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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w York Times] 우크라이나에서 한계 드러낸 푸틴의 권력게임

로스 다우섯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도 정치 권력이 올림픽을 훼손하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게임의 승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었다. 푸틴의 군대는 이웃국가 조지아(러시아명 그루지야)에 결정적 타격을 가했다. 조지아는 서방 세계가 개입해줄 것이라는 치명적인 과대 평가를 했었다. 전쟁 규모는 작았지만 메시지는 명확했다. 러시아는 오랜 쇠퇴 속에서도 권력욕이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았고, 이를 충족시킬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에는 러시아 소치에서 올림픽이 한창일 때 또 다른 국가에서 분쟁이 발생했다. 러시아의 전통적 영향권에 있는 우크라이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유혈 사태는 이전과 조금 다르다. 러시아가 가진 영향력에 한계가 있고, 서구 민주주의에 대항할 문명의 모델을 제시하겠다던 푸틴의 주장에는 설득력이 없다는 사실이 명확히 드러났다. 푸틴이 서구와 라이벌 관계를 구축하고 싶어한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러시아가 서구의 반동적 자본주의와 싸우는 혁명 국가 이미지를 구축하려 했던 한 세기가 흘러간 후 전직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이던 푸틴은 제정 러시아 시절 이데올로기로의 복귀를 꾀했다. 서구 자유주의자에 맞선 전통적 보수 세력의 버팀목으로서의 역할 말이다.



  러시아의 이런 역주행은 2001년 9·11 미국 테러 이후 보이기 시작했지만 최근 푸틴의 국내 정치 술수를 보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반정부 퍼포먼스를 벌인 여성 록그룹 ‘푸시 라이엇’에 대한 신성모독법 적용 재판이나 동성애자 탄압 등은 대표적이다.



 푸틴의 수사는 단순히 자국 국민만 겨냥한 것이 아니다. 개발도상국에도 전파되고 있다. 영국 잡지 ‘스펙테이터’의 오언 매슈스는 푸틴이 자유주의적 가치를 싫어하는 모든 보수 세력의 잠재적 지도자로 자처하면서 국제 이데올로기 동맹을 구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푸틴의 대전략은 제정 러시아나 소련 시대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제정 러시아의 차르 체제는 ‘신성 동맹’을 통해 19세기 당시 다수의 유럽 사회를 통치하면서 뿌리 깊게 남아있던 절대왕정 체제(앙시앵 레짐)를 지키려 했다. 그러나 공산주의로 경제가 피폐해진 뒤에는 신흥 재벌과 사기꾼이 활개를 치는 지금의 러시아가, 동맹이 될 수 있는 수많은 개도국과 가진 유일한 공통점은 민주주의에 대한 경멸뿐이다. 적어도 로마노프 시대에는 신권으로 왕권을 정당화시키는 왕권신수설이 정치적 정통성을 부여해줬다. 그러나 지금의 푸틴에게는 자신의 권위를 정당화해줄 그런 이데올로기가 없다. 푸틴을 추종하는 중앙아시아와 시리아의 독재자에게는 왕가의 신비가 없다.



 역사의 전위대가 되겠다던 소련은 중남미와 아시아·아프리카에서 동맹을 얻었고, 서구 자유주의 지식인 사이에서도 추종자를 만들었다. 그러나 소련과 달리 푸틴을 위한 ‘제5열(Fifth Column·적국에서 교란이나 스파이 활동을 하는 집단)’은 서구사회에 발을 붙이지 못했다. 미국에선 소수의 우파가 푸틴의 복고적 수사를 찬양하긴 했지만 말 그대로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푸틴의 기회주의적 ‘가족의 가치’와 이를 위한 십자군 전쟁에 기꺼이 이용당할 멍청이는 아직 미국에 없다.



 물론 푸틴의 정치적 행보가 모두 어리석지는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푸틴은 유럽이나 미국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파워 게임을 할 때가 더 많다. 그러나 러시아 힘의 약화, 부패한 정부와 매력 없는 전통주의의 가치는 푸틴의 원대한 야망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이를 확연히 보여준다. 유럽연합(EU)은 우크라이나를 뺏기지 않으려는 러시아의 집념을 간과한 채 우크라이나 정부에 협정을 제안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러나 푸틴은 제정 러시아나 소련이 손쉽게 장악했던 우크라이나에서 EU가 허점을 보였는데도 여전히 고전하고 있다. 더구나 푸틴의 상대는 경제위기로 제도의 취약성을 고스란히 드러낸 EU가 아닌가. 다수의 EU 회원국이 경제 위기에 빠졌는데도 우크라이나 국민 대다수는 러시아 품으로 달려가지 않았다. 부작용 많은 EU의 제도가 푸틴의 권위주의보다 매력적이라는 증거다.



 푸틴주의가 봉착한 난관을 그대로 재현하는 국가는 지구 반대편에도 있다. 베네수엘라다. 우고 차베스가 ‘볼리바리아 혁명’을 위해 실험적 체제를 도입한 이후 베네수엘라는 우크라이나와 비슷한 소요 사태에 빠져들고 있다. 푸틴이 전통주의를 내세운 것처럼 차베스 또한 신사회주의를 내세워 미국 위주의 세계질서에 도전했다.(적어도 미국 내 차베스 지지자는 푸틴 지지자보다 많다.) 그러나 푸틴주의와 마찬가지로 차베스주의 또한 폭력과 폭압 없이는 기본적 정당성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자유주의 문명이 절대적 추앙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기 위해 두 사례를 언급한 건 아니다. 냉전 종식 후 25년이나 지난 지금도 우크라이나와 베네수엘라에는 그럴듯한 대안이 없는 점은 곱씹을 만하다.



로스 다우섯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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