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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살 전세, 월세에 밀려 수명 다하나

틀림없는 대한민국 국적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토종이다. 그러나 정확히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불확실하다. 전세(傳貰) 얘기다. 몸값이 치솟으면서 요즘 주택시장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퇴진 압박이 거세지고 있어 어느 때보다 설 자리가 좁아졌다. 전세 시대가 저무는 것일까. 집값의 일부를 보증금으로 맡기고 남의 집을 빌려 거주하는 전세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거주 형태다. 조선시대 말기에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참여정부가 2007년 펴낸 실록 부동산정책 40년에는 “1876년 병자수호조약(강화도조약)에 따른 3개 항구 개항과 일본인 거류지 조성, 농촌인구의 이동 등으로 서울의 인구가 늘어나면서 전세제도가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적혀 있다.

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문헌에서 전세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하는 건 1899년 4월 13일 황성신문 기사로 알려져 있다. 빚쟁이가 자기 집을 마음대로 전세 줬다고 고소한 내용이다. 전세가 널리 퍼진 것은 한국전쟁 이후다. 1949년 서울 27만 가구의 거주 형태가 자가 10만, 월세 10만, 전세 2만 등이었다. 그러다 62년 표본조사에서는 자가 54%, 전세 25%, 월세 6%로 전세가 월세를 압도했다. 처음으로 전세와 월세를 전수 조사한 7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선 서울 가구 중 전세가 38%, 월세가 14%였다. 서울의 전세 비중은 95년 44%까지 상승했다. 그 뒤 주택 보유가 늘면서 전세 비중이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30%를 넘으며 자가에 이어 두 번째다.

전세의 위세가 높아지면서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켰다. 90년 전셋값 파동으로 두 달 새 17명의 세입자가 잇따라 자살했고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이들을 기리는 ‘희생세입자합동추도식’이 열렸을 정도다. 97년 외환위기의 충격에서 벗어날 때도 전세가 난리였다. 99년부터 2002년까지 전국 전셋값이 66.4% 뛰었다. 연평균 10% 넘게 올랐다. 요즘의 전세난도 2010년부터 5년째 이어지고 있다. 전셋값과 집값의 관계는 ‘애증’으로 표현할 수 있다. 과거 전세는 집값을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전세가 있는 집을 사면 보증금을 제외하고 돈이 적게 들기 때문에 전세는 주택구입 비용을 줄여줬다. 그만큼 투자비용이 적어 수익률은 높을 수밖에 없었다.

세입자에게도 전세는 내집 마련의 효자였다. 세입자들은 목돈을 집 주인에게 보증금으로 맡기고 전셋집에서 주거를 해결하면서 저축해 주택 구입 자금을 마련했다. 전셋값은 집값과 어깨동무를 하고 서로 밀어주고 당겨줬다. 전셋값이 66.4% 오른 99~2002년 전국 집값은 38.9% 상승했다. 그런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이들 사이가 틀어졌다. 집값은 내리막길을 가는데도 전셋값은 줄곧 오르막길을 올라갔다. 전에는 집을 구입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전세를 살았으나 이제는 집을 마련할 생각이 없어서 전세 세입자가 됐다. 그러다 보니 교환가치(집값)는 떨어지는데도 사용가치(전셋값)는 올라가는 현상이 생겼다.

금융위기를 지나면서 전세는 급상승한 몸값과 달리 위상이 많이 흔들리고 있다. 월세의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전세 물건이 줄고 월세가 늘면서 전·월세 계약건수 중 전세 비율이 2011년 66.5%에서 지난해 60.5%로 낮아졌다. 정부의 인구·주택총조사와 주거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95년에 서울에서 세입자 거주 형태의 74.5%를 차지하던 전세가 2012년엔 55.9%로 줄었다. 서울연구원 박은철 연구원은 ‘렌트푸어 이슈에 따른 서울시 대응방안’ 보고서에서 내년 전세와 월세 비중이 역전될 가능성이 짙다고 전망했다.

월세 확산은 금융위기 이후 불확실한 집값 전망과 저금리 때문이다. 집 주인들은 떨어지는 집값에 대한 보상심리로 은행 금리보다 훨씬 높은 월세를 선호한다. 은행 금리는 연 3% 정도인데 월세 이자율은 8~9% 선이다. 특히 전셋값 상승분을 월세로 돌리는 ‘반전세’(보증부 월세)가 크게 늘었다. 서울에서 95년 셋집 네 가구 중 한 가구꼴이던 보증부 월세가 2012년엔 5가구 중 두 가구로 조사됐다.

전세는 세계 최고 수준의 부채를 안고 있는 가계와 금융회사에 뇌관이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앞으로 전셋값이 하락할 경우 집주인은 내린 금액을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해서다. 여윳돈이 없는 집주인이 환급하지 못할 경우 그 파장은 집 주인에게 담보대출을, 세입자에게는 전세자금 대출을 해준 금융회사에까지 미친다. 이 때문에 전세를 월세로 유도해 전셋값 하락 충격파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렇더라도 120년이 넘은 전세의 생애가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전세는 세입자 입장에서 구입할 엄두를 내기 어려운 집을 보증금에 대한 은행이자라는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편리한 제도여서 전세 수요자들의 저항이 만만찮다. 집주인들도 이미 받아서 어딘가에 써버린 보증금을 돌려주고 월세로 바꿀 만한 여유가 없다. 금융위기 이후 전셋값과 집값이 서로 엇갈린 길을 걸어왔지만 머지않아 다시 만날 것 같다. 전셋값이 더욱 뛰면 전세를 포기하고 매매로 돌아서는 수요가 늘면서 매매가격을 밀어줄 것이다. 앞으로 전세가 어떻게 움직일지 전세 수요자는 물론 매매 수요자도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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