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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디게 자라 '윤년엔 세 치 준다' 속설 … 목판·옥새·장기알로 애용

지금쯤 피기 시작하는 회양목 꽃(위 사진). 경기도 여주 효종 왕릉 재실의 회양목. 천연기념물 제459호.
이제 곧 봄꽃 세상이다. 매화·진달래·산수유·목련 등 익숙한 꽃들이 저마다 예쁜 자태와 향기로 갓 깨어난 대지를 풍요롭게 할 것이다. 이들 사이에 회양목이 끼어 있다. 아직 눈발이 흩뿌리는 이른 봄날 꽃잎도 없이 손톱만 한 크기의 연노랑 꽃이 핀다.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이 작은 꽃이 서둘러 피는 것은 빨리 씨앗을 만들어 경쟁이 적은 늦봄이나 초여름에 자손을 퍼뜨리겠다는 책략에서다.

 자연 상태로 회양목이 자라는 곳은 충북 단양을 비롯해 한반도 중부 석회암지대의 척박한 급경사지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긍익(1736~1806)이 지은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선 단양 도담삼봉 일대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푸른 석벽이 만 길이나 되어 보이는데 회양목이 바위틈에 거꾸로 나 있고, 바위에 구멍이 문같이 생겨 있어 바라보면 딴 세상 같다.’ 북한 땅 강원도 회양(淮陽)에 많이 자란다고 하여 회양목이며, 나무 속 색깔이 연한 황색이라 옛 이름은 황양목(黃楊木)이었다.

 회양목은 열악한 환경과 작게 자라는 유전인자까지 겹쳐 시간이 지나도 자랐다는 느낌이 잘 들지 않는다. 중국의 유명한 시인 소동파는 ‘황양목이 일 년에 한 치씩 더디게 자라다가 윤년을 만나면 오히려 세 치가 줄어든다’는 속설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황양액윤(黃楊厄閏)’이라고 하면 무슨 일의 진행 속도가 늦음을 빗대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설마 줄어들기야 하랴마는 사람들이 키가 줄어든다고 느낄 만큼 자람이 늦다는 뜻이다. 오늘날 회양목은 척박한 바위산에서 내려와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정원이나 잔디밭 가장자리에 동그랗게 깎아놓은 자그마한 나무는 대개가 회양목이다. 생명력이 왕성해 사람들이 기분 나는 대로 이리저리 잘라대도 금세 가지를 뻗어내는 늘푸른나무다.

 주변에 흔히 보는 회양목은 작은 정원수로 친숙할 뿐이지만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면 『삼국사기』 『조선왕조실록』에 여러 번 등장할 만큼 쓰임새가 귀중했다. 1000여 종에 이르는 우리나라 나무 중에서 세포 크기가 가장 작아서 나뭇결이 고우며 치밀하고 단단하기까지 하다.

 경주 불국사 석가탑에서 나온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은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중엽에 간행된 두루마리 형태의 목판인쇄물인데, 필자는 회양목 목판으로 찍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정밀한 글자를 새기거나 귀중한 서책의 인쇄에 필요한 나무활자도 대부분 회양목을 썼다. 구하기 쉽고 가공이 간편하면서 마치 상아나 옥에다 글자를 새겨둔 것과 다를 바 없이 정교해서다.

 이렇게 우리나라 인쇄문화를 발전시킨 원동력이 바로 자그마한 회양목에서 나온 것이다. 그 외에 점치는 도구, 관리들이 차고 다니던 호패(號牌), 머리빗, 장기 알, 각종 공예품 등에도 빠지지 않았다. 임금님의 옥새(玉璽), 관인(官印), 그림이나 글씨를 쓰고 찍는 낙관(落款), 개인 인장도 회양목으로 만들었다.

 경기도 여주 효종대왕의 능인 영릉 재실(齋室)에는 키 4.7m, 지름 20㎝, 나이 300여 년에 이르는 회양목 한 그루가 천연기념물 제459호로 지정돼 있다. 가로수 크기와 비슷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가장 오래 살고 있는 회양목이다. 1년에 자란 평균 나이테 너비가 0.3㎜ 남짓에 불과하여, 50㎜ 전후인 다른 나무와 비교해 보면 윤년이 아니더라도 회양목은 매년 액운이 든 셈이다.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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