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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수습정치는 끝나고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필자가 가끔 택시기사에게서 듣는 농담이 있다. “어, 한국말 잘하시네요!” 필리핀이나 캄보디아쯤에서 온 바이어가 훌륭한 한국말을 구사한 것으로 오해한 모양이다. 사실 그건 오해가 아닐지 모른다. 나의 족보가 시작된 16세기 이전 수천 년 동안 한반도 인종사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추측컨대 아시아 최고의 영토인 한반도를 향해 남하한 인종들이 산과 들에서 활발하게 뒤섞였을 것이다. 고고인류학자들은 비과학적이라고 이의를 제기하겠지만 나의 지론이 의심스럽다면 몽골 울란바토르에 있는 인종박물관을 가보면 안다. 50여 종의 밀랍인형이 그리 친근할 수가 없다. 모두 서울에서 본 사람들이다.



 다윈 식으로 말하면, 잡종강세라는 뜻이다. 이종교배에서 적응력, 창의력은 물론 열정과 오기가 강한 DNA가 나온다는 사실은 상식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작은 국가에서 저렇게 재능 있는 선수들이 줄기차게 출현하는 것을 설명할 길이 없다. 한반도가 다인종 국가라고 한다면 단일민족을 외쳤던 신채호 선생이 호통을 치실 일이다. 그런데 국난 극복을 위해 만들어진 신화가 ‘민족’이기에 인류학적 ‘인종’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겨울올림픽은 선진국의 잔치다. 소치 겨울올림픽에 참가한 82개국이 대체로 온대(溫帶)와 한대(寒帶)에 위치한 국가로 세계의 GNP 중 70% 이상을 생산한다. 여기서 10위권을 다투는 실력을 뽐내고 있으니 이를 어떻게 설명하랴.



 세계를 숨죽이게 한 김연아의 우아한 동작은 얼떨결에 금메달을 딴 러시아 소트니코바의 체조 연기와는 격이 다르다. 삶을 휘감는 소매 깃의 부드러운 감동이 그냥 한국적이다. 빙속여제 이상화는 초원을 질주하는 칭기즈칸의 선발대를 닮았다. 경쟁자를 주눅 들게 하는 매서운 눈초리와 단단한 체격은 몽골 DNA이고, 훤칠한 키에 야무진 얼굴을 한 역전의 용사 심석희는 영락없는 북방여인, 박승희는 서글서글한 남방여인이다. 이승훈·주형준·김철민의 팀추월은 형질이 다른 부족의 대합주극이었다. 마치 경쟁팀 네덜란드 선수들이 각양각색인 것처럼 말이다.



 팀추월 결승전은 말하자면, 다인종국가의 대결이었다. 유럽의 드문 평야지대에 켈트, 게르만, 고르, 아리안족이 골고루 분포해 살아 온 네덜란드는 영국과 스페인의 식민지배를 받기도 했다. 그런 네덜란드를 강대국으로 만든 것은 개방정신, 우수한 문물의 수용능력, 그리고 그것을 자기화하는 융합마인드였다. 그 결과 스피노자, 렘브란트, 고흐 같은 철학자·예술가가 탄생했으며, 최고의 금융·물류 중심지로 우뚝 섰다. 겨울에 바닷물이 얼면 200㎞에 달하는 수로(水路)에서 온 국민이 빙속 선수가 되는 나라를 상대로 열띤 추격전을 벌였으니 한국혼에 숨겨진 DNA 말고 달리 뭐라 말할 길이 없다.



 우리의 깊은 영혼 속에 우리도 잘 모르는 재능과 자질, 그 유별난 능력이 꿈틀대고 있음을 느낀다. 가난했던 시절에는 인지하지 못했던 그 엄청난 DNA를 증폭하는 노즐을 만들기만 한다면 한국이 G5로 도약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지난 21일 세종대 명예박사 학위 수여식에서 강조한 게 이 점이다. ‘바람 잘 날 없던 네덜란드가 관용과 개방을 통해 유럽의 인재와 자본을 끌어들여 유럽의 강소국이 됐다. 우리도 매력국가가 될 충분한 소질이 잠재해 있다. 그것을 깨워라’. 소치에서 우리는 그 가능성을 목격했다. 네덜란드는 이질성과 고난의 역사를 통해 통합의 길을 찾았고, 활력과 잠재력을 결집하는 제도를 갖췄다. 그것이 한국과 다를 뿐이다.



 오늘로 박근혜 정권이 출범한 지 꼭 일 년이 됐다. 지지율 60%라면 학점으론 A- 정도인데 과연 그럴까. 높은 지지율은 혹시 툭하면 장외로 나가는 민주당의 막무가내 행동에서 나온 반대급부 아닐까. 초기의 높은 기대감을 아직은 접고 싶지 않은 마음의 관성, 조금 더 관망해 보자는 인류학적 아량 덕분은 아닐까. 그러나 정치학적으로는 인색한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집권여당의 무기력증, 야당의 끝장 투쟁에 훼손된 통치력, 초라한 초기 성과, 이념에 찢긴 시민사회, 존재감 없는 청와대, 이런 부정적 리스트를 들이댄다면 인색하다고 불평할지 모른다. 인색한 게 결코 아니다. 정치란 꿈틀거리는 잠재력을 깨우는 것, 국민적 능력을 증폭할 노즐을 만드는 것, 그리하여 ‘이질성의 다양화’가 한국의 진정한 활력이 되게 제도적 환경을 정비하는 것일진대, ‘손톱 밑의 가시 뽑기’는 소소한 예행연습이라 치고 미래대응적 ‘통 큰 정치’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이제 수습정치는 끝나고 본격정치가 시작됐다. 소치의 한국선수들처럼 모든 국민이 마음껏 질주할 든든한 후원의 정치를 보여달라.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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