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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다워] 나사렛대 박사학위 취득한 박종균씨

박종균씨는 27세 때 탄광 사고로 척수 장애인이 됐다. 최근 재활학 분야 박사 학위를 딴 그는 ?장애인 돕기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멀쩡한 사람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하반신을 쓸 수 없게 됐다. 27세 가장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였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그런 상황이 현실로 닥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까.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악몽 같은 장애를 딛고 새 인생을 준비한 사람이 있다. 자신처럼 장애를 가진 사람을 도우려고 재활학 분야 박사 학위를 땄다. 전문대학 졸업 후 30년 만이다. 장애인이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박종균(50)씨 얘기다.

박씨는 척수 장애로 휠체어를 탄 채 자녀 양육, 부모 봉양에 학업까지 병행했다. 최근 나사렛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 논문은 ‘척수 장애인의 사회복귀를 위한 한국형 전환재활 시스템(TRS) 모형 개발’이다. 이제 그의 인생 목표는 중도장애인 재활과 산업재해장애인 사회복귀, 중증장애인 사회참여를 돕는 것이다.

광산에서 얻은 장애

1964년 충북 단양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박씨는 부모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고향에서 고교를 졸업한 뒤 삼척공전에 입학했다. 졸업 즉시 경북 문경의 한 광업소에서 산업체 근로자로 일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2년 뒤 광업소 현장감독이 될 정도로 회사에서 인정받았다. 그새 결혼도 했다.

그에게 어두운 그림자가 다가왔다. 산업체 근로자 의무 근무기간 만료를 불과 3개월 앞둔 1991년 10월. 추석 연휴 뒤 야간 근무를 하는데 막장이 붕괴하면서 5t짜리 돌덩이가 몸을 덮쳤다. 중상을 당한 그는 불빛 하나 없는 땅속에서 사투를 벌이다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생사의 갈림길에 섰다. 간신히 생명은 구했지만 척수 손상으로 인한 하반신 마비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이 떨어졌다.

 오랫동안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은 뒤 일반병실로 옮겼다. 기쁨도 잠시였다. 하는 일 없이 24시간 누워만 지내야 했다. 수도권에 있는 유명 병원의 재활센터에서 치료를 받고 몸에 좋다는 음식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녔지만 여전히 하반신엔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병원생활 2년 새 두 이이는 8살과 5살이 됐다. 그는 다시 일어설 것이라는 희망도, 삶에 대한 의지도 없이 퇴원, 천안 쌍용동의 집으로 돌아왔다.

 병원 문을 나선 뒤 맞닥뜨린 세상의 벽은 험하고 높았다. 장애가 없던 시절엔 몰랐던 일상생활의 소소한 일이 장애를 얻은 후에는 하나하나가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혼자서는 화장실도 못 가고 외출도 할 수 없었다. 밤에는 허리 통증이 심해 불면증에 시달렸다. 신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충격을 잊으려고 마신 술은 오히려 독이 돼 가족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안겨줬고 평온했던 가정은 무너졌다. 부인은 떠났고 아이들은 흩어졌다.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홀로 남겨진 그의 머릿속엔 죽음만 떠올랐다.

운동 단체 이끌며 새롭게 찾은 희망

꾸준한 치료와 운동으로 당당히 일어서는 모습을 꿈꿨지만 꿈일 뿐이었다. 제 몸 가누기도 힘든 박씨는 아버지를 모시며 살림을 도맡았다. 중학생이 된 아들까지 돌봐야 했다. 희망 없는 힘겨운 삶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2003년 그의 삶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산재장애인 단체에서 활동하며 우연히 들은 대학 교수의 ‘우리나라와 외국의 산재보험 그리고 산재장애인 단체의 역할’이란 주제의 강의였다. 막막하고 답답했던 그의 삶을 비춘 한 줄기 빛이었다. 산재장애인의 사회적응을 돕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나사렛대 재활복지대학원에 입학, 수업을 받으며 장애인의 삶과 정체성·가치관을 정립했다.

 그는 학업과 함께 장애인을 위한 스포츠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2005년 장애인전국체전에 휠체어테니스 대표선수로 참가하면서 장애인체육회 설립 필요성을 느꼈다. 충북지역 장애인체육인들과 힘을 모아 2007년 충북장애인체육회를 조직했고 이듬해엔 충주시장애인체육회를 만들었다. 그 무렵 현재 부인을 만났다. 가정에 평온이 찾아오자 그는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해 산재장애인 집단상담, 산재 예방과 장애인식 개선 강의로 전국을 누볐다.

 체육회 결성과 강사 활동으로 분주했지만 고민 끝에 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하기로 결심했다. 부인도 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해 힘을 실어 줬다. 비장애인도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중도장애인을 위한 산재보험체계와 전반적인 재활체계가 제대로 갖춰져야 한다는 절박함은 그의 공부 열정을 키우는 큰 자극제가 됐다.

 박씨는 “장애로 생기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체계적인 장애인 재활시스템이 갖춰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글=강태우 기자 , 사진=프리랜서 진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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