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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의 귀재 인플루엔자A … 감염 100% 막긴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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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이 인플루엔자(Influenza·독감)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달 중순 전북 고창에서 시작된 조류 인플루엔자(AI)로 닭·오리 수백만 마리가 살처분됐다. 연인원 수만 명을 동원한 방역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선 A형 독감이 유행이다. 치료제인 타미플루 품귀현상이 생길 정도다. 인플루엔자를 일으키는 바이러스의 정체는 무엇인지, ‘사후약방문’이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는지 알아봤다.

인플루엔자는 영어로 ‘영향(influence)’을 뜻하는 이탈리아어다. 하지만 중세 이래 인류를 괴롭힌 호흡기 질병 이름으로 악명을 떨쳤다. 인플루엔자의 초기 증상은 콧물·기침 등 감기와 비슷하다. 인플루엔자는 섭씨 38도 이상의 고열과 심한 근육통을 동반하는 게 감기와 다르다. 감기가 리노·아데노·코로나 등 수많은 바이러스에 의해 유발되는 것과 달리 인플루엔자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때 걸린다.

조류 인플루엔자(AI) H7N9 바이러스의 헤마글루티닌(HA·리본 모양) 단백질이 조류 같은 숙주 세포의 수용체(공 모양)와 결합한 모습. [자료 사이언스]
신종플루, 2년간 2만여 명 사망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크게 구분하면 세 종류다. A형은 사람을 포함한 포유류와 조류, B형은 사람, C형은 사람과 돼지에게 감염된다. 가장 흔하고 가장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A형이다. 인플루엔자A 바이러스를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면 민들레를 닮았다. 타원형 몸체 겉면에 작은 ‘못’과 ‘버섯’이 촘촘히 박혀 있는 모양이다. ‘못’은 헤마글루티닌(HA), ‘버섯’은 뉴라미니데이즈(NA)라는 표면 단백질이다. HA는 제각각 다른 숙주(감염체) 세포 속으로 들어갈 때, NA는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 위해 숙주세포를 빠져나올 때 세포의 ‘문’을 여는 ‘열쇠’ 역할을 한다. 현재까지 HA는 16종, NA는 9종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의 조합에 따라 ‘HxNy’ 형태의 바이러스 아형(雅兄, subtype)이 결정된다. 이론적으로 총 144개의 아형이 있을 수 있지만, 실제 발견된 것은 그보다 적다. 현재 국내에서 유행하는 독감은 H1N1형과 H3N2형, 이번에 발생한 AI는 H5N8형이다.

 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의 정체가 밝혀져 있는데도 인류는 인플루엔자가 번지는 것을 완벽하게 막지 못하고 있다. 종류가 많기도 하지만 인플루엔자A가 시시때때로 형태를 바꾸는 변신의 귀재이기 때문이다.

 인플루엔자A의 유전체(지놈)는 총 8개(PB2, PB1, PA, HA, NP, NA, M, NS)의 절편으로 나뉘어져 있다. 숙주가 동시에 두 종류 이상의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세포 안에서 각각의 절편들이 뒤섞이면서 전혀 다른 바이러스가 만들어진다. 20세기 초 전 세계를 휩쓴 스페인독감, 2009년 ‘팬더믹(pandemic, 전염병 대유행)’ 신드롬을 일으킨 신종플루가 대표적인 예다.

 이 같은 신종·변종 바이러스는 기존 면역체계로는 걸러지지 않기 때문에 인체에 감염되면 큰 피해를 초래한다. 스페인독감은 당시 인구의 약 1%, 신종플루는 2009~2010년 2만 명 가까운 사망자를 냈다.

 더욱이 인플루엔자A는 RNA 바이러스다. 천연두 같은 DNA 바이러스와 달리 자신의 유전정보를 퍼뜨릴 때 RNA를 이용한다. DNA 바이러스는 유전자 복제과정에서 오류가 생기면 스스로 치유하는 기능이 있다. 반면에 RNA 바이러스는 이 같은 역할을 하는 효소가 없어서 달라진 유전정보를 계속 안고 간다. 조상과 다르게 생긴 자손(돌연변이)이 끊임없이 생기는 이유다.

 고려대 약대 김정기(바이러스학) 교수는 “요즘 유행하는 H1N1 바이러스가 신종플루와 아형이 같지만 백신을 맞은 사람들까지 다시 감염시키는 것은 점변이(point mutation, 유전자의 극히 일부분에 발생하는 돌연변이) 때문일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최근 AI와 독감이 함께 유행하면서 AI도 사람에게 감염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현재까지 조류로부터 사람에게 직접 옮는 것으로 확인된 고병원성 AI는 H5N1과 H7N9 두 종류뿐이다. 1997년 홍콩에서 처음 감염 사실이 확인된 H5N1은 매년 환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치사율이 60%에 이른다. H7N9은 지난해 2월 중국에서 첫 환자가 발생한 뒤 연말까지 144명이 감염돼 46명이 숨졌다. 최근 다시 유행 조짐을 보여 지난달에만 127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고 31명이 숨졌다.

 국내에선 2003~2011년 네 차례 H5N1이 유행했다. 당시 방역작업에 참여했던 일부 작업자의 몸속에 바이러스가 침입해 항체가 만들어진 사실이 확인됐다. 다만 방역당국은 “실제 발병한 인체 감염 사례는 한 건도 없다”고 밝혔다. H7N9은 아직 국내에서 발생하지 않았다. 현재 돌고 있는 H5N8은 세계적으로 인체 감염 사례가 없고 “유전자 형태가 사람에게 감염되는 종과는 많이 다르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잘못 쓰면 ‘트로이 목마’ 될 수도

 인플루엔자에 걸리면 타미플루같은 항바이러스제를 써야 한다. 타미플루는 NA 단백질을 공격해 바이러스가 몸 안에 퍼지지 못하게 한다. 고립된 바이러스는 면역체계의 공격을 받고 죽게 된다.

 하지만 이 같은 치료제를 많이 쓰다 보면 내성을 갖는 바이러스가 생길 수 있다. 항생제를 남용하면 내성을 가진 슈퍼 박테리아가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다.

 그 때문에 전문가들은 “미리 백신을 맞아 병에 걸리지 않는 게 최선”이라고 말한다. 화학처리로 병원성을 약하게 만들거나(생백신), 감염성을 없앤(사백신) 바이러스, 혹은 바이러스와 유사한 입자(VLP)를 주사하면 몸 안에 항체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항체는 뒤에 실제 바이러스(항원)가 들어오면 바로 인식해 면역체계의 공격을 유도한다.

 하지만 신종이나 변종 바이러스가 워낙 많은 게 문제다. 그때그때 각각의 종에 맞는 백신을 접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쓰이는 계절독감 백신은 그 해 유행할 바이러스 종류를 미리 예상해 만들어진다. 하지만 예상과 어긋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또 접종 후 항체가 생길 때까지 최소 1주일 이상 시간이 걸리는 점도 단점이다.

 그 때문에 최근에는 바이러스 종류에 상관없이 쓸 수 있는 범용(universal) 백신을 개발하는 연구가 한창이다. 다양한 종의 바이러스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유전물질을 겨냥한 백신이다. 몸 안에서 항체를 만드는 백신 대신 아예 외부에서 항체를 만들어 직접 호흡기 점막 등에 뿌리는 ‘항체 치료제’도 나오고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바이러스감염대응연구단은 현재 범용백신 후보 물질을 몇 가지로 압축해 동물 실험을 하고 있다. 이 백신 후보 물질을 낙타에 맞혀 얻은 항체를 이용한 치료제도 개발하고 있다. 김상현 연구단장은 “낙타 항체는 크기가 작고 구조가 단순해 치료제 개발에 유용하다”고 말했다.

 조류는 사람과 사정이 다르다. 자칫 AI백신을 잘못 쓰면 “겉으로 드러나는 증세만 완화되고 감염성은 유지돼 거꾸로 AI 확산을 초래하는 ‘트로이의 목마’ 같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고려대 김정기 교수는 설명했다. 또 모든 닭·오리 등에 접종하기에는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도 한계다. 닭·오리의 살처분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참고서적: 『조류독감』(돌베개), 『바이러스 폭풍』(김영사)

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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