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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기구, 정권·정부서 자유롭게 국회에 두고 장기 과제만 맡겨야

‘포대갈이’란 말이 있다. 농산물의 내용은 같은데 겉포장만 바꾸어 시장에 내놓는 수법을 말한다. 정책에도 포대갈이가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 정부의 입맛에 맞는 정책을 내놓으라니, 일부 공무원이 기존 아이디어를 포장만 바꾸어 내놓는 방법을 말한다. 오죽했으면 이런 말이 나왔을까 하는 답답한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부터 ‘창조경제’가 정부의 중요 정책기조가 되어 있다. 정부의 모든 사업은 창조경제로 시작한다. 대통령이 국내외에서 연설을 하든지 외국인을 만나도 창조경제를 역설한다. 맞는 말이다. 상상-도전-창업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창조 정신을 활성화해 새로운 기업을 일으키고 일자리를 늘려서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선진국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뤄야 할 창조경제를 세우자는 의식이 국민들 사이에서 좀처럼 달아오르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 답은 5년 전 신문에 나와 있다. 당시엔 ‘녹색성장’이 대세였다. 정부의 모든 사업은 녹색성장으로 통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국제회의에서 녹색 성장 깃발을 들어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곳에도 녹색성장이란 단어를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새로운 사업을 제안할 때도 녹색성장이란 단어를 피해야 한다. 우리 인류가 지구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산업전략인데도 말이다.

 이뿐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엔 ‘혁신’이 대세였다. 모든 사업에는 혁신이란 단어를 붙였다. 그래야 예산이 잘 나왔다. 이것 역시 정권이 바뀌자 저주받은 단어로 둔갑해 금기시되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도 ‘벤처창업’이 살 길이라 목소리를 높였지만 대통령이 바뀌자 벤처의 부작용을 부각시켜 몹쓸 단어로 만들어 버렸다.

 5년마다 정권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공무원들은 꾀가 늘었다. 어차피 5년이다. 기존 정책을 적절히 입맛에 맞게 바꾸어 보고한다. 이것을 공직사회판 ‘포대갈이’라 부른다고 한다. 정부 정책이 ‘갈지 자(之)’로 가는 셈이다. 일관성이 없다. 나라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 이러한 일을 언제까지 하고 있을 것인가.

 이런 세태에 한숨 쉬며 의병처럼 나선 이가 있다. 정문술 전 KAIST 이사장이다. “국가미래전략 연구의 씨앗으로 쓰라”며 최근에 215억원의 사재를 KAIST 미래전략대학원에 내놓았다. 이에 호응이라도 하듯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가 이달 초 국회에 미래전략기구의 신설을 제안했다. 하긴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미래전략센터를 설치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는 만큼 예견된 일이긴 하다.

 미래전략기구가 성공하기 위해선 정치권이나 정부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정부의 영향권 내에 있으면 정부가 원하는 단기 예측과 정책만 제공하게 된다. 정부 출연 연구원들이 바로 그런 예다. 내가 만든 조직이 다음 정부에서도 지속되길 원한다면 충분한 의견 수렴 뒤 법률로 보장받아 만들어져야 한다. 지금은 흔적도 없어져버린 앞 정권들의 세계화위원회·새천년위원회·미래기획위원회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

 또 하나의 방법은 미래기구가 정치의 한복판에 들어가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다. 황우여 대표가 제안한 것처럼 국회 내에 미래전략기구를 두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에도 조건이 있다. 국회 미래전략기구는 10년 이상 장기 과제만 다루어야 한다. 단기 과제를 다루면 좋은 결론을 낼 수 없다. 가끔 대통령제 개선을 위한 헌법 개정안이 거론되다 중단되는 것을 본다. 이해관계 때문이다. 그러나 20년 뒤에 시행할 정책 방향을 만든다고 해보자. 갑자기 자유로워진다. 난제로 꼽혀온 지방행정구조 개편 논의도 마찬가지다. 20년 뒤의 일은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정확히 이해관계를 따질 수 없고 상대적으로 초연한 자세로 타협할 수 있다.

 여당 대표가 미래전략기구를 제안했다는 뉴스를 듣는 순간 두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첫째는 희망이다. 이제 국가의 갈지 자(之) 행보가 줄어들 수 있겠구나 하는 바람이다. 둘째는 좌절이다. 여당 대표가 제안했으니 야당이 반대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방정맞은 학습효과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오죽했으면 민간인이 일생 동안 모은 피맺힌 돈을 내놓으며 국가미래전략 연구 활성화를 요청했겠는가. 오는 19일 국회에서 창립식을 여는 ‘국회미래준비포럼’에서 미래전략기구 방안이 본격적으로 논의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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