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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국가미래전략기구가 성공하려면

오세정
서울대 교수·물리학
요즘 국가의 미래를 예측하고 장기 비전을 논의할 국가미래전략기구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가 지난 4일 국회본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주요 국가정책을 논의할 초당적 국가미래전략기구를 국회 내에 설치하자고 제안했고, 17일에는 여야 중진 의원들이 만나 통일헌법을 비롯한 국가적 어젠다를 다룰 초당적 협의기구 설치를 추진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또한 25일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직속으로 통일준비위원회를 발족시키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움직임은 매우 바람직하며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국가의 부채는 증가하고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상황에서 오늘의 정책이 후일 차세대의 부담으로 돌아올 가능성도 많으므로, 통일을 비롯한 국가의 장기적 미래를 예측하고 그 맥락에서 오늘의 정책을 살펴보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공식적인 국가미래전략기구는 노태우 대통령이 대통령 자문기구로 발족시킨 ‘21세기위원회’다. 한국의 21세기를 전망하며 국가의 장기정책을 논의한다는 취지로 만든 ‘21세기위원회’는 1989년 시작해 1994년까지 5년 동안 활동하면서 미래연구를 활성화시켰고 정부의 한 부처가 다룰 수 없는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루려고 노력했다. 필자도 위원의 한 명으로 참여했지만, 이 위원회 특징 중의 하나는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해 위원의 1/4을 과학기술분야 전문가로 위촉했다는 점이다. ‘21세기위원회’는 그 후 ‘정책기획위원회’ ‘미래기획위원회’ 등으로 변신했고, 대통령이 바뀌어 가면서 정부가 중점 추진하는 장기과제는 세계화, 정보화, 벤처기업육성, 복지증진, 녹색성장 등으로 변해갔다. 다만 이 과정에서 미래의 환경예측도 특정한 면을 과도하게 부각시키는 부작용이 일어났으며, 뒤의 정부는 앞 정부 정책을 차별화라는 명목으로 무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역사에서 보듯이 국가의 장기비전 연구는 정권이나 정부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물론 정권마다 중점 추진하고자 하는 과제는 다를 수 있으나, 미래 전망이나 환경변화 예측, 그리고 그에 따른 국가의 대응전략 등은 정권과 관계없이 객관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미래전략기구를 국회 내에 두고 초당적으로 운영하자는 의견이 나온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16~18대(2001~2009년)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미래전략 특별위원회’가 설치된 일이 있다. 그러나 이 위원회는 법안이나 예산을 심의할 권한이 없어서 커다란 성과 없이 종료되었다. 이 예는 국회 내에 초당적인 기구를 설치하더라도 이 기구에 실질적인 권한을 주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반면 이 기구가 실질적인 권한을 갖게 되면 여야의 극한대립이 잦은 우리나라의 풍토상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영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남게 된다.

 결국 가장 합리적인 방안은 민간기구로 설치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미국의 경우도 헤리티지 재단이나 브루킹스 연구소,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등 유수한 싱크탱크는 모두 민간기구이고, 유럽의 채텀 하우스,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 등도 정부로부터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민간기구의 장점은 장기적인 전망과 플랜을 할 수 있으며, 정권에 관계없이 일관성 있는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경쟁하는 민간연구기관이 여럿 있기 때문에 다양한 시각에서 다양한 시나리오를 제시할 수 있다. 미래는 원천적으로 불확실하므로 여러 가능성을 놓고 모두 대비하는 것이 정석이고 다양한 시각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행정부에 소속되건 국회에 소속되건 ‘국가미래전략기구’라고 이름 붙으면 한 방향으로 몰고 가기 쉽다.

 다만 우리나라는 민간기구의 역사가 일천(日淺)하고 대부분 재정상태가 튼튼하지 못해 국가적 싱크탱크의 역할을 하기에는 힘이 부친 면이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 알맞은 모델은 대학이 싱크탱크의 역할을 맡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나라의 우수한 연구중심대학에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으며 이들을 활용하면 국가의 미래전략을 세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마도 정문술씨가 KAIST 미래전략대학원에 사재 215억원을 기증한 것은 그러한 뜻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렇게 대학이 싱크탱크의 역할을 하게 되면 민간기구로서의 장점을 충분히 살리고 여러 다양한 시각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여기서 축적된 기초자료는 국가미래전략기구가 설립되더라도 그 활동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대학들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인적·물적으로 적극 동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오세정 서울대 교수·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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