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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한국의 정치 갈등? 그리 나쁜 수준은 아니다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서울 특파원
한국 정치의 분열상에 대해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목하는 두 정파가 서로 이해하기는 고사하고 서로의 존재조차 참을 수 없는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라는 것이다. 불행히도 여행을 많이 할수록 극단적이고 비이성적인 분열이 아주 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국 내 갈등은 불행한 일이지만 ‘상대적’으로는 그리 나쁜 수준이 아니다.

 최근 나는 태국을 방문했다. 아름다운 나라다. 세계에서 여행하기 가장 편한 나라다. 지금 당장 가봐도 정치 상황이 어떤지 전혀 의식하지 못할 것이다. 정치 혼란이 신문 1면 머리기사를 매일 장식하고 있지만 말이다. 시위가 잦은 방콕의 교차로마저도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파티 분위기다. 하지만 사람들과 얘기해보면 분열과 증오의 수준이 두려운 생각이 들 정도라는 것을 알게 된다.

 분열의 근본 원인은 지리적 차이다. 방콕과 동북부 지역이 서로 겨루고 있다. 태국 역사는 사실상 방콕이 인접 왕국들을 정복하며 팽창해 나간 역사다. 소수민족 문제가 있다. 동북부 이산(Isaan) 지역 사람들은 소외감을 느끼며 살았다. 전 태국 총리(2001~2006) 탁신 친나왓의 등장 전까지는. 탁신은 동북부의 잠재적 몰표 가능성을 현실에서 분출시키는 데 성공한 ‘정치 기획자’였다. 의료보험 확대처럼 따지고 보면 훌륭한 정책을 통해서였다. 그는 승리를 발판으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부패를 마음껏 즐겼다.

 반정부 시위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겐 동북부 출신은 ‘대체적으로 무식하다’는 편견이 있다. 시위자들이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근거 중 하나는 이것이다. 탁신과 잉락 현 총리를 지지하는 동북부 사람들은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기 때문에 투표할 자격이 없다. 신문기자인 내 친구는 취재 중 “대학 졸업장이 있는 사람만 투표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상당수 시위자의 말을 들었다.

 이런 배경에서 그들은 투표소 봉쇄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또 투표를 막기 위해서는 폭력 사용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상대편이 멍청하고 발언권을 지닐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들의 투표를 막는 것은 부당하지도 비민주적이도 않은 것처럼 돼버린다. 방콕 시위자들의 현수막은 민주주의 수호를 말하고 있다. 민주주의 철폐가 아니다. 하지만 실상 그들은 태국 민주주의를 저해하고 있다. 한편 데모 반대 슬로건에는 이런 게 있다. “내 한 표를 존중하라.” 이런 요구가 어떤 대단한 요구처럼 돼버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내가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를 좋아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나는 그가 책무를 맡고 있다는 사실은 받아들여야 한다.

 태국 동북부 사람들에게 붙여진 별명으로 대표적인 것은 ‘물소’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물소’는 이곳에서 욕이다. 동북부 출신으로 방콕에 살고 있는 내 친구는 동료들이 ‘붉은 물소’들에 대해 불평하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외롭기도 하고 화도 난다고 했다. 어머니와 전화할 때 ‘물소’ 때문에 속상한 얘기를 꺼냈더니 어머니는 이렇게 대꾸했다. “글쎄, 난 ‘누렁이’가 되는 것보다는 ‘붉은 물소’가 좋아.” 노란색은 시위자들의 색상이다. 그러나 시위대는 지금 빨간색·흰색·파란색으로 된 태국 국기 자체를 상징으로 삼고 있다.

 탁신과 잉락을 지지하는 ‘붉은 셔츠’ 운동도 폭력을 쓰기 시작했다. 비극이다. 내가 며칠 전 걸어다닌 바로 그 거리에서 폭탄 공격으로 어린이가 사망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이다. 태국은 수면 밑에서 실제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외국인이 전혀 모르고 활보할 수 있는 곳이다. 폭탄 공격이 상징하는 것은 태국 정국이 넘어서는 안 될 선을 이제 넘었다는 것이다.

 여행 중 나는 항상 같은 질문을 했다. “내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단 한 명도 “내전 가능성은 없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없어서 나는 놀랐다. 가능성이 꽤 높다는 사람까지 있었다. 물론 물리적 충돌을 진짜로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이미 사람들은 지연·혈연 차이로 분열됐다. 이미 서로 혐오하고 있으며 점점 더 폭력적이 돼가고 있다. 프로파간다 같은 TV 뉴스까지 증오를 부추기고 있다. 최악의 상황이 아직 안 왔다는 느낌이 든다.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서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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