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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칼럼] 한화 사건이 남긴 트라우마

한화그룹의 악몽은 아직 계속되고 있는 듯하다.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횡령 등 혐의로 기소된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지난 11일 서울고법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지만 이 회사 임직원들은 좀처럼 굳은 표정을 풀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검찰 수사가 시작된 2010년 9월부터 3년5개월간 그룹 전체를 옥죄던 법망(法網)에서 일단 벗어나 안도의 한숨을 쉴 만도 한데 실상은 영 뜨뜻미지근하다. 김승연 회장의 이름 석자는 물론이고 피고인, 법원, 검찰, 재판, 수사 등의 법률 용어는 한화그룹 직원들에게 마치 진절머리가 나는 ‘금칙어’가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검찰이 서울고법의 선고 결과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할 가능성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말 한마디, 한마디가 검찰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표정관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김 회장의 선고 결과에 대한 검찰의 반응은 어떨까. 신중한 모습을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비록 집행유예가 같이 선고됐지만 유죄가 내려진 상황에서 검찰 수사의 정당성이 확보됐다고 주장할 수도 있는 것 같은데 속내는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한화그룹 사건이 당사자는 물론 검찰에도 생채기를 남긴 채 종착역을 향하는 이유는 뭘까. 당시 사건을 취재했던 기자의 입장에선 “이렇게 많은 사회적 비용을 써가면서까지 검찰이 기를 쓰고 수사를 했었던 목적이 무엇이었을까”라는 의구심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부도덕한 재벌 회장의 전횡을 밝혀내 기업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한국 경제의 건전한 성장을 위해 검찰이 온갖 로비를 무릅쓰고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려 했던 것이 수사의 목적이었을까. 이 같은 거창한 목적의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죄가 있으면 벌이 내려져야 한다”는 정의감의 발로였을까.

당시의 상황을 지금 다시 복기해 봐도 검찰 특수수사의 문제점이 오버랩되기는 마찬가지다. 우선 별건(別件) 수사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당시 검찰 수사는 김 회장의 비자금 일부를 관리하던 회사 직원이 이를 빌미로 돈을 요구하다 여의치 않자 금감원 등에 제보를 하면서 시작됐다. 5개의 계좌에 나눠 관리하던 비자금이 수사의 단서였다고 한다.

하지만 검찰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다. “대어(大魚)를 낚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판단한 것으로 생각된다. 검찰 수사팀은 기업 전반에 대한 자료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한화그룹 측은 반발했지만 검찰의 기세를 꺾을 수는 없었다. 한화그룹 측이 검찰 고위 간부들로 변호인을 꾸려 대응을 하자 “김 회장이 구속되기 싫으면 한화그룹 돈을 받은 고위 공무원들의 이름을 대라”고 압박했다.

검찰의 수사는 저인망식 수사로 이어졌다. 본사와 계열사 등 20여 곳을 압수수색하고 임직원 321명을 검찰청사로 불러들여 신문을 했다. 기업과 여론의 비판이 일자 “법대로!”로 응수했다. 하지만 그 ‘법대로’ 정신에는 교만과 오기(傲氣)가 배어 있었다. 형사소송법상의 ‘무기 대등의 원칙’이 아닌 ‘나만의 무기’를 위한 법대로 정신이었다.

결국 수사는 장기화가 불가피해졌다. 검찰의 수사를 비판하는 여론은 ‘정의를 폄훼하는 세력’으로 낙인찍으려 했다. 국내 굴지의 기업은 몇몇 검사 개인의 고집을 이겨낼 수 없었고, 137일간 집중적인 수사를 받고는 백기 투항을 해야 했다. 김 회장을 비롯한 임직원 10명은 3500억원대의 회사 돈을 부당하게 쓴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됐다.

이들의 범법행위가 드러났고, 법원에서도 유죄가 선고됐으니 검찰 수사 과정은 정당한 것이었을까. 마침 김진태 총장이 검찰 특수수사의 문제점에 대한 연구를 지시했다고 한다. 특수수사는 특수하지만 그 소속 검사까지 특수하지는 않다. 그러니 최소한 지위를 이용해 치사하게 수사하는 방식부터 없애야 한다. 상대방도 납득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특수수사의 정도일 것이다. 검찰이 트라우마의 진원지가 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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