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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예 기자의 '위기의 가족'] 아이낳다 20년간 중환자실 생활 아내, 이혼 요구하는 남편

중앙DB
요즘 많이들 한다는 페이스북에 가입한 지가 얼마 안 됐다. 그저 남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나 훔쳐보기 정도였는데, 지하철 출근길에 내 눈을 사로잡은 게 있었다. 허핑턴포스트에 올라온 사진 몇 장이었다. 이름하여 ‘이혼케이크’. 생크림 위에 장식된 등돌린 남녀, 그리고 ‘새로운 출발과 행복을 위하여’라는 글귀까지. 그저 케이크란 생일 때나 먹는 거라는 단순한 내 생각을 뒤집어엎는 다소 충격적인 풍경이었다. 그러고 보니, 결혼식처럼 일본에선 이혼식도 있다는데, 고통을 지워버리고 새 출발을 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그런 자그만 ‘산업’이 존재하는 것도 경악할 만한 일은 전혀 아닌 듯하다.

이번엔 다소 비정한 남편의 이야기를 펼쳐봤다. 결혼생활은 분명 이 남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줬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과연 이 남자는 어떻게 사는 것이 옳았을까.

병상에서 보낸 20년 … 그리고 보고 싶은 아가야
#아내의 이야기


뜨거운 것이 다리 사이로 흘러내렸다. 드디어 신호가 왔다. 아기가 나올 차례다. 미리 싸뒀던 가방을 들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아기가 나오려나 봐.” 허리뼈를 짓누르는 뻐근한 진통이 시작됐다. 소리를 지르면 아이도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이를 악물고, 몰려오는 통증을 견디기로 한다. 오랜 사투 끝에 자궁 문이 열리고 아이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내가 생명을 하나 낳았구나. 신기하게도 아기는 남편을 빼닮았다.

큰일을 해냈다는 안도감이 밀려오면서 잠이 쏟아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직도 분만실. 뭔가 잘못되어가는 걸까. 의사의 손이 분주해졌다. 간호사가 다급한 목소리로 “출혈이 멈추지 않아 수술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환한 불빛 아래 수술대에 누워서도, 난 나에게 닥칠 일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을 했다는 것은 마취에서 깨어난 뒤에서야 알았다. 남편의 퉁퉁 부은 얼굴. 그리고 움직이지 않는 내 두 다리.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자궁적출 수술을 하면서 척추가 어긋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리 감각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고, 수술 경과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으니 조금 더 지켜보시죠.”

그날 이후로 나는 20년간 한 번도 중환자실을 떠나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이 침대 위에 곧추앉아보기라도 했다면, 답답한 마음은 없었을 것이다. 남편은 “의료사고”라며 소송을 냈다. 변호사 사무실과 법원을 오가느라 분주해진 남편의 얼굴을 보는 날도 잦아들어갔다. 호흡기를 달고, 침대에 꼼짝 않고 누워만 있는 인생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차라리 듣지도 보지도, 생각하지도 못했더라면, 고통이 덜했을지도 모르겠다.
병실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남편은 점점 멀어져갔다. 한번은 아이를 병원에 데려왔다가 아이가 크게 감기에 걸리자, 남편은 아이마저 데려오질 않았다. 그저 간혹 친정식구들이 찾아와 말벗을 해주고 돌아가는 날들이 이어졌다.

소송은 힘없고 모르는 게 많은 우리 같은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재판에서 지고 돌아온 날 남편은 하염없이 울었다. 이렇게 질 수만은 없다며 항소를 했다. 다행히 법원에선 “병원비를 안 받는다는 조건으로 합의하라”는 조언을 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병원에 있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병원치료를 계속 받을 수 있다는 조건은 나쁘지 않았다. 골칫거리였던 병원비 문제가 해결되고 나니, 또 다른 문제가 찾아왔다. 남편이었다.

남편은 지쳐있었다. 그는 우연히 만난 한 여자와 가정을 꾸렸다. 아직 어린 아이에겐 엄마가 필요했다고 했다. 걷고 뛰고 손잡고 같이 다닐 수 있는 그런 엄마 말이다. 아이는 그 여자를 엄마로 알고 지낸다고 했다. 내가 가보지 못한 초등학교 입학식이며 졸업식, 중학교 입학까지 아이의 인생에 중요한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자리를 지킨 것은 내가 아닌 그 여자였다.

나도 내 인생을 찾고 싶다
#남편의 이야기


20년이다. 중환자실을 한발자국도 떠날 수 없는 아내를 두고 살림을 차린 건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일년도, 이년도 아닌 20년을 어떻게 병시중만 하면서 살 수가 있나. 아이에겐 엄마가 필요했고, 내겐 기댈 수 있는 아내가 필요했다. 우연히 알게 된 여자는 이런 내 처지를 알면서도 떠나질 않았다. 아이도 끔찍하게 여겼다. 아이도 이제 장성해 성인이 되면서, 나는 내 삶을 찾고 싶었다. 오랜 시간 내 곁을 지켜준 여자에게도 제대로 된 아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다. 남들은 손가락질을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행복하고 싶었다.

보살핌 필요한 아내, 유기해선 안 돼
#법원의 이야기


하반신 마비로 누워있는 아내를 상대로 이혼 소송을 낸 남편. 서울가정법원은 이 비정한 남편에게 “이혼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남편은 이혼사유로 아내의 오랜 와병이 민법 제840조 제6호인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치료를 통한 증세 호전을 기대할 수도 없는 형편이지만 부부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게다 아내가 출산을 하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아내의 상태가 ‘아내 책임’인 것도 아니라고 했다. 또한, “병원과의 소송으로 치료비를 부담하지 않게 돼 남편에게 경제적 희생이 따르지 않는다”고도 지적했다. 법원은 “아내와 법률상 혼인관계를 지속하면서 살라는 것이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아내에겐 가족의 보살핌과 간호가 절실히 필요하다”며 “불과 몇 년 동안 병원에 방문하다 발길을 끊고 처가에 아내를 맡기고, 아이를 보여주지 않은 것은 아내를 유기한 것”이라고 못박았다.

중환자실에 있는 아내가 계속 입원해 있어야 하고, 남편이 다른 여자와 사실혼 관계로 지내는 것을 용인해주고 있지만 이 역시 이혼할 수 있는 사유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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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