등이 있다.

John Perry

1943년 미국 네브래스카주 링컨에서 태어났다. 미국철학회 회장을 지낸 페리 교수는 돈칼리지(Doane College·학사)와 코넬대(박사)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그의 전공 분야는 논리학·언어철학·형이상학·심리철학이다. 현재 노르웨이 한림원 회원인 그는 저서『선, 악, 신의 존재에 대한 대화』(1999),『정체성, 개인의 정체성과 자아』(2002)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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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