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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컨설팅그룹이 들려주는 ‘경영의 한 수’] 벼랑 끝 한국 해운업, 미국 자동차 구조조정 배워라

가장 최근에 일어난, 가장 성공적인 산업구조개혁 사례를 꼽는다면 단연 미국 자동차산업 구조조정일 것이다. 2009년 미 자동차 ‘빅 3’ 중 크라이슬러와 제너럴모터스(GM)가 파산보호를 신청하자 미 정부는 고민 끝에 각각 66억 달러, 576억 달러의 공적자금을 쏟아붓는 대신 고강도 산업구조개혁을 추진했다. 정리해고, 퇴직자 의료보험 지급 제도 폐지, 경영진 보너스 지급 제한, 생산플랜트 조정, 일부 브랜드 청산 혹은 매각, 배당금 지급 중단, 광고비 축소 등이 포함됐다. 개별 기업은 물론 관련업계, 노조, 퇴직자 등 수많은 이해관계자의 희생을 요구했다. 이 같은 과정이 얼마나 혹독했는지 크라이슬러 생산직 근로자는 한 TV 인터뷰에서 “목숨을 건지기 위해 팔을 자르는 것과 같았다”고 표현했다.

기간산업 구조개혁엔 정책 리더십 필수
미국 자동차산업은 위기에서 탈출해 다시 질주를 시작하고 있다. 개별 자동차 회사와 업계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했을 회생이다. 장기간 실적 부진, 주가 폭락, 유동성 위기에 시달린 자동차업체가 자력으로 금융권에서 대규모 자금을 수혈받을 수는 없었다. 고통스러운 구조조정도 어려웠을 가능성이 크다. 수많은 이해관계자의 희생을 요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권위 있는 중재자, 강력한 리더십이 필수적이다. 미국 정부가 이런 역할을 한 것이다. 물론 규모로 볼 때 우리나라 해운업과 미국 자동차산업을 맞비교하기는 어렵다. 미국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 가며 자동차산업 구조개편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수십만 명의 실직자가 생길 것으로 예상되는 등 국가 경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서다.

마찬가지로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2012년 기준 GDP 대비 수출 비중 57.4%)에서 해운업은 일종의 국가 기간산업이다. 수출입물량의 대부분이 해운을 통해 운송된다. 경쟁력 있는 자국 선사 없이는 운임 결정력도 행사할 수 없으며, 이는 수출업체의 경쟁력과도 직결된 문제다. 90년대 이후 동남아 및 중남미 국가들이 경제발전 과정에서 자국 선대를 확충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2009년 프랑스 CMA CGM이 채무지불유예를 선언했을 때 프랑스 정부가 1억5000만 달러를 지원하고, 중국 정부가 코스코(COSCO)에 108억 달러 규모의 지급보증을 약속한 것도 마찬가지다.

강력한 리더십과 더불어 산업구조개편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제휴 및 통합이다. 혼자 살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함께 생존법을 모색하는 전략이다.

‘손잡고 같이 살자’ 활발한 합병과 제휴
최근 독일 해운사 하팍로이드(Hapag-Lloyd)는 칠레 해운사 CSAV 와 정기선 부문 통합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둘의 합병으로 단숨에 약 100만TEU, 4위 초대형 해운사가 탄생한다.

합병으로 탄생하는 합작 해운사의 대주주는 하팍로이드가 아닌 CSAV다. CSAV는 지분 30%를 획득해 대주주 자격을 갖는 대신 컨테이너 사업 운영권을 내놓는 것을 선택했다. 합작사의 컨테이너 사업 장기적 발전을 위한 최적의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세계 6위의 하팍로이드지만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이 회사는 지난해 9월까지 5600만 유로(7635만 달러)의 누적 적자를 냈다. 금융위기 이후 불황을 헤쳐가기 위해 열심히 파트너를 찾았다. 두 회사 합병으로 연간 매출은 120억 달러 늘고, 비용은 3억 달러 줄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1위 해운사인 절대강자 머스크도 MSC(스위스), CMA CGM(프랑스)과 손잡고 ‘P3 네트워크’라는 이름의 제휴(alliance)를 추진하고 있다. 각기 업계 1, 2, 3위이고 자국 대표 해운사의 위상을 지니고 있지만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제휴가 필요했다. 항공사들의 동맹체 ‘스타 얼라이언스’가 공항시설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항공유를 공동 구매해 비용을 줄이고 수익을 개선하며 네트워크를 활용해 비즈니스를 확대하는 것과 비슷하다. 독점 논란 속에 P3 네트워크 출범에는 아직 변수가 있지만 업계 강자들이 시장의 구조적인 변화에 대처하는 방식은 분명하다. 합병 또는 제휴를 통해 시장지배력을 확대하고 경쟁력을 키우며 비용은 최소화하는 것이다.

5년 전부터 군살 뺀 글로벌 강자들
합병이나 제휴가 시너지를 내자면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이 필수적이다. 머스크는 지난 3분기 순이익 5억5400만 달러로 전년 동기에 비해 11.2%나 늘어난 기대 이상의 실적을 내놓아 주주들을 놀라게 했다. 비용을 줄인 덕분이었다. 이 기간 중 40피트 컨테이너당 단위 비용은 1년 전에 비해 13% 줄었고, 연료비도 17% 줄었다.

머스크의 비용 절감 노력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9년 머스크 경영진은 300척 이상의 선박에 대한 일일 비용 현황과 에너지 소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종합관리체계를 마련했다. 최고경영자(CEO) 직속 상시 관리 조직도 만들어 비용을 전사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유류비용을 줄이고 선박 포트폴리오를 최적화해 나갔다. 그 결과 2011~2013년 벙커유 비용을 15% 줄였다(가격 변동폭은 고려하지 않음). 재무구조도 개선됐다. 2012년 1분기 마이너스 14억 달러였던 잉여현금흐름(FCF·영업활동현금흐름에서 투자금액을 뺀 것)이 두 분기 만에 3억6800만 달러로 플러스로 돌아섰다.

이렇게 세계 선도 해운사는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부터 이미 수익성 개선을 위한 비용 절감과 조직 슬림화 등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반면에 한국 해운사는 ‘업황만 회복되면…’이라는 막연한 기대에 사로잡혔다. 그러다 3~5년 뒤처진 것이 사실이다. 뒤쫓으려면 신발끈을 바짝 묶어야 한다. 글로벌 선사 수준의 정교한 화주 운임 시스템을 만들어 영업수익을 높이는 게 시급하다. 연료 비용을 더 아끼는 것도 가능하다. 입찰, 연료 구매, 연료 소비의 세 가지 측면에서 누수를 찾아야 한다. 변화를 거부하지 않는 CEO와 조직원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원가경쟁력을 갖추려면 대형 선박을 싼값에 사야 한다. 그런데 국내 해운업계는 선박가격이 고점일 때 투자했고, 막상 선박가격이 떨어진 지금은 살 여력이 없다. 장기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구조다. 해외 사례에서 본 것처럼 개별 기업의 체질 개선 노력은 물론 전체 산업 개편 차원에서의 노력도 필수적이다. 해운사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서는 금융권 차원의 논의가 병행될 수밖에 없다. 또 국내 해운업계의 대외 경쟁력을 되찾기 위해 경쟁 관계 재편, 즉 다양한 수위의 연합제휴가 모색돼야 한다. ‘P3 네트워크’처럼 수익성 좋은 1만8000TEU급 대형 선박을 운용하려면 배를 채울 물량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는 개별 기업으로는 불가능하다. 프랑스나 중국에서 본 것과 같이 정책적 지원도 필수적이다. 단기 유동성 해결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산업의 장기 경쟁력을 갖추는 데 초점을 맞춘 정책적 지원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나만 살겠다’는 전략으로는 돌파구를 찾기 어려울 만큼 위기는 이미 깊다. 어느 순간 산업구조재편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한다면, 가장 앞서 변화를 추진한 기업이 주도권을 쥐었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글로벌 해운 강자들은 이미 세 가지 생존전략을 찾아 나섰고, 상당수는 실행에 이르렀다. 한국 해운업도 더 늦기 전에 용단을 내려야 할 때가 임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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