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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타이태닉 침몰 첫 타전 … 세계인의 신문

한 나라의 역사를 빠짐없이 채록하는 ‘기록의 신문’, 활자가 많다는 뜻의 ‘회색 숙녀’, 뉴스 가치 판단의 방향타가 되는 ‘인쇄할 만한 모든 뉴스’. 미국 뉴욕타임스(NYT)를 설명하는 문구는 많다. 여러 수사 중 NYT를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은 이것이다. “우린 기자이기 때문에 초조하다. 동원 가능한 모든 기술을 이용해 뉴스를 가능한 가장 빨리 모으고 싶어 한다. 이야기가 된다는 확신이 서면, 모든 수단을 통해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이를 즉시 퍼뜨리고 싶어 한다. 인터넷이 우리를 이렇게 만든 것이 아니다. 우린 늘 이랬다.”



163년 전통 NYT의 저력
'가장 객관적인 전쟁 보도'
1918년 첫 퓰리처상 받아
온라인 등 끝없는 기술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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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YT 홈페이지에 있는 이 말은 저널리즘을 지탱하는 본질이기도 하다. 1912년 4월 14일 텔렉스를 통해 타전된 타이태닉호 침몰 소식을 전할 때와 요즘 인터넷으로 뉴스를 전송할 때의 마음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NYT가 163년간 부인하기 힘든 명성을 축적한 비결은 간단하다. 빠르고 정확하게 그리고 공정하게 뉴스를 만드는 것이다. NYT는 그런 기사를 하루 평균 894건 작성하며 세상을 기록한다.



 명성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1851년 9월 18일 지역지인 뉴욕데일리타임스가 NYT의 모태다. 이 신문은 선정주의 배제, 절제되고 객관적인 시각을 담은 신문을 표방했다. 공화당 지지 매체였지만 1884년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 지지를 선언하며 변신을 예고했다. 이후 줄곧 자유주의와 진보적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1857년 제호에서 ‘데일리’를 떼 오늘의 이름이 됐다.



 뉴욕타임스는 식자층의 호응을 얻었지만 선정적 보도를 하는 대중지와 경쟁하면서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는다. 결국 1896년 아돌프 사이먼 옥스가 인수하게 된다. 하루에 일어난 모든 뉴스를 지면에 담고 국제뉴스에 힘을 싣는 등 NYT 기본 제작 틀은 이때 만들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뉴스와 오피니언의 분리, 객관적 시각으로 기사 쓰기 등을 장려했다. 일요판도 이때 만들어졌다. ‘인쇄할 만한 모든 뉴스’라는 표어 역시 이 시절 만들어진 것이다. 당시 미국 신문업계를 주도하던 조셉 퓰리처와 랜돌프 허스트의 옐로 저널리즘을 향해 날리는 잽이었다고 한다. 그런 NYT의 신문 제작방식이나 기자 윤리준칙 등은 미국은 물론 세계 언론에 영향을 미쳤다.



 타이태닉호 침몰 보도는 뉴욕타임스를 국제지의 반열에 올려놓는 전환점이었다. 1912년 당시 가능한 모든 기술과 생존자 추적으로 보도에 총력을 다했다. 후일 과장됐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속보와 생존자 증언으로 재구성된 생생한 현장 전달은 지금까지도 널리 활용되는 기사 작성기법이다. 제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보도의 신뢰도는 더욱 공고해졌다. NYT는 1918년 ‘전쟁에 대한 가장 객관적이고 정확한 보도’로 첫 퓰리처상을 탄 이래 지난해까지 112개의 퓰리처상을 받았다. 2002년엔 14개 부문 중 7개 부문을 휩쓰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고 지난해에도 4개 부문에서 수상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뉴욕 지역지인 동시에 세계인이 보는 국제지라는 점은 NYT의 가장 큰 강점이다. 세계 65개국에 지부를 두고 신문을 인쇄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곳곳에 NYT 독자층이 확보돼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1946년 국제판을 찍기 시작했고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을 인수하면서 이 신문을 NYT 국제판으로 활용해 왔다. 지난해 IHT의 제호를 INYT로 바꿨다.



 NYT는 뉴스 제작에 적극적으로 기술을 실험해 왔다. 70년대엔 위성을 이용해 미국 지역판을 인쇄했고 96년엔 온라인으로 뉴스를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2006년 온라인판을 신문 형태로 내려받을 수 있도록 제작한 전자판을 선보이기도 했다. 최근엔 기사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동영상을 서비스하는 등 미디어 환경 변화에 맞춘 실험을 하고 있다.



 미국 내 영향력도 부동의 1위다. 주요 보도 중 ‘펜타곤 문서’ 특종은 저널리즘의 역사에 남는 보도로 꼽힌다. 71년 NYT는 미국 정부가 베트남전쟁에 개입해 온 역사를 담은 1급 기밀문서를 입수해 보도했다. 이 문서엔 미국의 베트남전쟁 개입 명분을 제공한 ‘통킹만 사건’이 미국 측 조작이었다는 사실 등이 기술돼 있었다. NYT가 이를 폭로하자 미국 사회는 충격에 빠졌고 미국 내 반전운동은 확산됐다. 닉슨 정부는 NYT를 국가 기밀 누설 혐의로 제소했지만 대법원은 “미국 헌법이 언론 자유를 보장한 것은 정부의 비밀을 파헤쳐 알리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판결로 언론의 손을 들어 줬다.



전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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