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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만나지 못해 눈물 흘린 만큼 만나서 더 쓰라린 '작별상봉' …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채인택
논설위원
그날 남포 아주머니는 너무도 해맑게 웃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무렵의 일이다. 한복집을 하던 아주머니는 70년대 미국에 이민 간 외아들 내외가 초청하자 비행기에 올랐다. 그러곤 몇 년이 지나 갑자기 한국을 다시 찾았다. 한동네에 살며 ‘오마니’라 부르며 따랐던 내 외할머니를 만난 그분은 주변을 물리쳤다. 그러곤 밤새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다 떠났다.



 몇 달 뒤 외할머니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아주머니가 북한에 들어가 진짜 ‘오마니’를 만났다는 것이다. 한국에선 ‘북’이라는 말만 나와도 온몸이 오그라들 때다. 하지만 미국 사람이 되면 그곳에 갈 수 있었다. 그래서 벌이가 쏠쏠하던 한복집도, 정든 이웃도 뒤로한 채 낯선 땅으로 “오마니 보고 싶어 눈 질끈 감고” 떠났다고 한다. 그만큼 절실하고 그리웠던 것이다. 게다가 아주머니는 그 뒤에도 가족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여비를 모아 다시 찾을 날만 고대한다고 했단다.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야 지금 금강산에서 벌어지는 이산가족 만남과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상봉 이후 ‘애프터서비스’는 하늘과 땅만큼 달라 보인다. 남포 아주머니는 금단의 ‘개별 상봉’을 하면서 가족과 인연의 끈을 다시 이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정부가 하는 ‘금강산 상봉’은 만나고 헤어지면 그뿐, 가족을 다시 연결하는 데는 관심이 적어 보인다. 1박2일간 상봉과 식사→개별 상봉→작별 상봉을 거치면서 11시간 동안 얼굴만 볼 뿐이다. 꾀를 부려 몰래 연락한다면 몰라도 말이다. 로또 당첨의 확률로 상봉단에 포함돼 가족을 재회해도 다시 연락할 길이 없다는 뜨악한 현실은 심각한 인권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것만도 큰 특혜인 줄 알아라’라는 것이라면 이건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작별 상봉’은 또 무슨 해괴한 형용 모순의 용어인가. 특히 60년간 헤어졌던 이산가족에게 ‘작별’이 갖는 엄청난 폭력성은 헤아리지 못한 것일까. 더구나 이들의 상봉은 다시 만날 기약은커녕 희망조차 포기하게 한다. 지금 같은 시스템이라면 다시 상봉단에 포함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만큼 잔혹한 만남이 또 있을까. 전 세계의 동정을 받는 팔레스타인 난민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다시 만난 가족 사이엔 모르고 살았다면 더 좋았을 것을 새삼 알게 됐기 때문에 더욱 가슴 아픈 일도 많을 것이다. 그러기에 만나지 못해서 흘린 눈물만큼 만나는 바람에 겪게 된 쓰라림도 많을 수밖에 없다. 계속 만날 수 있으면 풀릴 일이 일회성 만남으로 끝나는 바람에 더욱 꼬이는 것은 아닐까. 이제는 단순 만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산가족 간 인연의 끈을 어떻게든 잇게 해야 한다. 남과 북이 함께 그들의 눈물을 닦아줄 때다.



글=채인택 논설위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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