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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이상한 역차별 색안경


방산업체인 A기업은 가만히 앉아서 매일 2500만원씩을 허공에 날리고 있다. 납기일을 맞추지 못해서 내는 보상금인 지체상금 때문이다. 업체 관계자는 “해외 업체와 분쟁이 생기고 발주처와 이견이 해소되지 않아 납기가 계속 늦어지면서 지체상금도 무한대로 늘어나고 있다”며 “이대로 가면 배(수주액)보다 배꼽(지체상금)이 커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체상금으로 기업이 골치를 앓고 있다. 정부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100대 과제 중 하나로 대한상공회의소가 선정했을 정도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은 공공 계약에서 납기일을 지키지 못하면 지체상금을 물린다. 계약을 지키지 못했으니 보상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문제는 국제적으로 10% 상한선이 있는데 한국에서만 한도가 없다는 점이다. 국내에서도 국산화가 안 된 제품을 납품하게 되는 외국 기업에 대해선 상한선(10%)을 두고 있다. 결국 한국 정부가 한국 기업만 역차별하고 있는 셈이다. “상한이 없으면 기업들이 납기를 나 몰라라 하는 ‘도덕적 해이’가 생길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한마디로 ‘못 믿어’ 규제다.


 기업들은 발끈한다. 지체상금 문제로 소송 중인 한 기업의 고위 임원은 “납기 지연은 기업 신인도를 갉아먹는 일인데 어떤 기업이 고의로 납기를 안 지키겠느냐”며 “공공 공사는 남는 게 거의 없기 때문에 매출(수주액)을 기준으로 부과되는 지체상금을 5%만 내도 적자”라고 말했다. 수백 일씩 납기가 미뤄질 때는 업체도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다는 얘기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해상초계기(P-3CK) 개량사업이 대표적이다. 이 사업의 계약기간은 2005년 4월~2010년 6월이었다. 초계기를 개량할 기술력이 없었던 KAI는 미국 업체에 납품 및 기술 이전 계약을 맺었다. 총 4900억원짜리 사업이었지만 KAI 몫은 1900억원이고 나머지 3000억원은 미국 업체에 갔다. 그런데 미국 업체는 이라크 전쟁 수요 등 이런저런 이유로 납품을 지연했다. 결국 8대 중 1호기를 기준으로 500여 일 이상 납품이 늦어졌다. 결국 덤터기는 KAI가 썼다. KAI는 1200억원의 지체상금을 부과받았다. 전체 수주액을 기준으로 하면 25%에 달한다. 실제 KAI 몫만으로 따지면 63%를 보상금으로 낸 것이다. 중소기업이었으면 도산할 수준이다. 결국 KAI는 소송을 냈고, 법원은 350억원으로 지체상금을 감액했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 사업의 경우 정부가 시행일을 먼저 정해놓고 입찰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 경우 토지 보상 지연, 발주처의 승인 지연, 하청업체가 부도까지도 모두 계약 업체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이 기가 찬 이유는 또 있다. 기업이 소송을 하면 법원이 수주액의 10~20% 선으로 지체상금을 깎아주는 것이다. 법에 반영해도 될 정도로 판례가 확립됐다는 얘기다. 옛 대우중공업의 경우 178억4000만원(수주액의 37.8%)의 지체상금을 부과받고 소송에서 절반 수준(15%)으로 감액됐다. 한진중공업에 합병된 옛 코리아타코마조선도 14억3000만원(수주액의 72.6%)이던 지체상금이 법원에서 3억9000만원으로 낮아졌다. 최근 법원 판례도 마찬가지다. 전동차를 공급하는 현대로템은 2009~2010년 KTX산천 100량을 공급하고, 수주액의 24.4%에 달하는 800억원을 지체상금으로 냈다. 그러나 최근 1심 소송에서 법원은 600억원대로 지체상금을 낮췄다. 이경상 대한상의 경제연구실장은 “미국 등 선진국이 대부분 10%로 한도가 있고, 한국 조달청도 외국 업체에 10% 한도를 적용한다”며 “공공부문의 납품 관행을 정상화하기 위해선 지체상금의 한도를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영훈 기자

◆지체상금=납품업자나 채무자가 계약기간 내에 계약상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을 때 내는 보상금 성격의 돈. 미리 정한 비율에 납기가 지연된 날짜를 곱해서 산출한다. 공공계약에선 납품하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종류에 따라 수주액의 0.1~0.5%의 지체상금률(1일 기준)을 적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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